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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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등(紅燈)', 붉은 등불 아래 갇힌 여인들의 비극적 아리아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이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수십 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서사시라면, 1991년 작 '홍등'은 거대한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단 일 년의 시간 동안 벌어지는 밀도 높은 심리 비극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을 거대한 진씨 가문의 저택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의 암투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어쩌면 등장인물이 아니라, 매일 밤 켜지고 꺼지는 '붉은 등(紅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흔히 경사와 환희의 상징으로 쓰이는 홍등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권력의 상징이자, 여성들의 욕망과 질투, 그리고 마침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비추는 지옥의 불빛으로 기능한다. 네 번째 부인, 새로운 비극의 시작 1부: 닫힌 문으로 들어간 대학생 1920년대 중국. 대학까지 다닌 신여성 송련(공리 분)은 아버지가 죽고 집안이 몰락하자, 계모의 강권에 의해 부유한 진 대감의 네 번째 첩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첩이 되는 것은 운명이라면, 부잣집 첩이 되는 것은 나의 선택"이라며 스스로 가마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에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과 현실에 대한 체념이 뒤섞여 있다. 그녀가 도착한 진씨 가문의 저택은 끝이 보이지 않는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처럼 거대하고 폐쇄적인 공간이다. 그녀는 도착과 동시에 이 가문이 수십 년간 이어온 엄격하고 기이한 규칙에 복종해야 함을 배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규칙은 바로 '홍등'이다. 매일 저녁, 진 대감은 네 명의 부인 중 그날 밤을 함께 보낼 한 명을 선택하고, 선택된 부인의 처소 앞에는 거대한 붉은 등불이 내걸린다. 등불이 켜진 부인은 하인들의 극진한 시중과 발 마사지 서비스를 받으며, 다음 날 아침 식사 메뉴까지 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누린다. 홍등은 곧 한 여인의 운명 그 자체였다. 2부: 웃음 뒤에 숨겨진 칼날 여인들의 전쟁 송련은 곧 보이지 않는 전쟁터의 한복판에 던져진다. 그녀의 경쟁자는 이미 이 집의 규칙에 완벽하게 적응한 세 명의 부인들이다. 첫째 부인 유루는 이미 늙어 총애를 잃었지만, 아들을 낳은 덕에 집안의 큰어른으로 군림한다. 그녀는 이 비정한 시스템의 수호자다. 둘째 부인 탁운은 겉으로는 부처님처럼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뒤로는 온갖 계략을 꾸미는 전갈 같은 여인이다. 셋째 부인 미산은 전직 경극 배우 출신으로, 아름답고 교만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는 송련과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는 인물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젊고 아름다운 송련은 처음에는 진 대감의 총애를 독차지한다. 매일 밤 그녀의 처소에 홍등이 걸리자, 다른 부인들의 시기와 질투는 극에 달한다. 둘째 부인은 거짓 친절로 송련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겠다며 귀에 상처를 내고, 셋째 부인은 경극을 부르며 그녀의 신경을 긁는다. 송련의 시녀인 연아마저 몰래 자신의 방에 홍등을 걸어놓고 부인이 되기를 꿈꾸며 그녀를 저주한다. 3부: 거짓 임신 파국으로 치닫는 욕망 송련은 이 지옥 같은 암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험한 거짓말을 계획한다. 바로 '거짓 임신'이다. 임신한 부인의 처소에는 밤낮으로 홍등이 꺼지지 않는다는 규칙을 이용한 것이다. 그녀의 계략은 성공하고, 송련은 최고의 권력을 맛본다. 하지만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녀의 거짓을 눈치챈 시녀 연아의 밀고로 모든 것이 들통나고 만다. 분노한 진 대감은 그녀의 처소에 걸렸던 홍등을 검은 천으로 덮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는 이 집안에서 여인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치욕이자, 영원한 냉궁(冷宮)으로의 추방 선고였다. 시녀 연아 또한 하극상의 죄를 물어 눈밭에 꿇어앉는 벌을 받다가 결국 병을 얻어 죽는다. 4부: 광기 그리고 새로운 희생자 모든 것을 잃고 유폐된 송련은 점차 이성을 잃어간다. 어느 날 술에 취한 그녀는, 자신이 셋째 부인 미산과 집안의 주치의인 고 대감이 밀회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무심코 내뱉는다. 이 말은 둘째 부인의 귀에 들어가고, 곧바로 진 대감에게 보고된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부인을 처리하는 집안의 비밀스러운 규칙에 따라, 미산은 하인들에게 끌려가 지붕 위 외딴방, '죽음의 방'이라 불리는 곳에서 교살당한다. 멀리서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송련은 결국 완전히 미쳐버린다. 시간이 흘러 다시 여름이 찾아오고, 진씨 가문에는 앳된 얼굴의 '다섯째 부인'이 새로운 가마를 타고 들어온다. 하인의 안내를 받던 그녀는, 텅 빈 넷째 부인의 처소에서 미친 여자가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 대학생 시절 입었던 낡은 교복 차림으로, "홍등을 밝혀라"라고 중얼거리는 여자. 바로 송련이었다. 잔혹한 역사는 새로운 희생자를 맞이하며 다시 시작될 참이었다. 완벽한 형식미, 잔혹한 알레고리 숨 막히는 미장센과 색채의 미학 '홍등'은 장이머우 감독이 왜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지를 증명하는 영화다. 