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10(금)
 
  • 1962년의 총성부터 2020년의 몽둥이까지, 끝나지 않은 영토 갈등

 

 

 

21세기 아시아의 힘의 균형을 좌우할 두 거인,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을 사이에 두고 수십 년째 이어온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1962년 발발했던 국경 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아물지 않았으며, 최근 몇 년간 발생한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은 양국 관계를 최악으로 치닫게 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며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듯한 움직임도 있으나, 국경 지대에 증강 배치된 수만 명의 병력과 끊임없이 확장되는 군사 인프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오늘일보 국제이슈 기획 네 번째 시리즈에서는 중-인 국경 분쟁의 역사적 뿌리부터 최근의 군사적 대치 상황, 그리고 이 갈등이 동북아를 넘어 국제 정세에 미치는 파장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제1부: 역사의 덧칠, 분쟁의 씨앗이 된 '선'

 

 

중국과 인도가 맞댄 국경은 약 3,488km에 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국이 공식적으로 합의한 국경선은 단 한 뼘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갈등은 영국 식민지 시절 그어진 두 개의 경계선, 즉 '존슨 라인(Johnson Line)'과 '맥마흔 라인(McMahon Line)'에서 비롯됐다.


서부 국경의 분쟁지인 아크사이친(Aksai Chin) 고원은 존슨 라인과 관련이 깊다. 1865년 영국 측량사 윌리엄 존슨이 제안한 이 경계선은 아크사이친을 당시 잠무-카슈미르 왕국의 영토로 포함시켰다. 인도는 이를 계승하여 아크사이친이 자국령 라다크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청나라 시대부터 실효적으로 지배해왔으며, 영국이 제안한 또 다른 경계선인 '매카트니-맥도널드 라인'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1950년대 인도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이곳에 신장과 티베트를 잇는 전략 도로(G219 국도)를 건설하며 실효 지배를 굳혔다.


동부 국경의 핵심 분쟁지는 인도가 실효 지배 중인 아루나찰프라데시(Arunachal Pradesh) 주다. 이곳의 경계는 1914년 영국, 티베트, 중국 대표가 모인 심라 회의에서 영국 측 대표였던 헨리 맥마흔이 제안한 '맥마흔 라인'을 따른다. 인도는 이 조약을 근거로 아루나찰프라데시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지만, 중국은 당시 티베트가 독립적인 외교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중앙 정부의 최종 승인이 없었다는 이유로 맥마흔 라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은 이 지역을 '짱난(藏南, 남티베트)'이라 부르며 약 9만㎢에 달하는 영토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불분명하고 상호 인정되지 않은 국경선은 1959년 티베트 봉기 이후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면서 악화된 양국 관계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1962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이 아크사이친과 동부 국경 전역에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며 **중-인 전쟁(Sino-Indian War)**이 발발했다. 한 달여간의 전쟁에서 인도는 참패했고, 중국은 아크사이친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했다. 이 전쟁은 인도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으로, 중국에게는 '인도의 팽창주의에 대한 응징'으로 기억되며 양국 국민의 가슴에 깊은 불신과 적대감을 남겼다.

 

 

 

제2부: 총성 없는 전쟁, 21세기 국경 대치의 새로운 양상

 

 

1962년 전쟁 이후에도 국경에서의 긴장은 계속됐다. 1967년 시킴 국경의 나투 라(Nathu La)와 초 라(Cho La)에서 포격전이 벌어졌고, 1975년에는 아루나찰프라데시 툴룽 라(Tulung La)에서 매복 공격으로 인도군 4명이 사망하는 등 유혈 사태가 이어졌다. 이후 양국은 국경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며 1993년 '실질통제선(Line of Actual Control, LAC) 평화 및 안정 유지 협정'을 체결하는 등 관계 개선에 나섰다. 이 협정은 국경 지역에서 총기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이후 발생하는 충돌이 주먹과 몽둥이, 돌 등이 동원되는 원시적인 '난투극'의 양상을 띠게 된 배경이 되었다.


평화 유지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들어 양국의 국력 신장과 함께 국경 지역에서의 군사 인프라 건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충돌은 더욱 잦고 격렬해졌다.

 

 

1) 2017년 도클람 대치 (Doklam Standoff)


2017년 6월, 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중국군이 인도-중국-부탄 3국의 국경이 만나는 도클람(중국명 둥랑, 洞朗) 고원에서 도로 건설을 시작하자, 부탄의 요청을 받은 인도군이 이를 저지하면서 73일간의 군사적 대치가 시작됐다. 도클람은 인도의 전략적 요충지인 '실리구리 회랑(Siliguri Corridor)'을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폭이 20km에 불과해 '닭의 목'으로 불리는 이 회랑은 인도 본토와 북동부 7개 주를 잇는 유일한 통로다. 중국이 도클람에 도로를 건설할 경우, 유사시 인도 북동부 지역이 본토와 단절될 수 있다는 안보적 위기감이 인도군의 개입을 불렀다. 양국은 수천 명의 병력을 동원해 일촉즉발의 상황을 이어가다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앞두고 양국 군 동시 철수에 합의하며 대치 상황을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2) 2020년 갈완 계곡 충돌 (Galwan Valley Clash)


