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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굴기'의 명암: 미국의 제재를 넘어 자립은 가능한가
- 2020년, 미국 상무부의 제재로 화웨이(Huawei)의 반도체 공급망이 하루아침에 끊겼던 사건은 중국 전체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이는 미중 패권 경쟁이 더 이상 무역 분쟁이 아닌, 국가의 명운을 건 '기술 전쟁'임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후 중국의 '기술 굴기(技术崛起, 기술로 우뚝 섬)'는 원대한 국가 목표를 넘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변모했다. '과학기술 자립자강(自立自强)'이라는 구호 아래 천문학적인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지금, 과연 중국의 꿈은 미국의 철통같은 제재를 넘어 실현될 수 있을까? 이는 21세기 글로벌 기술 지형도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빛: 거국체제가 이룬 경이로운 추격 미국의 제재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를 전례 없이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중국은 '거국체제(举国体制)', 즉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압박에 맞서고 있다. 반도체 자립의 상징, 화웨이와 SMIC의 부활: 미국의 제재로 스마트폰 사업이 고사 직전에 몰렸던 화웨이는 불사조처럼 부활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와의 협력을 통해 7나노미터(nm) 공정의 5G 칩셋을 자체 생산해내며 시장을 경악시켰다. 비록 수율이 낮고 생산 단가가 높아 최첨단 공정과는 격차가 있지만, 미국의 봉쇄망에 구멍을 뚫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술적 자신감을 증명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최근에는 5nm급 칩 양산까지 바라보며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국가 주도의 막대한 투자: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일명 '대기금(大基金)'을 조성, 1기와 2기를 통해 이미 5,000억 위안(약 95조 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올해 들어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3,440억 위안 규모의 3기 펀드를 조성하며, 미국의 제재가 집중된 반도체 장비와 소재 국산화에 '올인'하고 있다. 나우라(NAURA), AMEC 등 중국의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이 자금을 발판 삼아 빠르게 성장하며 국산화율을 높여가고 있다. 2024년 기준, 중국의 반도체 자립률은 25%를 넘어섰다. 신산업 분야의 약진: 미국의 제재가 최첨단 반도체에 집중된 사이, 중국은 다른 트랙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화웨이가 주도하는 5G 통신장비는 이미 세계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에서는 BYD와 CATL이 테슬라와 파나소닉을 위협하며 글로벌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DJI가 장악한 드론 시장과 안면인식 등 AI 응용 분야 역시 중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영역이다. 그늘: 넘기 힘든 '첨단 기술'의 벽 이러한 괄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기술 굴기' 앞에는 여전히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 반도체 핵심 장비와 소프트웨어의 부재: 중국이 7나노급 칩을 만들었다고는 하나, 이는 기존의 심자외선(DUV) 장비를 극한으로 활용한 결과다. 3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하고 있으며, 미국의 제재로 중국 수출이 원천 봉쇄되어 있다. 또한, 칩 설계에 반드시 필요한 전자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 시장은 미국의 시놉시스, 케이던스가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 이 분야의 자립 없이는 '반쪽짜리 성공'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인재 유출과 기초 과학의 한계: 미국의 제재는 중국계 과학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글로벌 인재 유입을 막는 효과를 낳고 있다. 또한,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국가 주도 R&D는 오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기초 과학 분야를 소홀히 하게 만들어, '따라가는 기술'은 가능할지 몰라도 '세상을 바꾸는 원천 기술'을 창출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기술 고립'의 비용: 가장 큰 비용은 글로벌 기술 생태계로부터의 단절이다. 기술 혁신은 개방과 협력을 통해 이뤄지지만, 중국은 이제 많은 부분을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는 엄청난 중복 투자와 비효율을 낳으며, 결국에는 세계 최고 수준과의 기술 격차가 다시 벌어지는 '기술 갈라파고스'에 갇힐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결론: 자립은 가능하지만, '최선두'는 어렵다 종합적으로 볼 때, 중국의 '기술 자립'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국가의 총력 지원을 바탕으로,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간급 기술(legacy)과 특정 신산업 분야에서 자급자족하며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했다. 그러나 생존이 곧 '패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첨단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원천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생태계와 단절된 채 독자적으로 '최선두(cutting-edge)' 그룹에 오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다. 결국 중국의 '기술 굴기'는 미국의 제재를 넘어 어느 정도의 자립은 이루겠지만, 그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세계 최고 기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평행선을 달리는 '기술 이원화(bifurcation)'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화려한 성취의 빛과 고립의 짙은 그늘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2025년 중국 기술 굴기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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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굴기'의 명암: 미국의 제재를 넘어 자립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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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장'의 그늘, 중국 경제는 구조적 장기 침체에 진입했나
