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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한 조각 없던 생애, 사후엔 수천억의 황제로"… 비운의 천재들
- 오늘날 전 세계 주요 박물관의 가장 깊숙한 곳, 삼엄한 경비 속에 걸린 수천억 원짜리 명화들. 그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정작 생전에는 물감 살 돈이 없어 배를 곯았다는 사실은 미술사의 가장 거대한 아이러니다. 왜 세상은 그들이 살아있을 때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예술적 순교자'라 불리는 이들의 삶을 통해 예술의 가치와 시대의 안목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 1. 빈센트 반 고흐: 평생 팔린 그림은 단 1점 '사후의 황제'를 꼽을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은 단연 빈센트 반 고흐다. 그는 10년의 짧은 화업 동안 2,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에 팔린 그림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딱 한 점뿐이었다. 생전의 삶: 동생 테오의 경제적 지원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었으며, 카페 외상값을 갚기 위해 그림을 넘기려 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반전의 미학: 고흐의 강렬한 색채와 소용돌이치는 붓질은 당시의 엄격한 아카데미즘 미술계에서 '정신 나간 낙서'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재평가받으며 현재 그의 작품 한 점은 약 1억 달러(한화 약 1,300억 원)를 상회하는 가치를 지닌다. ■ 2.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가난과 병마에 꺾인 '파리의 귀공자' 긴 목과 눈동자 없는 인물화로 유명한 모딜리아니 역시 지독한 빈곤 속에 생을 마감했다. 생전의 삶: 결핵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던 그는 단돈 몇 프랑에 그림을 팔아 술을 사 마셨다. 1917년 열린 생애 유일한 개인전은 '나체 그림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전시 시작 몇 시간 만에 폐쇄되는 수모를 겪었다. 사후의 가치: 그가 서른여섯의 나이로 요절한 직후, 그의 작품값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2015년 그의 '누워있는 누드'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억 7,040만 달러(약 2,000억 원)에 낙찰되며 세계 미술계를 경악하게 했다. ■ 3. 요하네스 베르메르: 빚만 남기고 떠난 '빛의 거장'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화가 베르메르 역시 생전에는 지역에서 인정받는 정도의 화가였을 뿐, 경제적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생전의 삶: 다작을 하지 못했던 그는 11명의 자녀를 부양하느라 평생 빚에 시달렸다. 사망 당시 그는 파산 상태였으며, 아내는 빚을 갚기 위해 남편의 유작들을 헐값에 넘겨야 했다. 부활의 역사: 사후 200년 동안 잊혔던 그는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빛을 조절하는 탁월한 능력과 정교한 구성을 인정받으며 '네덜란드의 거장'으로 부활했다. ■ 왜 그들은 사후에만 황제가 되는가? 시대를 앞서간 혁신: 거장들은 당대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문법을 창조한다. 대중의 안목이 그들의 혁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희소성의 원칙: 화가가 사망하면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없다. 공급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가치가 재발견되면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드라마틱한 서사: 화가의 고통스러운 삶과 비극적인 죽음은 작품에 '신화적 가치'를 부여한다. 컬렉터들은 그림뿐 아니라 화가의 고귀한 희생이라는 '이야기'를 사고 싶어 한다. ■ 결론: 우리가 지금 주목해야 할 '미래의 황제'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 단칸방에서 제2의 고흐를 꿈꾸며 붓을 드는 무명 화가들이 있다. "죽어야 뜨는 게 미술계"라는 서글픈 농담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당대의 예술가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어쩌면 오늘 당신이 이름 없는 전시회에서 구매한 50만 원짜리 그림이, 100년 후 인류의 보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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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한 조각 없던 생애, 사후엔 수천억의 황제로"… 비운의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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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리겠는데!" 점 하나 찍은 그림이 수십억 원?