2020년 6월 15일 밤, 서부 국경 라다크 지역의 갈완 계곡에서 양국 군 사이에 1975년 이후 45년 만에 사망자가 발생하는 최악의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인도 측이 실질통제선(LAC) 인근에 건설한 도로와 다리에 중국군이 이의를 제기하며 텐트를 설치하자, 이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됐다. 총기 대신 못이 박힌 몽둥이와 돌, 주먹이 오가는 난투극 끝에 인도군 20명이 사망하고 중국군에서도 최소 4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인도 전역에 거대한 반중(反中)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양국 관계는 1962년 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갈완 충돌 이후 양국은 국경 지대에 각각 5만에서 6만 명에 달하는 병력과 함께 탱크, 전투기, 미사일 등 중화기를 전진 배치하며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제3부: 히말라야의 군비 경쟁 - 도로, 공항, 그리고 병력

 

 

갈완 충돌 이후, 중국과 인도는 국경 지대의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으며 인프라 건설과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병력 배치를 넘어, 유사시 신속한 병력과 물자 수송, 그리고 장기적인 주둔을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인 군사력 강화 조치다.


중국: 중국은 '서부대개발' 전략의 일환으로 티베트 자치구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철도와 도로, 공항 등 군사적으로 전용 가능한 인프라를 수십 년간 꾸준히 건설해왔다. 특히 티베트의 중심도시 라싸와 국경 지역을 잇는 도로망과 칭짱철도는 대규모 병력과 보급품을 히말라야 고산지대로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대동맥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국경 인근에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하고 기존 공항 시설을 확장하며 공군력을 강화하는 한편, 국경 마을을 '샤오캉(小康)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요새화하여 민간인 거주와 군사적 전초기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인도: 과거 중국에 비해 국경 인프라 개발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집권 이후 국경도로기구(BRO)를 중심으로 도로, 교량, 터널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갈완 충돌 이후에는 라다크 지역과 아루나찰프라데시를 중심으로 모든 기상 조건에서 병력 이동이 가능한 도로망 확충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인도는 또한 프랑스제 라팔 전투기, 미국제 M777 초경량 곡사포와 아파치 공격헬기 등 최신 무기를 국경 지대에 집중 배치하며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의 1만 명에 더해 1만 명의 추가 병력을 중국과의 국경에 배치하기로 결정하는 등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군비 경쟁과 인프라 확충은 국경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안보 딜레마'를 심화시키고 있다. 한쪽의 방어적 조치가 다른 쪽에는 공격적 위협으로 인식되어 연쇄적인 군비 증강을 촉발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제4부: 지정학적 파장 - 미-중 대립의 또 다른 전선

 

 

중-인 국경 분쟁은 단순히 두 나라 간의 영토 문제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경쟁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갈완 충돌 이후 인도는 전통적인 '비동맹' 외교 노선에서 벗어나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급격히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하는 4개국 안보 협의체 **쿼드(Quad)**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인도는 쿼드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으로부터 군사 기술 이전과 정보 공유 등 실질적인 지원을 얻고 있다. 미국 역시 인도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할 핵심 파트너로 보고,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축으로 삼아 관계를 격상시키고 있다.


중국은 인도의 이러한 행보를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판 나토'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중국을 포위하려는 시도라며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 중국의 싱크탱크들은 인도의 외교 정책이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미국을 등에 업고 국경에서 더욱 대담하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중-인 국경 분쟁은 미-중 전략 경쟁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갈등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편, 중국은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등 인도의 주변국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며 인도를 압박하는 '진주 목걸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인도는 '동방 정책(Act East Policy)'을 통해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해군력을 증강하며 인도양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5부: 갈등과 협력 사이, 위태로운 미래

 

 

최근 중-인 관계는 극심한 갈등 속에서도 대화와 협력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고 있다. 2024년 10월, 양국은 국경 지역에서의 단계적 병력 철수와 순찰로의 전환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며, 2025년 8월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인도 방문을 계기로 2020년 이후 중단되었던 국경 무역과 직항 항공편 운항을 5년 만에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양국 모두 전면적인 군사 충돌이 가져올 파괴적인 결과를 원치 않으며, 세계 1, 2위의 인구 대국이자 거대한 경제 규모를 가진 양국 관계의 완전한 파탄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관리 노력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러한 해빙 무드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신뢰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인도는 국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양국 관계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중국은 국경 문제를 양자 관계의 일부로 국한하고 경제 등 다른 분야에서의 협력을 우선시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근본적인 시각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에 중-인 국경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한다. 양국 모두에게 국경 문제는 영토 주권을 넘어 국가적 자존심과 국내 정치적 지지 확보와 직결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면전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더라도, 국경에서의 군사적 대치와 우발적 충돌의 위험은 상존할 것으로 보인다. 국경 지대에 수만 명의 병력이 지근거리에서 대치하고 있는 현재 상황은 작은 오판이나 우발적 사건이 언제든 대규모 충돌로 비화될 수 있는 극도로 위험한 '살얼음판'과 같다.


히말라야의 눈 덮인 봉우리에 드리운 용과 호랑이의 그림자는 21세기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지정학적 리스크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양국의 지도자들이 갈등의 확산을 막고 평화적 해결을 위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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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그림자, 중국-인도 국경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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