대칭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저택의 구조는 인물들을 옭아매는 거대한 감옥이자 거미줄처럼 보인다. 회색빛 담벼락과 지붕의 삭막한 무채색은, 그 안에서 타오르는 여인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홍등'의 핏빛 같은 붉은색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시각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카메라는 종종 멀리서 인물들을 관조하며, 그들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발버둥 치는 미약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권력에 대한 냉정한 알레고리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군벌 시대지만, '홍등'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권력 시스템'에 대한 잔혹한 알레고리다.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진 대감'은 절대적이고 비인격적인 권력 그 자체(국가, 당, 혹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네 명의 부인들은 그 권력의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피지배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진 대감에게 저항하는 대신, 서로를 헐뜯고 음해하며 더 큰 비극을 자초한다. 이는 억압적인 체제 하에서 피지배자들이 어떻게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며 스스로 체제의 노예가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름 끼치는 통찰이다. 억압의 도구로서의 '의식(Ritual)' 매일 저녁 반복되는 홍등 점등식, 발 마사지, 식사 메뉴 결정권 등은 단순한 가풍이 아니다. 이것은 권력자가 피지배자를 통제하고 서열을 매기는 정교한 '의식'이다. 이 의식을 통해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직 '주인의 선택'에만 두게 되고, 그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게 된다. 체제 비판의 우화, 그 너머 '홍등'이 발표된 1991년은 1989년 천안문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때문에 많은 서구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중국의 억압적인 정치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은유로 해석했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절대 권력과, 그 안에서 서로를 감시하며 파멸해가는 개인들의 모습은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의 관객에게 이 영화의 가부장제 비판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과 겹쳐 보이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홍등'의 위대함은 그것을 넘어선다. 영화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라는 이분법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 송련 역시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며,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과 기만을 서슴지 않는다. 결국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비인간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모든 구성원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들어 버리는가의 비극적 메커니즘이다. 가장 아름다운 화면에 담긴 가장 잔혹한 이야기 '홍등'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더욱 서늘하고 잔혹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화려한 색채와 완벽한 구도 속에 갇힌 인물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은 한 편의 잘 짜인 비극 오페라를 보는 듯하다. 장이머우 감독은 이 정교한 비극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억압적인 체제와 만났을 때 어떻게 스스로를 파멸시키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화려한 색채와 완벽한 구도 속에 담긴 숨 막히는 비극을 체험하고 싶은 분, 봉건적 체제가 한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고 싶은 분, 그리고 한 편의 영화가 얼마나 깊이 있는 정치적, 사회적 은유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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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31
  • '패왕별희', 경극 무대 위에서 스러져간 시대와 사랑의 대서사시
    천카이거 감독의 1993년 작 '패왕별희'는 중국 영화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시대극이나 퀴어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1920년대 군벌 시대부터 중일전쟁, 공산 혁명과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중국의 모든 비극을 두 경극 배우의 삶을 통해 압축적으로 증언하는 한 편의 거대한 역사서다. 경극 '패왕별희' 속 초패왕과 그의 연인 우희의 관계처럼, 무대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삶을 살아야 했던 두 남자의 이야기는, 예술과 사랑, 그리고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스러져가는지를 처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무대에서 시작되어 무대에서 끝난 삶 1부: 운명의 시작, 두 소년의 만남 (1920년대) 1924년 베이징, 홍등가의 창녀인 어머니는 아들 두지를 경극 학교에 맡기려 한다. 