- 2025년 중국 경제는 여전히 세계를 향해 '5% 내외 성장'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두 자릿수 성장이 당연했던 과거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이 1~2%대 성장에 허덕이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여전히 매력적인 수치다. 그러나 화려한 숫자 뒤에 가려진 중국 경제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건강한 성장통이 아닌 깊은 내상을 앓는 중병 환자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부동산 거품 붕괴, 산더미 같은 부채, 그리고 인구 감소와 디플레이션이라는 삼중고(三重苦)는 중국 경제가 일시적 둔화를 넘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닮은 구조적 장기 침체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성장의 관성을 멈춰 세운 '세 개의 산' 과거 40년간 중국의 질주를 이끌었던 성장 엔진은 이제 세 개의 거대한 산에 가로막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첫 번째 산은 '부동산 쇼크'다. 중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건설업이 아니다. 관련 산업을 포함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고, 도시 가계 자산의 ‘70%’가 묶여있는 경제의 대들보다. 그러나 헝다 사태 이후 시작된 위기는 끝없이 이어지며 대들보 자체를 흔들고 있다. 자산 가치가 하락하자 중국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을 갚는 데 집중하는 '대차대조표 불황'이 시작됐다. 소비 심리는 얼어붙었고, 한때 성장의 상징이었던 크레인은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 단지 위에서 멈춰 섰다. 두 번째 산은 '부채의 만리장성'이다. 중국의 총부채는 GDP 대비 ‘300%’에 육박한다. 특히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는 시한폭탄과 같다. 지방정부융자기구(LGFV)를 통해 조달한 비공식 부채는 ‘최소 9조 달러(약 1경 2,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성장을 견인했던 지방정부들은 이제 이자 갚기에도 급급해, 경제를 부양할 재정적 여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세 번째 산은 '인구 감소와 디플레이션'이라는 피할 수 없는 미래다. 2022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줄어드는 생산가능인구와 축소되는 소비 시장은 구조적으로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여기에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압력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물가 하락은 소비를 지연시키고 기업의 이윤을 감소시키며, 실질적인 부채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이는 과거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던 경로와 섬뜩할 정도로 유사하다. 꺼져가는 성장 엔진과 정책의 딜레마 이러한 구조적 문제 속에서 과거 중국 경제를 이끌었던 수출, 투자, 소비라는 세 바퀴마저 삐걱대고 있다.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견제는 수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자 투자의 절반이 증발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신형 인프라' 투자는 아직 그 규모가 미미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소비의 실종이다. 정부가 '이구환신' 등 각종 소비 진작책을 내놓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넘어, 턱없이 부족한 사회안전망 때문이다. 막대한 교육비, 의료비, 그리고 노후 대비 부담은 중국인들을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축률로 내몰고 있다. 소비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은 시장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시진핑 지도부는 서방처럼 국민에게 직접 돈을 푸는 대규모 부양책을 '게으름을 키우는 복지 함정'이라며 꺼린다. 대신 국가 안보와 첨단 기술 자립을 위한 국가 주도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보다는 장기적인 체질 개선을 우선하겠다는 의지이지만, 당장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시장과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민간 기업가들은 위축되고, 외국인 투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관리되는 침체'라는 새로운 현실 결론적으로, 중국 경제가 하루아침에 붕괴할 가능성은 낮다. 공산당의 강력한 통제력은 금융 시스템의 급격한 파산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암울한 시나리오는 중국이 극적인 붕괴 대신, 저성장과 높은 청년 실업률, 그리고 사회적 불만이 일상화되는 '관리되는 침체(Managed Stagnation)'에 진입하는 것이다. '5% 성장'이라는 목표는 국가 주도의 투자와 통계 관리를 통해 숫자로서는 달성될지 모른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과 민간 기업이 체감하는 경제는 훨씬 더 차가울 것이다. 과거 수십 년간 세계 경제의 성장을 견인했던 중국은, 이제 전 세계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지정학적 불안정을 야기하는 진원지가 될 수 있다. 한때 끝없이 부풀어 오르던 '중국의 꿈'은 지금 구조적 한계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가장 혹독한 시험을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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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장'의 그늘, 중국 경제는 구조적 장기 침체에 진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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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글로보우스' 외교,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도전
-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세계는 또 다른 거대한 축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 바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 및 신흥국가를 포괄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다. 중국은 스스로를 '글로벌 사우스의 당연한 일원'이라 칭하며, 이들을 향한 전방위적인 외교 공세를 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우호 관계 증진이나 경제적 실리 추구를 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해 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맞서는 자신들만의 '세(勢)'를 규합하려는 장기적인 전략이다. 바야흐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지렛대 삼아, 미국 중심의 세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도전을 시작했다. 인프라와 자본: 글로벌 사우스의 마음을 얻는 법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전략의 핵심 무기는 단연 압도적인 '경제적 당근'이다. 서방 국가들이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를 앞세운 조건부 지원을 제시하는 동안,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우며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차관이라는 실질적인 선물을 안겨주었다. 일대일로(一带一路) 이니셔티브: 2013년 시작된 이 거대 프로젝트는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상징이다. 2025년 현재, 150여 개 국가가 참여하며 전 세계 인구의 75%, GDP의 절반 이상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중국은 항만, 철도, 발전소 등 개발도상국에 가장 절실한 기반 시설 건설에 1조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며 물리적, 경제적 영향력을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비록 최근에는 '부채 함정'이라는 비판 속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보다 '작고 아름다운(小而美)' 실용적 사업으로 전환하는 추세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압도적인 무역 파트너: 중국은 이미 120개국 이상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 이들 대부분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다. 2000년대 초반 1,000억 달러 수준이었던 중국-아프리카 간 교역액은 2024년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중국-라틴아메리카 교역액 역시 2022년 5,000억 달러에 육박하며 20년 만에 35배 이상 급증했다.