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국'에서 '적'으로... 유로마이단, 크림 합병 거쳐 전면전으로 비화한 갈등의 역사... 신냉전 구도, 에너지-식량 위기 등 전 세계를 뒤흔든 전쟁
2022년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을 선언하며 시작된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느덧 3년 차(2025년 8월 기준)에 접어들었다. 당초 수일 내 수도 키이우(러시아명 키예프)가 함락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과 서방의 지원이 이어지면서, 전쟁은 동남부 전선을 중심으로 한 소모전 양상으로 굳어졌다. 지난 3년간 수십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이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전후 국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에너지·식량 위기, 신냉전 구도 고착화 등 전 지구적 파장을 낳고 있다. 오늘일보 국제이슈 기획 다섯 번째 시리즈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복잡한 역사적 배경부터 참혹한 전쟁의 경과, 그리고 국제 사회에 미친 영향과 향후 전망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제1부: 천 년의 애증, '키예프 루스'에서 갈라선 형제의 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 년 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두 나라의 뿌리는 9세기경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동슬라브 최초의 국가 **'키예프 루스(Kievan Rus')'**에 닿아있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한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키예프 루스가 멸망하면서 두 민족의 운명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러시아가 독자적인 제국으로 발전한 반면, 우크라이나 지역은 리투아니아, 폴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번갈아 받으며 고난의 역사를 겪었다. 특히 17세기 이후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면서 우크라이나의 언어와 문화는 '소(小)러시아'의 방언과 풍습으로 폄하되며 억압받았다.
소련 시절의 상처는 더욱 깊다. 1930년대 스탈린의 강제적인 농업 집단화 정책으로 인해 **'홀로도모르(Holodomor, 대기근)'**가 발생,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아사(餓死)하는 참극을 겪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를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닌, 민족 말살을 위한 '의도된 학살'로 기억하며 러시아에 대한 깊은 불신과 반감을 갖게 되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마침내 독립 국가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고, 자국의 '세력권(sphere of influence)' 안에 두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 거주하는 동부·남부 지역과 흑해 함대의 전략적 기지가 있는 크림반도는 갈등의 잠재적 뇌관으로 남았다.
제2부: 운명의 갈림길, 2014년 유로마이단과 크림반도 합병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는 친(親)러시아와 친(親)서방 노선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 분기점이 된 사건이 바로 2014년 유로마이단(Euromaidan) 혁명이다.
2013년 11월,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협력 협정 체결을 중단하고 러시아로부터 150억 달러의 차관을 받기로 결정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마이단 네잘레즈노스티)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해를 넘겨 이어졌고, 2014년 2월 경찰의 발포로 100여 명의 시위대가 사망하는 유혈사태로 번졌다. 결국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로 축출되었고, 의회는 그를 탄핵한 뒤 친서방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러시아는 이를 서방이 배후에서 조종한 '불법 쿠데타'로 규정하고 즉각 군사 행동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의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대를 투입했다. 소속을 알 수 없는 '녹색 군인들(little green men)'이 크림반도의 주요 시설을 장악한 가운데, 러시아의 비호 아래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러시아 귀속이 결정되었다. 2014년 3월 18일,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 지역에서도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러시아는 이들을 비밀리에 지원하며 내전을 부추겼고, 이후 8년간 이어진 돈바스 전쟁으로 1만 4천여 명이 사망했다. 2014년의 이 일련의 사태는 우크라이나 영토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였으며, 2022년 전면전의 서막이었다.