하지만 손가락이 여섯 개인 기형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아들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내고 아들을 버려둔 채 떠난다. 그렇게 끔찍한 배신과 함께 두지의 경극 인생이 시작된다.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훈련 속에서 연약한 두지는 늘 고통받지만, 그때마다 형처럼 듬직한 시투가 그를 감싸준다. 두지는 여자 역할인 '우희'를 맡게 되지만,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 사내아이와는 달라"라는 대사를 끝끝내 외우지 못하고 "나는 본래 사내아이"라고 외치며 저항한다. 그의 정체성을 뒤바꾼 것은 또 한 번의 폭력이었다. 시투가 담뱃대로 그의 입 안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쑤셔 넣자, 비로소 두지는 피를 삼키며 "나는 본래 계집아이"라고 읊조린다. 이 순간, 소년 두지는 죽고 무대 위의 우희, 청데이가 탄생한다. 2부: 사랑과 질투, 세 사람의 엇갈린 운명 (1930~40년대) 세월이 흘러 시투는 초패왕 역의 단샬로로, 두지는 우희 역의 청데이로 최고의 경극 스타가 된다. 데이는 무대 위의 역할처럼 샬로를 향한 사랑을 현실에서도 이어가지만, 샬로는 무대와 현실을 구분하는 호탕한 사내다. 그는 베이징 최고의 홍등가 화만루의 일등 기녀인 주샨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선언한다. 데이는 주샨이 자신과 샬로 사이의 완벽한 세계를 파괴한 침입자라 여기며 극도의 증오와 질투심을 드러낸다. 그렇게 데이와 샬로, 그리고 주샨 세 사람의 위태로운 애증 관계가 시작된다. 중일전쟁 시기, 샬로가 일본군에게 끌려가자 데이는 그를 구하기 위해 일본군 장교 앞에서 경극 공연을 한다. 이 일은 훗날 그의 발목을 잡는 '부역'의 꼬리표가 된다. 이 시기 데이는 아편에 중독되고, 주샨은 샬로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며 가정을 지키려 애쓴다. 3부: 혁명의 광기, 파멸의 무대 (1950~70년대) 공산당이 집권하자 세상은 또 한 번 뒤바뀐다. 경극은 '봉건적 예술'이라 비판받고, 데이와 샬로는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끄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친다.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들은 데이와 샬로를 '반동분자'로 지목하고, 인민재판의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군중의 광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자기부정과 상호 비방이 시작된다. 평생의 버팀목이었던 샬로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데이가 일본군에게 공연한 사실과 동성애 관계를 폭로하며 "그를 사랑한 적 없다"고 외친다. 믿었던 왕에게 버림받은 데이는 이성을 잃고 샬로의 아내 주샨이 창녀였음을 폭로한다. 궁지에 몰린 샬로는 "저 여자를 사랑한 적 없다, 저 창녀와 절연하겠다"고 맹세한다. 남편의 마지막 배신에 모든 희망을 잃은 주샨은, 과거 결혼식 때 입었던 붉은 혼례복을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수십 년간 이어진 세 사람의 질긴 인연은 그렇게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패왕별희 11년의 세월이 흐른 1977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텅 빈 실내체육관에서 늙고 지친 데이와 샬로가 재회한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패왕별희'를 연습한다. 초패왕이 우희에게 검을 건네며 탈출을 권유하는 마지막 장면.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 데이가 소년 시절의 그 대사를 무심코 내뱉자 샬로가 "계집아이지"라고 정정해준다. 그 순간 데이는 초패왕의 검을 뽑아, 무대 위의 우희처럼 자신의 목을 긋는다. 현실의 청데이는 죽고, 그는 영원히 무대 위의 우희로 남는 것을 택한다. 예술과 인생, 그 비극적 합일 무대와 현실의 경계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예술과 현실의 비극적 관계다. 청데이는 무대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혹은 구분하길 거부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경극 '패왕별희'는 연기가 아닌 자신의 삶 그 자체다. 반면 단샬로는 무대에서는 천하를 호령하는 패왕이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현실적인 인간이다. 영화는 예술이 때로는 잔혹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지만, 동시에 현실을 살아갈 능력을 파괴하는 감옥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정체성과 배신의 연쇄 두지의 정체성은 어머니의 칼끝에서, 그리고 시투의 담뱃대 끝에서 폭력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주입된 정체성을 데이는 평생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배신의 연쇄로 점철되어 있다. 어머니는 아들을 버리고, 샬로는 데이의 사랑을 배신하며, 결국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광기 속에서는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배신한다. 역사의 폭력은 가장 내밀한 인간관계마저 갈가리 찢어놓는다. 불멸의 연기와 미장센 '패왕별희'는 천카이거 감독의 압도적인 연출력과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가 결합된 cinematic한 성취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경극 무대와, 중일전쟁의 폐허,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획일적이고 푸른 인민복이 이루는 시각적 대비는 그 자체로 시대의 변화를 웅변한다. 