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익 미끼 취업사기부터 감금·살해까지… 동남아 신흥 범죄 소굴로 떠오른 캄보디아

최근 캄보디아가 한국인 청년들을 겨냥한 강력범죄의 온상으로 급부상하며 충격을 주고 있다. '고수익 보장'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속아 현지로 향했던 이들이 취업사기는 물론, 감금, 폭행,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아름다운 앙코르와트로 기억되던 '기회의 땅'이 어쩌다 한국인에게 '범죄의 늪'이 되었을까.
1. 비극의 서막: '월 천만 원'의 유혹
사건의 발단은 대부분 소셜미디어(SNS)에 무분별하게 퍼지는 '고수익 해외 취업' 광고에서 시작된다. '항공권·숙식 제공', '간단한 업무로 월 1000만 원 보장' 등 현실성 없는 조건을 내걸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20~30대 청년들을 유인하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중국계 범죄조직이 운영하는 온라인 도박, 보이스피싱 등 불법 사업체에 고용된다. 막상 캄보디아에 도착하면 조직원들에게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외딴곳에 감금된 채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 할당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이 뒤따른다.
지난 8월, 캄보디아 깜폿주의 한 숙소에서 20대 한국인 대학생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이러한 범죄의 참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씨 역시 고수익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캄보디아로 향했다가 범죄조직에 감금돼 고문을 당하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의 용의자들은 모두 중국인으로 밝혀져 현지 중국계 범죄조직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2. 끔찍한 실상: 감금, 고문, 그리고 죽음
피해자들은 철저한 감시 속에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채 생활한다. 탈출을 시도하다 발각되면 더욱 가혹한 폭력에 시달리거나 다른 조직에 팔려나가는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일부 피해자들은 가족에게 연락해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최근에는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 범죄 의심 인물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온라인 채널까지 등장했다. 이곳에는 숨진 A씨가 강제로 마약을 투약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공개돼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캄보디아 내 한국인 대상 범죄가 폭증하자, 정부의 더딘 대응에 답답함을 느낀 이들이 '자경단' 성격의 활동에 나선 것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감금 피해 신고 건수는 2023년 연간 10~20건 수준에서 지난해 220건, 올해는 330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공식적인 통계일 뿐, 실제 피해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3. 현재 상황과 양국 정부의 대응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한국 정부는 캄보디아에 대한 여행경보 상향 조정을 검토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현지 공관을 통해 피해자 구출 및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당국에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와 범인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검거된 한국인 피의자 60여 명에 대한 국내 송환도 추진 중이다.
캄보디아 정부 또한 훈 마넷 총리의 지시로 온라인 사기 조직 소탕을 위한 대대적인 단속에 착수했다. 최근 프놈펜 등지에서 중국인을 포함한 수백 명의 범죄조직원들이 체포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현지 경찰의 부패 문제와 범죄조직의 뿌리 깊은 유착 관계는 근본적인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양국은 1997년 수교 이래 꾸준히 우호적인 관계를 발전시켜왔으나, 이번 사태로 인해 양국 관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잇따른 강력 범죄 소식에 한국 내에서는 캄보디아 여행 취소 사태가 잇따르는 등 반(反)캄보디아 감정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한국 언론과 여론은 이번 사태를 집중 조명하며 정부의 미온적인 초기 대응을 비판하고, 재외국민 보호 시스템의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고수익 해외취업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캠페인도 진행되고 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이 국가 이미지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관광 산업이 주요 수입원인 캄보디아로서는 '범죄 국가'라는 오명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캄보디아만의 문제가 아닌,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초국가적 범죄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주변국과의 긴밀한 사법 공조 체계를 구축하고, 국제 범죄조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등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수익'이라는 미끼에 현혹되지 않는 청년들의 현명한 판단이다. 정부와 사회는 청년들에게 안전한 해외 취업 정보를 제공하고, 해외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즉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욱 촘촘히 구축해야 할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울리는 비극의 경고음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