제3부: '특별군사작전', 21세기 유럽 최악의 전쟁 발발
8년간의 돈바스 내전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움직임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토의 동진(東進)을 자국의 안보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한 푸틴 대통령은 나토가 더 이상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법적 보장을 요구했으나, 미국과 서방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2022년 2월 24일 새벽,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와 '탈나치화'를 명분으로 전격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러시아군은 북쪽(벨라루스 경유), 동쪽(돈바스), 남쪽(크림반도) 세 방향에서 수도 키이우를 향해 진격했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친 우크라이나 군과 국민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고, 서방의 신속하고 대대적인 군사 지원이 더해지면서 러시아의 '단기 섬멸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키이우 함락에 실패한 러시아군은 4월 초 수도권에서 퇴각한 뒤, 전쟁 목표를 동부 돈바스 지역 전체와 남부 해안지대의 완전한 장악으로 수정했다. 이후 전쟁은 마리우폴, 세베로도네츠크, 리시찬스크 등 동남부 도시들을 중심으로 포격과 시가전이 반복되는 참혹한 소모전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마리우폴에서는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최후까지 항전하던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지며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기도 했다.
2022년 가을, 우크라이나군은 하르키우와 헤르손 지역에서 대규모 반격에 성공하며 점령지를 일부 탈환했으나, 2023년 이후 러시아군이 구축한 견고한 방어선에 막혀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현재 양측은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참호선을 사이에 두고 드론, 포격,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는 1차 세계대전식의 지리한 소모전을 이어가고 있다.
제4부: 전 지구를 덮친 전쟁의 그림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히 두 나라의 문제를 넘어 전 세계에 심각한 파급 효과를 낳았다.
1) 에너지·식량 위기
세계적인 에너지 수출국인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가 맞물리면서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특히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었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세계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흑해 봉쇄로 막히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폭등, 아프리카와 중동의 저개발 국가들을 중심으로 식량 위기가 심화되었다.
2) 신냉전 구도 고착화
이 전쟁을 계기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립 구도가 선명해졌다. 러시아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느낀 핀란드와 스웨덴은 오랜 군사적 중립 노선을 포기하고 나토에 가입하며 나토의 결속력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비난을 삼가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서방에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국제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유엔 등 기존의 국제기구의 무력함을 드러냈다.
3) 국제 질서의 재편
'주권 존중'과 '영토 보전'이라는 국제법의 대원칙이 강대국에 의해 무력으로 훼손되면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이 부활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대만 해협, 남중국해, 한반도 등 다른 분쟁 지역에도 잠재적인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과 함께, 북한의 도발 및 북-러 군사 협력 강화라는 안보적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제5부: 안갯속의 출구, 끝나지 않은 전쟁의 미래
전쟁 3년 차에 접어든 현재, 출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양측의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가까운 시일 내에 평화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크라이나: 1991년 국경선 기준으로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포함한 모든 점령지에서의 러시아군 완전 철수와 전쟁 범죄자 처벌, 그리고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를 일부라도 포기하는 것은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러시아: 점령지(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4개 주와 크림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 및 중립국화를 요구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에게 있어 전쟁의 패배는 곧 정치적 생명의 끝을 의미하기에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제시하지만, 어느 하나도 쉬운 길은 아니다.
장기 소모전 지속: 현재와 같은 교착 상태가 수년간 더 이어지는 시나리오. 양국의 인적, 물적 손실이 극대화되지만, 어느 한쪽도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하는 가장 비극적인 전망이다.
휴전을 통한 '동결 분쟁'화: 양측이 소모전에 지쳐 현재의 전선을 기준으로 휴전에 합의하는 시나리오. 이는 한반도와 같이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은 '얼어붙은 분쟁(Frozen Conflict)' 상태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며, 언제든 다시 충돌할 수 있는 불안정한 평화가 될 것이다.
내부 변수에 의한 급격한 종전: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급격한 정치적 변화(정권 붕괴, 쿠데타 등)가 발생하거나, 서방의 지원이 급격히 줄어드는 등의 변수로 인해 전쟁이 예상치 못하게 끝나는 시나리오.
결론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1세기 국제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도전이다. 이 전쟁의 종식은 단순히 포성과 총성이 멎는 것을 넘어, 파괴된 도시의 재건, 수많은 난민의 귀환, 그리고 무엇보다 깊게 파인 증오와 불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나긴 과정을 필요로 할 것이다. 힘의 논리가 아닌 대화와 외교, 그리고 국제법의 원칙이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이 동토의 비극을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