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8-31(일)
 
  • 장이머우 감독이 그려낸 중국 현대사의 민낯...든 것을 잃게 한 격동의 역사
  • 웃음과 눈물 속에서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묻다.

 

 

장이머우 감독의 1994년 작 '인생(活着)'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걸작이지만, 정작 고국인 중국에서는 상영이 금지된 비운의 작품이다. 영화 한 편이 한 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증언하고,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하기에 국가가 두려워하는지를 이 작품은 명백히 보여준다. '인생'은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 20세기 중국 현대사의 가장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스러져간 한 가족의 연대기이자, 그 모든 비극 속에서도 질기게 살아남은 민초들의 숨 가쁜 초상이다.

 


 

1940년대, 아직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기 전의 한 소도시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푸구이(福貴)’는 대지주의 아들로, 가업을 잇기는커녕 매일 도박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철부지다. 그의 아내 ‘지아전(家珍)’은 조용하고 현숙한 여인으로, 남편의 방탕한 생활에 속을 썩이면서도 묵묵히 가정을 지킨다. 그녀의 뱃속에는 둘째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푸구이의 도박벽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온다. 그는 전문 도박꾼이자 비열한 인수인 룽얼의 계략에 빠져, 선조 대대로 물려 내려온 거대한 저택과 땅을 모두 하룻밤 사이에 날리고 만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푸구이와 그의 가족은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된다. 친정으로 돌아갔던 아내 지아전은 얼마 후 아들 ‘유칭(有慶)’을 낳아 품에 안고, 가난해진 푸구이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철이 든 푸구이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그림자 연극(皮影戏)' 인형 상자를 밑천 삼아 생계를 꾸려나가기로 결심한다.

 

그림자 연극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푸구이는 동료 춘셩과 함께 국민당 군대에게 강제 징집된다. 전쟁터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추위와 굶주림, 끊임없는 포성 속에서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 나갔다. 푸구이는 오직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질긴 목숨을 이어간다. 얼마 후, 그가 속한 부대는 공산당 인민해방군에게 포로로 잡힌다. 죽음을 각오한 순간, 공산당 군인들은 지주 아들이었으나 재산을 모두 잃고 노동자가 되었다는 그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그를 '인민의 동지'로 받아들인다. 그는 이제 공산당 군인들을 위해 위문공연으로 그림자 연극을 하며 전쟁터를 누빈다.

 

수년 만에 고향 집으로 돌아온 푸구이.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딸 ‘펑시아(鳳霞)’가 심한 열병을 앓은 후유증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역사가 가족에게 남긴 첫 번째 깊은 상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과거 푸구이의 재산을 빼앗았던 룽얼은 '악질 지주'이자 '반혁명분자'로 몰려 인민재판 끝에 처형당한다. 푸구이는 그 모습을 보며 공포에 떨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어리석었던 도박이 역설적으로 목숨을 구했음을 깨닫는다. 만약 그가 계속 지주로 남아 있었다면, 처형당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을 것이다.

 

1950년대 말,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의 광풍이 전국을 휩쓴다. 온 인민이 집집마다 용광로를 만들어 쓸모없는 쇠붙이까지 녹여 강철을 생산하던 비이성적인 시대. 하지만 진짜 비극은 다른 곳에서 찾아온다. 어린 아들 유칭은 학교의 강철 생산 운동에 동원되어 며칠 밤낮으로 일하다 지쳐, 학교 담벼락 밑에서 깜빡 잠이 든다. 바로 그때, 구청장이 된 옛 동료 춘셩이 차를 몰고 학교로 들어오다 후진을 하던 중 담벼락을 들이받고, 잠자던 유칭은 그 자리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다. 아들의 죽음 앞에 지아전은 실신하고, 푸구이는 할 말을 잃는다.

 

1960년대, 중국 대륙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광기에 휩싸인다.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들이 낡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지식인과 경험 많은 의사들은 '반동분자'로 몰려 숙청당한다. 어느덧 어른으로 성장한 딸 펑시아는, 홍위병의 간부이지만 착한 청년 완얼시를 만나 결혼한다. 

 

절망 속에서도 가족에게 찾아온 한 줄기 행복이었다. 얼마 후 펑시아는 아기를 낳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지만, 병원은 경험 많은 의사들이 모두 쫓겨나고, 의학 지식이라곤 전무한 어린 홍위병 학생 간호사들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펑시아는 무사히 아들 만두를 낳지만, 곧이어 심각한 하혈을 시작하고, 결국 과다출혈로 남편과 갓 태어난 아들의 곁에서 눈을 감는다.

 

모든 비극이 휩쓸고 지나간 후, 늙고 지친 푸구이와 지아전, 그리고 사위 완얼시와 손자 만두만이 남았다. 그렇게, 인생은 계속되고 있었다.

 

 

 

역사와 개인, 그리고 '살아낸다는 것'

 

 

거대 서사를 개인의 삶으로 녹여낸 장이머우의 연출 장이머우 감독은 자칫 교과서처럼 건조할 수 있는 중국 현대사를 푸구이라는 한 개인의 시선으로 끈질기게 따라간다. 국가의 거대한 구호와 이념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무참히 파괴하는지를 그는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포착한다. 특히, 푸구이가 생계를 위해 하는 '그림자 연극(皮影戏)'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상징이다. 그림자 연극은 격동의 시대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푸구이의 '예술'이자 '밥줄'이다. 정치적 구호에 따라 연극의 내용은 계속 바뀌지만, 막 뒤에서 인형을 놀리는 푸구이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이는 거대한 정치 이데올로기의 막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이어가야 했던 민초들의 운명을 은유한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갈우와 공리의 압도적 연기 이 영화는 배우 갈우와 공리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부지 도련님에서 역사의 풍파에 닳고 닳은 노인으로 변해가는 푸구이를 연기한 갈우의 표정은 그 자체가 중국 현대사다. 모든 것을 잃고 허망하게 웃는 그의 웃음은 웬만한 비극보다 더 깊은 슬픔을 자아낸다. 묵묵히 남편의 곁을 지키며 모든 고난을 감내하는 아내 지아전 역의 공리는 대륙의 어머니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녀의 강인함과 희생은 이 가족이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이었다.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내는 것'의 의미 영화의 중국어 원제인 '活着(huó zhe)'는 '살아있다'는 상태를 의미한다. 푸구이와 그의 가족은 영웅적인 투쟁을 하거나 시대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아들을 잃고, 딸을 잃고, 아내마저 떠나보낸 뒤, 늙은 소 한 마리와 함께 밭을 가는 푸구이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남는 것'이 아닌, 그 모든 비극을 통과하며 '살아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투쟁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국제시장'과 비교해 보기

 

이 영화가 중국에서 상영 금지된 이유는 명확하다. 공산당이 '위대한 영도'라고 선전하는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개인의 삶을 파괴한 ' absurdity'와 '폭력'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 해석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한국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영화 '국제시장'을 떠올릴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한 개인의 일생을 통해 한 나라의 현대사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국가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산업화 시대의 영웅상에 가깝다면, '인생'의 푸구이는 국가가 저지른 과오의 '희생자'에 가깝다. 두 영화를 비교해보는 것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바라보는 한중 양국의 미묘한 시각차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단초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인생'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연이어 닥치는 비극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인간의 나약함에 무력감을 느끼게도 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는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묵직한 질문과 함께, 그 모든 것을 감내한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남는다.

역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살아온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싶은 분, 거대한 이념보다 한 개인의 삶이 소중하다고 믿는 모든 분께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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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活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한 가족의 거대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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