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제적 상호의존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된다. 서방에 맞서는 '대안 질서'의 구축 중국의 목표는 단순한 경제적 영향력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기구에 대항하는 '대안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국제 무대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더 큰 그림이다. 브릭스(BRICS)의 확장: 2024년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가입에 이어, 2025년 인도네시아까지 합류하며 브릭스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협력체로 자리매김했다. 확장된 브릭스는 전 세계 인구의 약 45%, GDP의 36% 이상을 차지하며 G7에 필적하는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서방의 제재와 압박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달러 대신 자국 통화 결제를 확대하는 등 미국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UN에서의 외교적 지원: 중국의 영향력은 UN 총회 표결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 홍콩 국가보안법 등 서방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비판하는 사안이 상정될 때마다, 다수의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기권하며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는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어떻게 외교적 자산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향해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만이 유일한 발전 경로가 아니다"라며, 국가 주도의 권위주의적 발전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치적 안정을 우선시하며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이룬 중국의 경험은, 정세가 불안한 많은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에게 매력적인 서사로 다가간다. '부채 함정'과 흔들리는 리더십 그러나 중국의 장밋빛 청사진에도 균열은 존재한다. '부채 함정 외교'라는 비판은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다. 스리랑카가 중국에 진 빚을 갚지 못해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넘겨준 사례는, 중국식 지원의 대가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잠비아 등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도 채무 재조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중국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 방식과 환경 파괴, 현지인 고용 부족 문제 등은 곳곳에서 반중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글로벌 사우스 내부에서도 인도를 중심으로 중국의 패권적 행보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중국이 이들을 하나의 목소리로 묶어내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는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도전이다. 이는 과거 냉전 시대의 이념 대결이 아닌, 인프라, 자본, 발전 모델을 앞세운 실용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더욱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다. 비록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중국은 서방 중심의 세계 질서에 불편함을 느끼는 수많은 국가에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며 착실히 세를 넓히고 있다. 세계는 점차 미국과 그 동맹들이 주도하는 질서와,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또 다른 질서가 공존하거나 경쟁하는 '이중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이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의 파도 속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이 어떤 외교적 항로를 설정해야 할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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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글로보우스' 외교,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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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위안화의 꿈, 달러 패권에 대한 조용한 도전
-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무역, 기술을 넘어 이제 '화폐'라는 보이지 않는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세계 주요국 중 가장 앞서 추진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즉 '디지털 위안화(e-CNY)'가 있다. 이는 단순히 결제 편의성을 높이는 핀테크 혁신을 넘어, 지난 70여 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해 온 달러의 아성에 균열을 내려는 장기적이고 치밀한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비록 당장은 그 파급력이 미미해 보이지만, 디지털 위안화는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대한 '조용한 도전'을 시작했다. 국내 통제력 강화와 국경 밖 야망 2019년 시범 운영을 시작한 디지털 위안화는 현재 중국 내에서 착실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25년 6월 말 기준, 누적 거래액은 ‘7조 위안(약 1,330조 원)’을 돌파했으며, 개인 지갑 개설 수는 3억 개에 육박한다. 일부 도시에서는 공무원 월급, 교통비, 공과금 납부 등에 활용되며 점차 실생활에 뿌리내리고 있다. 중국 정부가 디지털 위안화를 추진하는 첫 번째 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국내 금융 시스템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 확보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장악한 민간 결제 시장에 '국가대표'를 투입함으로써, 정부는 모든 거래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익명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자금 세탁, 탈세 등 불법 행위를 원천 차단하고 통화 정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중국의 야망은 국경 안쪽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디지털 위안화의 진정한 목표는 위안화의 국제화와 미국의 금융 제재로부터의 탈피에 있다. 현재 국제 무역 결제와 외환 보유고의 대부분은 달러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을 통해 처리된다. 