무엇보다, 청데이 역을 맡은 고(故) 장국영의 연기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연기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남성과 여성, 예술과 현실, 사랑과 집착의 경계에 선 인물의 위태롭고 아름다운 영혼을 온몸으로 체화했다. '5세대 감독'의 시대적 증언 장이머우, 천카이거 등은 문화대혁명 이후 전문적인 영화 교육을 받은 '5세대 감독'으로 불린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겪은 중국 현대사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영화의 중심 소재로 가져왔다. '패왕별희'는 그중에서도 문화대혁명의 비인간성을 가장 정면으로, 그리고 가장 예술적으로 고발한 작품이다. 한국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예술가 수난사'라는 공감대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나 군부독재 시절, 수많은 한국의 예술가들 역시 시대의 검열과 이데올로기의 잣대 앞에서 창작의 자유를 억압받고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예술과 예술가의 운명이 어떻게 시대에 의해 규정되고 파괴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패왕별희'는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인 울림을 준다. 한 편의 영화, 한 시대의 역사 '패왕별희'는 단지 한 편의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중국의 20세기를 담아낸 거대한 박물관이자, 역사의 폭력 앞에 스러져간 수많은 개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이다. 3시간에 가까운 긴 상영 시간 동안, 관객은 한 시대의 영광과 오욕, 그리고 한 인간의 지고지순했던 사랑이 어떻게 부서져 내리는지를 온몸으로 목격하게 된다. 한 나라의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예술과 인생이 하나가 된 한 배우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과 신념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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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31
  • '인생(活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한 가족의 거대한 비극
    장이머우 감독의 1994년 작 '인생(活着)'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걸작이지만, 정작 고국인 중국에서는 상영이 금지된 비운의 작품이다. 영화 한 편이 한 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증언하고,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하기에 국가가 두려워하는지를 이 작품은 명백히 보여준다. '인생'은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 20세기 중국 현대사의 가장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스러져간 한 가족의 연대기이자, 그 모든 비극 속에서도 질기게 살아남은 민초들의 숨 가쁜 초상이다. 1940년대, 아직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기 전의 한 소도시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푸구이(福貴)’는 대지주의 아들로, 가업을 잇기는커녕 매일 도박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철부지다. 그의 아내 ‘지아전(家珍)’은 조용하고 현숙한 여인으로, 남편의 방탕한 생활에 속을 썩이면서도 묵묵히 가정을 지킨다. 그녀의 뱃속에는 둘째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푸구이의 도박벽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온다. 그는 전문 도박꾼이자 비열한 인수인 룽얼의 계략에 빠져, 선조 대대로 물려 내려온 거대한 저택과 땅을 모두 하룻밤 사이에 날리고 만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푸구이와 그의 가족은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된다. 친정으로 돌아갔던 아내 지아전은 얼마 후 아들 ‘유칭(有慶)’을 낳아 품에 안고, 가난해진 푸구이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철이 든 푸구이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그림자 연극(皮影戏)' 인형 상자를 밑천 삼아 생계를 꾸려나가기로 결심한다. 그림자 연극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푸구이는 동료 춘셩과 함께 국민당 군대에게 강제 징집된다. 전쟁터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추위와 굶주림, 끊임없는 포성 속에서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 나갔다. 푸구이는 오직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질긴 목숨을 이어간다. 얼마 후, 그가 속한 부대는 공산당 인민해방군에게 포로로 잡힌다. 죽음을 각오한 순간, 공산당 군인들은 지주 아들이었으나 재산을 모두 잃고 노동자가 되었다는 그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그를 '인민의 동지'로 받아들인다. 그는 이제 공산당 군인들을 위해 위문공연으로 그림자 연극을 하며 전쟁터를 누빈다. 수년 만에 고향 집으로 돌아온 푸구이.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딸 ‘펑시아(鳳霞)’가 심한 열병을 앓은 후유증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역사가 가족에게 남긴 첫 번째 깊은 상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과거 푸구이의 재산을 빼앗았던 룽얼은 '악질 지주'이자 '반혁명분자'로 몰려 인민재판 끝에 처형당한다. 푸구이는 그 모습을 보며 공포에 떨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어리석었던 도박이 역설적으로 목숨을 구했음을 깨닫는다. 만약 그가 계속 지주로 남아 있었다면, 처형당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을 것이다. 1950년대 말,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의 광풍이 전국을 휩쓴다. 