- 갤러리 하얀 벽면에 덩그러니 놓인 점 하나. 혹은 캔버스를 칼로 슥 그어놓은 자국. 현대미술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가장 흔히 내뱉는 탄식은 "저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나도 그리겠는' 작품들이 경매 시장에서 수십억 원, 수백억 원에 낙찰되는 현실 앞에 대중은 당혹감을 느낀다. 도대체 현대미술은 무엇을 팔기에 이토록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것일까? ■ 1. "무엇을 그렸나"가 아니라 "왜 그렸나" (철학의 승리) 과거의 미술이 사물을 얼마나 똑같이 재현하느냐(Skill)의 싸움이었다면, 카메라의 발명 이후 현대미술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Concept)의 싸움으로 변했다. 발상의 전환 : 캔버스를 칼로 찢은 루치오 폰타나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단순히 천을 훼손한 것이 아니다. 2차원의 평면인 캔버스에 구멍을 내어 그 너머의 3차원 공간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 '최초의 시도'가 가진 철학적 가치가 가격을 결정한다. 이우환의 점 :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의 점(Point)은 단순히 찍은 점이 아니다. 돌가루를 섞은 물감이 붓에서 다할 때까지 찍어 누르는 행위, 그 시간의 흐름과 공간과의 여백을 담은 '관계'의 철학이다. ■ 2. '숙련된 노동' 대신 '예술적 권위'를 사다 현대미술 시장에서 가격은 작가의 '브랜드 파워'와 '미술사적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 기록의 가치: "누가 먼저 이 생각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후발 주자가 아무리 똑같이, 혹은 더 정교하게 점을 찍어도 그것은 '모방'일 뿐 '창조'가 아니다. 전문가의 보증: 세계적인 큐레이터, 평론가, 유수한 미술관이 그 작가의 철학을 공인할 때, 작품은 단순한 물건에서 '인류의 문화 자산'으로 격상된다. 컬렉터들은 종이 한 장의 물리적 가치가 아니라, 그 작가가 쌓아올린 '예술적 연대기'를 구매하는 것이다. ■ 3. 희소성과 자본의 논리 경제적 관점에서 현대미술품은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다. 한정된 공급: 거장들의 작품 수는 정해져 있다. 반면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전 세계 자산가들의 수요는 계속 늘어난다. 점 하나 찍은 그림이 수십억 원인 이유는, 그것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며 그 가치를 인정하는 자본가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보관된 가치: 주식이나 화폐와 달리 미술품은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활용된다. 특히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품들은 유행을 타지 않고 시대를 초월하는 세련미를 지녀 안정적인 투자처로 각광받는다. ■ 결론: 당신이 보는 것은 그림인가, 생각인가? 현대미술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으로 읽는 장르다. 점 하나를 보고 "저건 나도 찍겠다"고 말하는 것은, 스마트폰을 보고 "저건 나도 조립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조립 기술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설계한 생각'이다. 이제 갤러리에서 점 하나를 마주한다면, 작가가 그 점을 찍기 위해 비워낸 고뇌의 시간과 그 점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을 상상해 보라. 그때 비로소 수십억 원이라는 가격표 너머의 진짜 예술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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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리겠는데!" 점 하나 찍은 그림이 수십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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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샀는데 세금이 줄었다?"
- 최근 서울 강남의 한 갤러리. 기업 대표 A씨는 중견 작가의 조각품 두 점을 법인 명의로 구매했다. 단순한 취향 때문일까? 아니다. 이는 법인세를 절감하면서도 자산 가치를 높이는 고도의 경영 전략이다. ' 아트 테크'가 대중화되면서 미술품은 이제 감상의 대상을 넘어 가장 우아한 절세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법인과 개인이 받는 혜택은 엄연히 다르다. ■ 법인: "사옥에 건 그림, '비용'으로 인정받는다" 법인이 미술품을 구매할 때 가장 큰 매력은 '비용 처리(손금산입)'를 통한 법인세 절감이다. 손비 인정 범위: 법인세법에 따라 사무실, 복도 등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항상 전시하는 목적으로 구매한 미술품은 거래 금액 1점당 1,000만 원까지 전액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환경 개선의 목적: 사옥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용도로 간주되기에, 법인의 과세표준을 낮추어 결과적으로 법인세를 줄이는 효과를 낸다. 만약 1,0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작품이라면 자산으로 등재한 후 추후 매각 시 이익을 정산하게 된다. ■ 개인: "생존 작가라면 양도세가 없다" 개인 컬렉터에게는 법인보다 훨씬 파격적인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생존 작가 무제한 비과세: 가장 강력한 혜택이다. 한국 소득세법상 국내 생존 작가의 작품은 매매 금액이 얼마든, 시세 차익이 얼마가 발생하든 양도소득세가 전혀 없다. (예외: 작고 작가의 작품 중 점당 6,000만 원 미만도 비과세) 기타소득 분류: 세금이 발생하는 경우(작고 작가 작품, 6,000만 원 이상)에도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과 합산되지 않는 '기타소득'으로 분류되어 20%의 저율 과세(필요경비 최대 80~90% 인정)가 적용된다. 