미국은 이 SWIFT망을 통제하며 이란, 러시아 등에 대한 금융 제재를 가해왔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SWIFT를 우회하는 독자적인 국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미국의 잠재적인 금융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고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m브릿지' 프로젝트: 달러 없는 세상의 실험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화 야망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은 'm브릿지(mBridge)' 프로젝트다. 이는 중국,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과 함께 추진하는 다자간 CBDC 플랫폼이다. m브릿지는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화폐를 이용해 중개 은행 없이 국가 간 거래를 실시간으로 직접 결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의 달러 기반 해외 송금이 여러 중개 은행을 거치며 수일이 걸리고 높은 수수료가 발생했던 것과 비교하면, m브릿지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2024년 말 MVP(최소기능제품) 단계에 도달한 이 프로젝트는 2025년 들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참여를 선언하며 규모를 키우고 있다. 중국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대일로(一带一路) 참여국이나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 등 자국과 경제적 유대가 깊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위안화 경제권'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국가들에게 SWIFT를 대체할 수 있는 '숨통'을 제공함으로써, 달러 중심의 금융 질서에 반대하는 국가들을 규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 넘기 힘든 '달러의 벽' 이러한 중국의 야심 찬 계획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위안화가 단기간에 달러의 패권을 위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몇 가지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자본 통제와 낮은 신뢰도: 중국은 여전히 엄격한 자본 통제를 시행하고 있어 위안화의 자유로운 환전과 이동이 제한된다. 이는 위안화가 국제적인 준비자산이나 결제 통화로 기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또한, 모든 거래가 정부에 의해 감시될 수 있다는 '빅브라더'의 이미지는 투명성과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국제 금융 시장에서 신뢰를 얻기 어렵게 만든다. 네트워크 효과: 달러는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에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중 달러 비중은 여전히 ‘60%’에 육박하는 반면, 위안화는 3% 미만에 불과하다. 모두가 사용하는 화폐를 바꾸는 데에는 엄청난 전환 비용이 따르기에, 달러의 '현직 프리미엄'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위안화는 당장 달러를 왕좌에서 끌어내릴 '게임 체인저'라기보다는, 달러 중심의 단극 체제에 다극화를 유도하는 '조용한 균열'에 가깝다. 중국은 전면전이 아닌, 자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에서부터 차근차근 위안화 사용을 늘려가는 장기적인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 조용한 도전이 30년 뒤 국제 금융 지도를 어떻게 바꿀지, 세계는 이제 막 그 서막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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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위안화의 꿈, 달러 패권에 대한 조용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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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흔들리는 대만: 양안 관계의 군사적 긴장감과 동북아 안보
-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를 꼽으라면, 많은 전략가가 주저 없이 폭 180km의 대만 해협을 지목할 것이다. 매일같이 중국 인민해방군(PLA)의 군용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거대한 항공모함과 구축함이 해협을 에워싸며 무력시위를 벌인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조국 통일'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공언하는 중국의 거대한 야망과, 스스로를 주권 민주주의 국가로 인식하는 대만의 정체성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현장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증폭기까지 더해진 이 대치는 이제 양안(两岸)만의 문제가 아닌,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전체,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지정학적 특이점(singularity)이 되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치: 압도적 군사력과 비대칭 전략 숫자로 본 양안의 군사적 균형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골리앗에 비견되는 중국의 군사력은 압도적이다. 병력 및 국방예산: 중국의 현역 병력은 약 200만 명으로, 대만(약 17만 명)의 10배가 넘는다. 공식적인 국방예산 역시 중국이 약 2,300억 달러로 대만(약 190억 달러)의 12배를 상회하며, 실제로는 그 격차가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해군 및 공군력: 중국은 3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해 수백 척의 현대적인 군함을 보유하고 있으나 대만은 주력함이 20여 척에 불과하다. 공군 역시 스텔스 전투기 J-20 등을 앞세운 중국의 4세대 이상 전투기가 1,200대를 넘는 반면, 대만은 400여 대 수준이다. 수천 기에 달하는 중국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유사시 대만의 주요 군사 시설을 수 시간 내에 무력화할 수 있다. 이러한 압도적 전력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은 전면 침공 위협뿐 아니라, 군용기의 일상적인 위협 비행, 해상 봉쇄 훈련, 사이버 공격과 가짜뉴스 유포 등 전쟁과 평화 사이의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을 통해 대만의 군사적, 심리적 피로도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다윗, 대만의 생존 전략은 '고슴도치(Porcupine)'로 요약된다. 전면전에서의 승리가 아닌, 중국의 침공을 최대한 고통스럽고 값비싸게 만들어 포기하게끔 만드는 비대칭 전략이다. 이를 위해 대만은 하푼 지대함 미사일, 슝펑(雄風) 순항미사일 등 적 함대를 원거리에서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또한, 스팅어와 재블린 같은 휴대용 대공·대전차 미사일을 대량으로 확보해 시가전과 상륙 저지 능력을 키우고 있으며, 자체 잠수함과 드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180km의 대만 해협이라는 자연 방어선과 '대만관계법'에 따른 미국의 잠재적 개입 가능성은 고슴도치의 가장 날카로운 가시다. 실리콘 방패: 반도체가 만든 경제적 딜레마 양안 관계의 또 다른 핵심 변수는 군사력이 아닌 경제, 특히 반도체다. 대만은 TSMC를 필두로 전 세계 최첨단(7나노 이하) 반도체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독점적 공급자다. 이는 대만에게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라는 독특한 방어막을 제공한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TSMC의 생산 라인이 멈춘다면, 중국의 첨단 산업은 물론 전 세계 IT, 자동차, 방산 업계가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는 중국 경제에도 자살골에 가까운 충격을 줄 것이기에, 섣불리 군사행동에 나설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한다. 