온 인민이 집집마다 용광로를 만들어 쓸모없는 쇠붙이까지 녹여 강철을 생산하던 비이성적인 시대. 하지만 진짜 비극은 다른 곳에서 찾아온다. 어린 아들 유칭은 학교의 강철 생산 운동에 동원되어 며칠 밤낮으로 일하다 지쳐, 학교 담벼락 밑에서 깜빡 잠이 든다. 바로 그때, 구청장이 된 옛 동료 춘셩이 차를 몰고 학교로 들어오다 후진을 하던 중 담벼락을 들이받고, 잠자던 유칭은 그 자리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다. 아들의 죽음 앞에 지아전은 실신하고, 푸구이는 할 말을 잃는다. 1960년대, 중국 대륙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광기에 휩싸인다.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들이 낡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지식인과 경험 많은 의사들은 '반동분자'로 몰려 숙청당한다. 어느덧 어른으로 성장한 딸 펑시아는, 홍위병의 간부이지만 착한 청년 완얼시를 만나 결혼한다. 절망 속에서도 가족에게 찾아온 한 줄기 행복이었다. 얼마 후 펑시아는 아기를 낳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지만, 병원은 경험 많은 의사들이 모두 쫓겨나고, 의학 지식이라곤 전무한 어린 홍위병 학생 간호사들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펑시아는 무사히 아들 만두를 낳지만, 곧이어 심각한 하혈을 시작하고, 결국 과다출혈로 남편과 갓 태어난 아들의 곁에서 눈을 감는다. 모든 비극이 휩쓸고 지나간 후, 늙고 지친 푸구이와 지아전, 그리고 사위 완얼시와 손자 만두만이 남았다. 그렇게, 인생은 계속되고 있었다. 역사와 개인, 그리고 '살아낸다는 것' 거대 서사를 개인의 삶으로 녹여낸 장이머우의 연출 장이머우 감독은 자칫 교과서처럼 건조할 수 있는 중국 현대사를 푸구이라는 한 개인의 시선으로 끈질기게 따라간다. 국가의 거대한 구호와 이념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무참히 파괴하는지를 그는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포착한다. 특히, 푸구이가 생계를 위해 하는 '그림자 연극(皮影戏)'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상징이다. 그림자 연극은 격동의 시대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푸구이의 '예술'이자 '밥줄'이다. 정치적 구호에 따라 연극의 내용은 계속 바뀌지만, 막 뒤에서 인형을 놀리는 푸구이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이는 거대한 정치 이데올로기의 막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이어가야 했던 민초들의 운명을 은유한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갈우와 공리의 압도적 연기 이 영화는 배우 갈우와 공리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부지 도련님에서 역사의 풍파에 닳고 닳은 노인으로 변해가는 푸구이를 연기한 갈우의 표정은 그 자체가 중국 현대사다. 모든 것을 잃고 허망하게 웃는 그의 웃음은 웬만한 비극보다 더 깊은 슬픔을 자아낸다. 묵묵히 남편의 곁을 지키며 모든 고난을 감내하는 아내 지아전 역의 공리는 대륙의 어머니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녀의 강인함과 희생은 이 가족이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이었다.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내는 것'의 의미 영화의 중국어 원제인 '活着(huó zhe)'는 '살아있다'는 상태를 의미한다. 푸구이와 그의 가족은 영웅적인 투쟁을 하거나 시대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아들을 잃고, 딸을 잃고, 아내마저 떠나보낸 뒤, 늙은 소 한 마리와 함께 밭을 가는 푸구이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남는 것'이 아닌, 그 모든 비극을 통과하며 '살아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투쟁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국제시장'과 비교해 보기 이 영화가 중국에서 상영 금지된 이유는 명확하다. 공산당이 '위대한 영도'라고 선전하는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개인의 삶을 파괴한 ' absurdity'와 '폭력'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 해석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한국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영화 '국제시장'을 떠올릴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한 개인의 일생을 통해 한 나라의 현대사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국가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산업화 시대의 영웅상에 가깝다면, '인생'의 푸구이는 국가가 저지른 과오의 '희생자'에 가깝다. 두 영화를 비교해보는 것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바라보는 한중 양국의 미묘한 시각차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단초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인생'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연이어 닥치는 비극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인간의 나약함에 무력감을 느끼게도 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는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묵직한 질문과 함께, 그 모든 것을 감내한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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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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