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증거인멸 염려"… 95세 초고령에도 사안 중대성 감안해 발부
- 종교계 숙원 사업 노린 '정교유착' 의혹, 정치권 전방위 수사 불가피
- 암호명 '필라테스 프로젝트'로 피라미드식 하달… "윤석열 당선시켜야" 진술 확보
신도 수만 명을 특정 정당에 불법 가입시킨 혐의를 받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 이만희(95) 총회장이 24일 전격 구속됐다.
지난 1월 6일 ‘정교유착 비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출범한 검·경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가 수사 착수 169일 만에 의혹의 최정점에 대한 신병을 확보한 것이다. 대규모 조직을 동원한 선거 개입 정황이 법원의 1차 판단을 거쳐 소명됨에 따라, 향후 수사는 당시 여당 경선 캠프 및 정치권 전반의 공모 여부로 확대될 전망이다.
장맛비 속 굳게 닫힌 법정… 초고령에도 '증거인멸 우려'가 갈랐다
서울중앙지법 김진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밤 정당법 위반 및 업무방해 등 혐의를 받는 이 총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 부장판사는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거친 뒤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발부 사유를 짧게 밝혔다. 장마철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던 이날 서울중앙지법 주변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경찰 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피의자가 올해 95세의 초고령이라는 점에서 영장 발부 여부를 두고 관측이 엇갈렸다. 통상 고령자의 경우 방어권 보장과 건강상의 이유로 불구속 수사가 관례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사안의 중대성과 신천지 특유의 상명하복식 조직 구조상 수사 과정에서 증거가 체계적으로 인멸될 위험을 더 무겁게 본 것으로 풀이된다.
사법당국 통계에 따르면 과거 살인미수 혐의로 95세 남성이 구속된 판례가 존재하며, 현재 전국 교정시설 내 최고령 수감자는 1930년생인 96세다.
암호명 '필라테스 프로젝트'… 확인된 불법 당원만 5.6만 명
합수본에 따르면 이 총회장은 지난 2021년부터 2024년 사이 국민의힘 대선 및 총선 경선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신도들의 당원 가입을 강제한 혐의를 받는다. 현행 정당법 제42조는 '누구든지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정당 가입이나 탈당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합수본이 압수수색 등을 통해 현재까지 확보한 신천지 소속 국민의힘 당원 가입자 수는 최소 5만 6,472명에 이른다. 조사 결과 신천지는 내부적으로 이를 ‘필라테스 프로젝트’라는 위장 명칭으로 명명한 뒤 각 지파에 할당량을 부여했다. 동원 명령은 '이만희 총회장 → 총무 → 각 지파장 → 교회 담임 → 장년회·부녀회·청년회'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식 지휘 계통을 통해 말단 신도들에게까지 하달된 것으로 파악됐다.
"윤석열 대선 이겨야" 진술 확보… 종교 시설 용도변경 대가성 조준
수사의 핵심 타깃은 이 같은 대규모 동원령의 '배경'이다. 합수본은 이 총회장이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전국 주요 간부들에게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 신도들을 국민의힘에 당비를 내는 당원으로 가입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지시했다는 복수의 간부 진술을 확보했다.
검경은 신천지 측이 수만 명의 당원을 동원해 주는 대가로, 신천지 소속 교회 건물의 용도 변경 등 지자체 및 정치권의 입김이 필요한 교단 내 숙원 현안을 해결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신천지의 집단 입당 행위가 국민의힘의 정상적인 경선 관리 및 선거 업무를 방해했다고 판단, 업무방해 혐의 역시 영장에 적시했다. 반면 이 총회장 측 변호인단은 영장 심사 과정에서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정당에 가입한 것이며 총회장의 명시적 강요는 없었다"며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른 불구속 수사를 강하게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구속은 단순히 한 종교 단체장의 일탈을 넘어, 대한민국 정당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그대로 노출한 사건이다.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5만 6,400여 표는 경선 판도를 통째로 뒤집을 수 있는 메가톤급 수치다. 실제로 지난 2021년 말 치러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당원 투표 총 선거인단 수는 약 56만 명이었으며, 실제 투표자는 약 36만 명이었습니다. 즉, 합수본이 파악한 신천지 신도 수만 전체 투표자의 약 15%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한다.
익명을 요구한 헌법학계 관계자는 "정당법 제42조 위반으로 이 정도 규모의 구속 영장이 발부된 것은 헌정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당내 경선'은 공직 선거의 전 단계로서 공직선거법에 준하는 공정성을 요구받는다. 특정 집단이 조직의 이익을 위해 당원 지위를 '매집'했다면 이는 정당의 업무방해를 넘어 유권자의 참정권을 왜곡한 국기문란 행위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합수본의 남은 과제는 '단방향 동원'이었는지, 정치권과의 '쌍방향 거래'였는지 입증하는 것이다. 신천지 측이 당원 가입 명부를 무기로 당시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나 캠프 측에 구체적인 민원 청탁서나 각서를 전달한 물증이 확보될 경우, 사건은 단순 정당법 위반을 넘어 대형 '정치 브로커 게이트'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