역설적이게도, 양안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도는 여전히 매우 높다. 대만 전체 수출의 약 35%가 중국(홍콩 포함)으로 향하며, 수많은 대만 기업이 중국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경제적 이해관계는 양안 관계가 군사적 논리로만 재단될 수 없는 복잡성을 띠게 만든다. 강 건너 불이 아닌 우리의 문제 일각에서는 대만 해협의 위기를 '강 건너 불'처럼 여기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직접적인 위협이다. 경제 안보의 붕괴: 대만 해협은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90%, 수출입 물동량의 40% 이상이 통과하는 핵심 해상교통로(SLOC)다. 해협이 봉쇄되는 순간, 한국 경제는 에너지를 수혈받지 못하고 수출길이 막히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안보 딜레마: 유사시 주한미군의 전략 자산이 대만 방어를 위해 이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곧 한반도의 대북 억제력에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동맹으로서의 역할과 지원을 요구받을 경우, 우리는 최대 동맹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파괴적인 선택을 강요당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북한의 오판 가능성: 동북아에 권력 공백이 발생하면, 북한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도발의 수위를 급격히 높일 수 있다. 이는 한반도에 제2의 전선이 형성되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결론적으로, 대만 해협의 평화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생존 문제다. 현재의 아슬아슬한 현상 유지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지만, 무력 충돌이라는 파국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와 연대해 중국의 무력 사용을 억제하고, 동시에 대화의 끈을 놓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는 것. 이 위태로운 균형을 관리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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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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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흔들리는 대만: 양안 관계의 군사적 긴장감과 동북아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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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품 붕괴 막기, 중국식 해법은 시장에 어떤 신호를 주는가
-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세계 금융 시스템을 붕괴 직전으로 몰고 갔던 것처럼, 헝다(恒大)와 비구이위안(碧桂园)의 연쇄적인 채무 불이행은 중국판 '리먼 모멘트'의 공포를 불러왔다. 중국의 부동산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국가 경제 성장의 약 25%를 차지하고, 가계 자산의 70%가 묶여 있는 경제의 심장이자 사회 안정의 기반이다. 이 심장이 멎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마침내 칼을 빼 들었다. '국가'가 시장의 구원투수로 직접 등판한 것이다.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전례 없는 이 '중국식 해법'은, 시장경제 원칙에 익숙한 서방 세계에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도박은 성공할 수 있으며, 세계 시장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 수치로 본 위기: '유령 도시'와 멈춰버린 크레인 중국 부동산 위기의 심각성은 몇 가지 수치로 압축된다. 골드만삭스 등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미분양 주택 재고 규모는 완공 주택과 건설 중인 주택을 포함해 약 ‘30조 위안(약 5,7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의 미분양 주택 면적만 해도 수억 제곱미터에 이르며, 이를 모두 소화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이는 단순히 팔리지 않은 아파트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업체의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란웨이러우(烂尾楼, 썩은 꼬리 빌딩)'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했다. 평생 모은 돈으로 집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은 대출 이자만 내며 영원히 완성될지 모를 아파트를 바라보는 처지가 되었다. 부동산 개발업체에 의존해 재정을 충당해 온 지방정부들은 토지 매각 수입이 급감하며 극심한 재정난에 빠졌다. 이처럼 부동산 위기는 금융 시스템, 지방 재정, 그리고 민생을 동시에 위협하는 복합 골절과 같다. '국가 매입' 카드: 중국식 해법의 작동 방식 이 복합 골절을 치료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내놓은 처방의 핵심은 바로 '국가에 의한 재고 흡수'다. 지난 5월, 중국인민은행(PBOC)은 3,000억 위안(약 57조 원) 규모의 재대출 기금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이 자금은 국책은행 등을 통해 지방정부 산하 국유기업(SOE)에 저금리로 공급된다. 지방 국유기업은 이 돈을 활용해 시장에 쌓여있는 미분양 주택 중 일부를 '합리적인 가격'에 매입한다. 그리고 매입한 주택은 저소득층을 위한 '보장성 주택(保障性住房)' 즉,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전환된다. 이 정책은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노린다. 개발업체 유동성 공급: 미분양 주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 부동산 개발업체는 급한 빚을 갚고, 중단된 '란웨이러우'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 이는 금융 시스템으로의 위기 전이를 차단하는 방화벽 역할을 한다. 부동산 재고 해소: 시장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미분양 물량을 국가가 흡수하여 시장의 수급 균형을 맞추고, 추가적인 가격 폭락을 막는다. 사회 문제 해결: 매입한 주택을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공급함으로써, 시진핑 주석이 강조해 온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房住不炒)"라는 원칙을 실현하고 '공동부유' 이념에도 부합한다. 거대한 도박: 57조 원은 충분한가? 이 중국식 해법은 시장의 붕괴를 막겠다는 국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초기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규모의 미스매치'다. 중앙은행이 마련한 3,000억 위안의 재대출 기금은 시중 은행의 대출을 유도해 최대 ‘5,000억 위안(약 95조 원)’의 유동성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수십조 위안에 달하는 전체 미분양 재고에 비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무디스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바다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격"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방정부의 재정난 역시 심각한 걸림돌이다. 