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8-26(화)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 내수 부진, 그리고 디플레이션의 그림자. 2025년 중국 경제를 짓누르는 이 삼중고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다시 한번 과거에 성공했던 정책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이구환신(以旧换新)', 우리말로 '헌 것을 새것으로 바꾼다'는 의미의 대규모 소비재 교체 지원 정책이다. 자동차, 가전 등 내구소비재 교체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는 단기 부양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것을 넘어, 중국의 산업 구조를 미래형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거대한 야망이 숨어있다. 과연 이구환신은 단순한 소비 진작을 넘어 중국 산업 고도화의 촉매가 될 수 있을까?

 

 

15년 만의 재등장, 규모와 목표부터 다르다

이구환신 정책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처음 시행되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당시 정책이 4조 위안 규모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맞물려 경제를 V자 반등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5년 만에 다시 등장한 2025년의 이구환신은 그 규모와 목표에서 과거와 궤를 달리한다.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행동 방안에 따르면, 이번 정책의 핵심은 자동차와 가전 두 축으로 나뉜다. 자동차의 경우, 노후 내연기관차를 폐차하고 신에너지차(NEV)로 교체 시 ‘최대 1만 위안(약 19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가전 부문에서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스마트 가전, 친환경 가구 등으로 교체하는 소비자에게 보조금 혜택을 제공한다. 중국 상무부의 추산에 따르면, 이 정책으로 인해 창출될 시장 규모는 자동차 부문에서만 1조 위안, 가전 부문에서 수천억 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전체 설비 교체 수요를 연간 5조 위안(약 950조 원) 이상으로 추정하며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핵심적인 차이는 정책의 지향점이다. 2009년에는 단순히 '소비'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면, 2025년의 목표는 “'녹색(绿色)'과 '스마트(智能)'”라는 키워드로 압축된다. 즉, 단순히 낡은 차를 새 차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구형 아날로그 가전을 AI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홈 가전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소비의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전환을 통해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중국 정부의 전략적 의도가 담겨있다.

 

 

소비 부양과 산업 업그레이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이 정책의 기대효과는 명확하다. 단기적으로는 잠자고 있던 교체 수요를 깨워 소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중국 내 자동차 보유량은 약 3억 4천만 대, 주요 가전제품 보유량은 30억 대를 넘어섰다. 이 중 상당수가 교체 주기에 들어선 노후 제품들이다. 막대한 잠재 수요에 보조금이라는 인센티브가 더해지면, 관련 기업들의 매출 증대와 재고 소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산업 고도화 효과다. 이구환신 정책은 수요 측면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미래형 제품'의 시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신에너지차 구매 보조금은 BYD, 니오(Nio) 등 자국 전기차 기업들에게는 안정적인 내수 시장을 보장해주며, 이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가격 경쟁력 확보에 매진할 동력을 제공한다. 스마트 가전 역시 마찬가지다. 하이얼, 메이디 같은 기업들은 정부가 창출한 교체 수요를 발판 삼아 사물인터넷(IoT)과 AI 기술이 결합된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낼 수 있다.

 

결국 이구환신은 수요가 공급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중국 제조업의 체질을 전통적인 '규모의 경제'에서 '기술 기반 경제'로 바꾸려는 시도인 셈이다.

 

 

넘어야 할 산: 재정 부담과 소비자의 신뢰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 부담이다. 막대한 보조금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명확한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미 부동산 시장 침체로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는 지방정부가 보조금 지급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원 마련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또한, 위축된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다. 현재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근본적인 이유는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고용 시장이 불안하고 자산 가치(부동산)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보조금만으로 고가의 내구소비재 구매를 선뜻 결정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구환신 정책이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앞당겨 쓰는 '수요 이연'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결론적으로, '이구환신' 정책은 중국 경제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미래 산업을 향한 전략적 투자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 정책이 단순한 경기 부양을 넘어 중국 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이끄는 성공적인 촉매가 될 수 있을지, 혹은 막대한 재정만 투입한 채 미미한 효과에 그칠지는 향후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중국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 여부에 달려있다. 전 세계가 그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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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환신(以旧换新)' 정책, 소비 진작을 넘어 산업 고도화의 촉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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