이는 최고 45%에 달하는 종합소득세율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 주의사항: "대표님 방에만 걸어두면 위험합니다" 세무 전문가들은 법인 구매 시 '업무 무관 자산'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시 장소의 공공성: 대표이사 개인 집이나 폐쇄적인 서재에 보관할 경우, 세무조사 시 비용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당소득으로 간주되어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증빙 서류 구비: 구매 당시의 계약서, 세금계산서, 설치 사진 등을 꼼꼼히 보관해야 '업무상 필요성'을 입증할 수 있다. ■ 결론: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내 복지와 법인세 절감이 목적이라면 법인 명의의 분산 구매가 유리하다. 반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며 장기 투자하고 세금 한 푼 없이 시세 차익을 누리고 싶다면 개인 명의로 생존 작가의 유망한 작품을 선점하는 것이 정답이다. 미술품은 이제 '부의 상징'을 넘어 '부의 관리'를 위한 현명한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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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샀는데 세금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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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왜 귀를 잘랐나: 예술적 광기인가, 숨겨진 질병의 비명인가
- 1888년 12월 23일 밤, 프랑스 남부 아를(Arles). 전 세계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기괴하고도 슬픈 사건이 발생했다.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자신의 왼쪽 귀를 면도날로 잘라낸 것이다. 1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예술가의 광기’를 상징하는 전설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역사학자들과 의학계는 이 사건 뒤에 우리가 몰랐던 ‘질병’과 ‘치명적 갈등’이 숨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 가설 1: “귀가 울려 참을 수 없었다” - 메니에르병 설(說) 현대 의학자들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원인은 ‘메니에르병(Meniere's disease)’이다. 이 병은 속귀(내이)의 이상으로 심한 어지럼증, 이명(귀울림), 난청을 동반한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귀에서 끔찍한 소리가 나고 정신을 차릴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당시에는 이 질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 단순히 ‘간질’이나 ‘조현병’으로 치부됐으나, 전문가들은 고흐가 끊임없이 들리는 이명과 어지럼증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싶어 귀를 자르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 분석한다. 실제로 그의 말기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 속 소용돌이치는 별빛은 메니에르병 환자가 겪는 시각적 어지럼증의 투영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 가설 2: “가장 소중한 동료와의 파멸” - 고갱과의 갈등 사건 당일, 고흐는 아를의 ‘노란 집’에서 함께 생활하던 동료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과 격렬한 다툼을 벌였다. 예술 공동체를 꿈꿨던 고흐와 달리, 현실적이고 냉소적이었던 고갱은 아를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심리적 의존도가 높았던 고흐에게 고갱의 결별 선언은 사형 선고와 같았다. 일각에서는 고흐가 고갱을 위협하다가 죄책감에 자신을 자해했다는 설을 지지한다. 심지어 2009년 독일의 사학자들은 “펜싱 고수였던 고갱이 말다툼 도중 칼로 고흐의 귀를 베었고, 두 사람이 우정을 지키기 위해 자해로 입을 맞췄다”는 이른바 ‘검술 결투설’을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 가설 3: “테오의 결혼 소식과 경제적 불안”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는 또 다른 이론은 고흐의 유일한 지지자였던 동생 테오의 결혼이다. 고흐는 사건 당일 테오로부터 약혼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경제적으로 테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고흐가 동생의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후원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발작을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 자른 부위는 어디까지? - 귓불인가, 전체인가 오랫동안 고흐가 귓불만 잘랐다는 것이 통설이었으나, 2016년 버나뎃 머피가 발견한 당시 주치의 펠릭스 레이의 스케치에 따르면 고흐는 귀의 거의 전체를 절단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 잘린 귀를 신문지에 싸서 평소 알고 지내던 사창가의 여성에게 건네며 “이 물건을 잘 간직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자신을 거부하는 세상에 대한 처절한 기표(Signifier)이자, 누구에게라도 기억되고 싶었던 외로운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 결론: 질병과 예술혼이 빚어낸 비극의 결정체 고흐의 귀 절단 사건은 단순한 광기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육체적 질병(메니에르병), 관계의 파탄(고갱), 경제적 고립(테오)이라는 삼중고가 겹쳐진 비극적 폭발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 이후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그의 생애 중 가장 강렬하고 아름다운 걸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남겨진 그의 자화상 속 하얀 붕대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한 인간의 눈물겨운 훈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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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왜 귀를 잘랐나: 예술적 광기인가, 숨겨진 질병의 비명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