이미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는 지방정부가 추가로 빚을 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여력이 있는지, 또 그럴 의지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합리적인 가격'을 두고 벌일 개발업체와 정부 간의 줄다리기 역시 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해이'의 문제도 피할 수 없다. 부실 경영으로 위기에 빠진 기업을 결국 국가가 구제해준다는 선례는, 장기적으로 시장 규율을 무너뜨리고 더 큰 위기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시장을 완전히 회복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급한 불을 끄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응급 수혈'에 가깝다. 이 정책이 시장에 보내는 가장 강력한 신호는, 중국에서는 경제 논리보다 '정치적 안정'과 '사회 통제'가 항상 우선한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시장의 종언과 국가의 귀환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인 셈이다. 이 거대한 도박이 중국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더 큰 문제를 이연시키는 미봉책에 그칠지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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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품 붕괴 막기, 중국식 해법은 시장에 어떤 신호를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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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플러스(+)' 전략,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의 승부수
- '세계의 공장'이라는 칭호는 지난 30년간 중국의 압도적인 제조업 규모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값싼 노동력과 방대한 규모에 의존하던 성장 모델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내수 침체와 부동산 위기라는 내부적 도전과, 미국의 첨단 기술 견제라는 외부적 압박 속에서 중국은 '제조업 대국(大国)'에서 '제조업 강국(强国)'으로의 질적 도약을 생존 과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비장의 무기로 꺼내 든 카드가 바로 'AI 플러스(AI+) 행동' 전략이다. 이는 단순히 신기술을 도입하는 차원을 넘어, 인공지능을 국가의 모든 산업 혈맥에 수혈하여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다. AI 플러스란 무엇인가? 단순한 기술 융합을 넘어 2024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리창 총리가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처음 공식화한 'AI 플러스 행동'은 모든 산업, 특히 제조업에 AI 기술을 전면적으로 접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과거 리커창 총리가 추진했던 '인터넷 플러스'의 심화 버전으로, 인터넷이 산업의 '연결'을 담당했다면 AI는 산업의 '두뇌' 역할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공업정보화부(공신부)에 따르면, 이 전략의 핵심은 **'신형 공업화(新型工业化)'**를 추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AI 기술을 활용해 ▲생산 효율성 극대화 ▲제품 품질 향상 ▲에너지 소비 및 오염물질 배출 감소 ▲공급망 관리 최적화 등을 달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중국정보통신연구원(CAICT)은 중국의 AI 핵심 산업 규모가 ‘2025년 4,000억 위안(약 76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며, AI 기술이 실물 경제에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수조 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AI 플러스'가 단순한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수치와 목표를 가진 국가 전략임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구현되는 'AI 공장'의 모습 'AI 플러스'의 진정한 모습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드러난다. 이미 중국의 선도적인 공장들은 '스마트 공장'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는 'AI 공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중국 전기차(EV) 선두주자인 BYD의 공장에서는 수천 대의 로봇팔이 AI의 통제 아래 쉴 틈 없이 움직인다. AI 비전 시스템은 0.1mm의 오차까지 실시간으로 검수하며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또한, AI는 글로벌 부품 공급망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재고 수준을 유지하고 생산 계획을 자동 조정한다. 이는 'AI 플러스'가 어떻게 생산 효율성과 품질을 동시에 잡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자제품 산업: 세계 최대의 가전업체 중 하나인 메이디(Midea)의 스마트 공장에서는 AI가 매일 수억 건의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효율적인 생산 라인 조합을 찾아낸다. 덕분에 주문부터 최종 제품 출하까지 걸리는 시간은 과거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철강 및 화학 산업: 과거 대표적인 '굴뚝 산업'도 AI를 통해 변신하고 있다. 바오산 철강(宝山钢铁)은 AI를 용광로 운영에 도입하여, 최적의 온도와 원료 투입량을 계산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10% 이상 개선하고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AI 플러스'는 전통 제조업의 생산 공식을 완전히 새로 쓰고 있다. 과거 인간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던 공정들이 이제는 데이터와 AI 알고리즘에 기반한 정밀한 예측과 제어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넘어야 할 산: 기술 자립과 데이터의 딜레마 물론 중국의 'AI 플러스' 전략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제조업 강국'으로 가는 길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허들이 존재한다.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핵심 기술의 대외 의존도다. AI 모델을 구동하는 데 필수적인 고성능 AI 반도체는 여전히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의존이 절대적이다. 미국의 강력한 수출 통제는 중국의 AI 발전에 직접적인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화웨이 등이 자체 AI 칩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최선단 공정에서의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은 과제다. 또한, 데이터의 딜레마도 존재한다. AI의 성능은 양질의 데이터에 의해 좌우되는데, 공장 내 수많은 설비와 공정에서 발생하는 산업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공유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기업들은 자사의 핵심 노하우가 담긴 데이터를 외부에 공개하기를 꺼리며, 이는 산업 전반의 AI 도입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데이터 보안과 소유권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할 난제다. 결론적으로, 'AI 플러스' 전략은 중국이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규모'에서 '지능'으로 전환하려는 야심 찬 승부수다. 이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미국의 기술 압박을 우회하고 미래 산업의 표준을 선점하려는 국가 생존 전략의 일환이다. 비록 핵심 기술 자립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하지만,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국가 차원의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이 도전을 정면 돌파하려 하고 있다. 'AI 플러스'의 성공 여부는 향후 10년, 중국이 진정한 제조업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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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플러스(+)' 전략,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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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환신(以旧换新)' 정책, 소비 진작을 넘어 산업 고도화의 촉매 될까
