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9-01(월)
 
  • 중국 사회를 뒤흔든 기적의 실화... 웃음과 눈물로 빚어낸 한 소시민의 위대한 변화

 

 

"그가 유죄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법이 꼭 정답은 아니지 않습니까?"

 

중국 대륙을 뒤흔든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상업 영화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2018년 여름, 중국 영화계는 '나는 약신이 아니다(我不是药神)'라는 영화 한 편으로 발칵 뒤집혔다. 이 영화는 단순히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 전역에 '의료 개혁'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담론을 촉발시켰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은 극장 안에서 함께 웃고 울었으며, 극장 밖에서는 웨이보 등 SNS를 통해 영화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급기야 리커창 총리가 직접 나서서 "영화가 지적한 의약품 가격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영화 한 편이 이토록 거대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돈 없고 힘없는 환자들의 절박한 생존 투쟁과,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선 한 소시민의 위대한 변화를 코미디와 드라마의 절묘한 결합으로 그려낸 기적 같은 영화다.

 

 

 

돈에 눈먼 밀수꾼, 환자들의 영웅이 되다

 

돈이 절실했던 한 남자 주인공 청융은 상하이에서 인도산 정력제를 파는, 별 볼 일 없는 중년 남성이다. 이혼한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이민을 가려 하고, 가게 월세는 밀려 있으며,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는 수술비가 급하다. 한마디로 돈이 절실한 인생이다.

 

어느 날, 두꺼운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인 뤼서우이다. 그는 스위스에서 수입하는 정품 치료제 '글리벡'이 한 달에 4만 위안(약 700만 원)에 달해, 자신과 같은 환자들은 약을 먹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는 청융에게 효과는 동일하지만 가격은 20분의 1에 불과한 인도산 복제약(제네릭)을 밀수해달라고 간청한다. 처음에는 감옥에 갈까 두려워 거절했던 청융. 하지만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해지자,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인도에서 복제약을 구해 온 청융은 환자들에게 약을 유통하기 위해 어설픈 팀을 꾸린다. 그를 찾아왔던 뤼서우이, 딸의 약값을 벌기 위해 폴댄서로 일하는 강인한 싱글맘 류쓰후이, 시골 출신의 순박하지만 힘센 청년 '황마오(노란 머리)', 그리고 영어를 할 줄 아는 류 목사까지. 각자의 절박한 사연을 가진 이들은 함께 약을 팔기 시작한다.

 

청융의 사업은 대성공을 거둔다. 그는 막대한 돈을 벌어 번듯한 사업가로 변신하고, 환자들은 값싼 약 덕분에 생명을 연장한다. 환자들은 청융을 '약의 신(药神)'이라 부르며 떠받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짝퉁 약'을 유통하는 그의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정품 약을 만드는 스위스 제약회사의 압력과 가짜 약 사기꾼까지 등장하면서 경찰의 수사망은 점점 좁혀온다. 겁이 난 청융은 마침 더 비싼 값에 합법적인 중국 총판권을 제안한 제약사 대표에게 유통권을 넘기고, 팀을 해체한 뒤 손을 털어버린다. 그는 환자들의 배신감 어린 눈빛을 외면한 채, 그동안 번 돈으로 섬유 공장을 차려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신한다.

 

1년 뒤, 청융은 뤼서우이를 다시 만난다. 약값이 다시 오르자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뤼서우이는 병세 악화와 생활고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청융은 절규하는 환자들의 원망과 마주한다.

 

친구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청융은 병원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약을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환자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그리고 위독해진 류쓰후이의 어린 딸을 보며 깊은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는 다시 인도로 날아간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오른 가격에 약을 사 와, 자신이 샀던 가격 그대로 환자들에게 팔기 시작한다. 심지어 약값이 더 오르자, 자신의 섬유 공장 돈까지 쏟아부으며 손해를 보면서 약을 공급한다. 돈을 벌기 위해 밀수를 시작했던 이기적인 소시민이,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환자들을 구하는 진정한 '약신'으로 거듭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선행은 오래가지 못한다. 경찰의 추적이 계속되고, 그를 돕던 '황마오'는 청융을 탈출시키기 위해 차를 몰고 경찰을 유인하다가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결국 청융은 체포된다. 재판정에는 그가 구해낸 수백 명의 백혈병 환자들이 몰려와 그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한다. 그를 쫓던 형사마저 그의 편에 서서 변론한다.

 

"그가 유죄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법이 꼭 정답은 아니지 않습니까?"

 

청융은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로 이송된다. 그가 탄 호송 버스가 도로를 지날 때, 길가에는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늘어서 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감염의 위험을 막아주던 마스크를 벗고, 자신들의 영웅에게 경의를 표하며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사회를 움직인 영화의 힘


 

코미디와 드라마의 절묘한 균형 '나는 약신이 아니다'의 가장 큰 미덕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대중적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어설픈 인물들이 모여 밀수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며 케이퍼 무비(caper movie)의 유쾌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의 비극적인 사연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루성 드라마로 전환된다. 이 영리한 장르의 변주는 관객들이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를 거부감 없이, 그리고 더욱 깊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기적 소시민, 영웅이 되다 주인공 청융은 처음부터 정의로운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돈을 밝히고 책임감도 없는, 지극히 속물적인 인물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의 변화는 더욱 설득력 있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위대한 이념 때문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고통받는 이웃의 죽음과 눈물을 목격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그의 영웅성은 평범한 사람의 마음속에 잠재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행동으로 발현된 결과다.

 

영화, 현실의 벽을 넘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지점은 스크린 밖 현실에 미친 영향력이다. 이 영화는 중국 사회에 "생존권과 특허권 중 무엇이 우선하는가?", "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수억 명의 관객이 이 질문에 공감했고, 이는 거대한 사회적 여론으로 형성되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영화 개봉 직후 항암제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고, 수십 종의 비싼 항암제를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신속한 정책 변화를 보여주었다. 예술이 현실을 바꾸는 기적을 실현한 것이다.

 

 

 

한중 양국의 '사회고발 영화' 계보

'나는 약신이 아니다'를 본 한국 관객이라면 자연스럽게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과 같은 영화들을 떠올릴 것이다. 평범했던 소시민이 시대적 사건을 겪으며 각성하고, 불의한 시스템에 저항하는 인물로 거듭나는 서사는 한국 영화의 성공 공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거 장이머우, 천카이거 등 '5세대 감독'들이 과거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비판했던 것과 달리,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동시대 중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는 중국 영화계에도 대중의 공감을 얻는 '사회고발 영화'가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하는 대중의 열망이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각기 다른 소재를 통해 스크린 위에서 발현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세상을 바꾼 용기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잘 만든 상업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미덕을 갖춘 작품이다. 관객을 웃고 울게 만드는 탄탄한 스토리,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 그리고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 영화는 돈이 생명보다 우선시되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평범한 한 사람이 시작한 선한 의지가 얼마나 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거다.

재미와 감동, 사회적 메시지를 모두 잡은 웰메이드 영화를 보고 싶은 분. 돈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분. 그리고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적을 믿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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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신이 아니다', 돈 없는 게 죄가 되는 세상을 향한 통쾌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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