-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 내수 부진, 그리고 디플레이션의 그림자. 2025년 중국 경제를 짓누르는 이 삼중고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다시 한번 과거에 성공했던 정책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이구환신(以旧换新)', 우리말로 '헌 것을 새것으로 바꾼다'는 의미의 대규모 소비재 교체 지원 정책이다. 자동차, 가전 등 내구소비재 교체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는 단기 부양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것을 넘어, 중국의 산업 구조를 미래형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거대한 야망이 숨어있다. 과연 이구환신은 단순한 소비 진작을 넘어 중국 산업 고도화의 촉매가 될 수 있을까? 15년 만의 재등장, 규모와 목표부터 다르다 이구환신 정책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처음 시행되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당시 정책이 4조 위안 규모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맞물려 경제를 V자 반등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5년 만에 다시 등장한 2025년의 이구환신은 그 규모와 목표에서 과거와 궤를 달리한다.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행동 방안에 따르면, 이번 정책의 핵심은 자동차와 가전 두 축으로 나뉜다. 자동차의 경우, 노후 내연기관차를 폐차하고 신에너지차(NEV)로 교체 시 ‘최대 1만 위안(약 19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가전 부문에서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스마트 가전, 친환경 가구 등으로 교체하는 소비자에게 보조금 혜택을 제공한다. 중국 상무부의 추산에 따르면, 이 정책으로 인해 창출될 시장 규모는 자동차 부문에서만 1조 위안, 가전 부문에서 수천억 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전체 설비 교체 수요를 연간 5조 위안(약 950조 원) 이상으로 추정하며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핵심적인 차이는 정책의 지향점이다. 2009년에는 단순히 '소비'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면, 2025년의 목표는 “'녹색(绿色)'과 '스마트(智能)'”라는 키워드로 압축된다. 즉, 단순히 낡은 차를 새 차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구형 아날로그 가전을 AI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홈 가전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소비의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전환을 통해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중국 정부의 전략적 의도가 담겨있다. 소비 부양과 산업 업그레이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이 정책의 기대효과는 명확하다. 단기적으로는 잠자고 있던 교체 수요를 깨워 소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중국 내 자동차 보유량은 약 3억 4천만 대, 주요 가전제품 보유량은 30억 대를 넘어섰다. 이 중 상당수가 교체 주기에 들어선 노후 제품들이다. 막대한 잠재 수요에 보조금이라는 인센티브가 더해지면, 관련 기업들의 매출 증대와 재고 소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산업 고도화 효과다. 이구환신 정책은 수요 측면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미래형 제품'의 시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신에너지차 구매 보조금은 BYD, 니오(Nio) 등 자국 전기차 기업들에게는 안정적인 내수 시장을 보장해주며, 이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가격 경쟁력 확보에 매진할 동력을 제공한다. 스마트 가전 역시 마찬가지다. 하이얼, 메이디 같은 기업들은 정부가 창출한 교체 수요를 발판 삼아 사물인터넷(IoT)과 AI 기술이 결합된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낼 수 있다. 결국 이구환신은 수요가 공급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중국 제조업의 체질을 전통적인 '규모의 경제'에서 '기술 기반 경제'로 바꾸려는 시도인 셈이다. 넘어야 할 산: 재정 부담과 소비자의 신뢰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 부담이다. 막대한 보조금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명확한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미 부동산 시장 침체로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는 지방정부가 보조금 지급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원 마련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또한, 위축된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다. 현재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근본적인 이유는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고용 시장이 불안하고 자산 가치(부동산)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보조금만으로 고가의 내구소비재 구매를 선뜻 결정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구환신 정책이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앞당겨 쓰는 '수요 이연'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결론적으로, '이구환신' 정책은 중국 경제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미래 산업을 향한 전략적 투자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 정책이 단순한 경기 부양을 넘어 중국 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이끄는 성공적인 촉매가 될 수 있을지, 혹은 막대한 재정만 투입한 채 미미한 효과에 그칠지는 향후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중국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 여부에 달려있다. 전 세계가 그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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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환신(以旧换新)' 정책, 소비 진작을 넘어 산업 고도화의 촉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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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이라는 아킬레스건, '탕핑'을 넘어선 세대의 출구는?
-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현대 중국의 정당성은 암묵적인 사회 계약에 기반한다. '정치적 자유를 논하지 않는 대신, 경제적 번영과 안정적인 삶을 보장한다.' 지난 40여 년간의 개혁개방은 이 약속이 유효함을 증명하는 거대한 성공 서사였다. 그러나 지금, 이 견고했던 계약의 가장 약한 고리가 드러나고 있다. 바로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이라는 아킬레스건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한 세대의 좌절이자,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잠재적 뇌관이다. 통계가 보여주는, 그리고 감추는 현실 공식적인 수치만으로도 문제는 심각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023년 6월, ‘21.3%’라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도시 청년 5명 중 1명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상황이 악화되자 당국은 약 6개월간 돌연 통계 발표를 중단했고, 올해부터 '재학생을 제외한다'는 새로운 기준으로 수치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기준으로도 실업률은 14%대를 오르내리며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식 통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장단단(張丹丹) 베이징대 교수의 연구팀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자발적 실업 상태의 청년, 즉 부모에게 의존해 생활하는 '캥거루족' 등을 포함할 경우, ‘실질적인 청년 실업률은 무려 46.5%’에 달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중국 청년 두 명 중 한 명은 사실상 온전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매년 1,100만 명 이상의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는 거대한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구조적 미스매치와 정책적 충격의 합작품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이는 복합적인 원인이 얽힌 결과다. 첫째, 고질적인 '구조적 미스매치'다. 중국의 대학교들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보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졸업생을 과도하게 배출해왔다. 반면, 제조업 현장에서는 숙련된 기술공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고학력 저숙련' 인력의 과잉 공급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쿵이지의 긴 두루마기(孔乙己的长衫)'라는 밈(meme)은 이러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육체노동을 하기엔 너무 많이 배웠고, 배운 것을 써먹을 지식인 일자리는 없는 청년들의 딜레마다. 둘째, 정부의 정책적 충격이 결정타를 날렸다. 시진핑 정부는 2021년부터 사교육 산업을 초토화한 '쌍감(双减)' 정책, 알리바바와 텐센트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에 대한 고강도 규제, 그리고 부동산 시장의 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을 동시에 추진했다. 이 세 분야는 모두 지난 10여 년간 대졸 청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일자리를 공급하던 핵심 산업이었다. 하나의 정책도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동시에 가하면서, 청년 고용 시장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탕핑'과 '바이란', 소극적 저항을 넘어 이러한 현실 앞에서 중국 청년 세대가 보인 반응은 '탕핑(躺平, 드러눕기)'과 '바이란(摆烂, 될 대로 되라)'으로 대표된다. 치열한 경쟁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최소한의 생존만 유지하며 분투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나태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설계한 성공 공식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자 합리적 선택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데 굳이 애쓸 필요가 있는가?"라는 자조 섞인 질문이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실업 청년들이 사회 불만 세력으로 전환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이다. 당국은 청년들에게 창업을 독려하고, 농촌으로 내려가 일자리를 찾으라는 '신상산하향(新上山下乡)' 운동을 장려하며, 국유기업과 공무원 채용을 늘리는 등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문제의 폭발을 지연시키는 임시방편에 가깝다. 출구를 찾아서: 세대의 고민과 국가의 과제 '탕핑'을 넘어선 세대의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현재 청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배달, 차량 호출 등 긱 이코노미(gig economy)에 뛰어들거나, 취업난을 피해 대학원으로 진학해 시간을 벌거나, 심지어 매달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며 '전업자녀(全职儿女)'로 사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중국 경제의 체질 개선에 있다. 정부 주도의 투자가 아닌, 민간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신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의 고삐를 풀고, 민간 기업가들의 불안을 해소하여 투자를 유도하며, 미래 산업에 대한 예측과 함께 교육 시스템을 개혁하는 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하다. 중국 청년 실업 문제는 이제 막 곪아 터지기 시작한 상처다.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한 세대의 좌절을 방치한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한 번영을 이룰 수 없다. '중국의 꿈(中国梦)'이 신기루가 되지 않기 위해, 시진핑 정부는 이제 가장 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대수술에 나서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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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이라는 아킬레스건, '탕핑'을 넘어선 세대의 출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