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자 성관계 거부, 이혼 유책 사유서 제외 법제화 추진
-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 원칙 확립... 가부장적 법 해석 폐기
프랑스 정치권이 수십 년간 관행처럼 이어져 온 ‘부부 사이의 성관계 의무’를 법전에서 완전히 삭제하기 위한 입법 절차에 착수했다. 배우자의 성관계 거부를 이혼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해 온 기존 판례를 부정하고, 혼인 관계 내에서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우선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하겠다는 취지다.
혼인 계약의 ‘침실 의무’ 규정 삭제
프랑스 하원 법사위원회는 최근 혼인 관계 내에서의 성관계 의무를 부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1804년 제정된 나폴레옹 법전 이래 프랑스 사법부는 민법 제212조(배우자는 서로 충실, 구조, 부양의 의무를 진다)를 근거로 성관계를 ‘부부간의 의무’로 해석해 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어떠한 혼인 계약도 배우자에게 성관계를 강제하거나 이를 의무화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하여 법적 논란의 여지를 차단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프랑스 법정에서 성관계 거부는 더 이상 이혼 소송의 유책 사유(Faute)로 인용될 수 없게 된다.
판례 뒤집는 입법... 2021년 ‘손해배상 판결’이 기폭제
이번 입법 움직임은 지난 2021년 프랑스 파기법원(최고법원)의 판결이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당시 법원은 수년간 성관계를 거부한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해 인권 단체의 거센 반발을 샀다.
현지 시민단체 ‘선택할 권리(Choisir la cause des femmes)’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판례는 여성의 신체를 남편의 부속물로 여기던 시대의 유물”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부부 사이에도 ‘동의’가 최우선임을 선언하는 것은 저널리즘과 인권의 진보”라고 평가했다.
양성평등과 ‘적극적 동의’ 원칙의 확산
프랑스 하원 의원들은 이번 개정안이 단순히 이혼 절차의 변화를 넘어, 형법상 강간죄 성립 요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배우자 사이라 할지라도 명확한 동의 없는 성관계는 범죄라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최근 성범죄 관련 법 체계를 ‘No means No(거절하면 범죄)’에서 ‘Yes means Yes(동의해야 합법)’ 체제로 전환하려는 논의를 병행하고 있다. 이번 민법 개정은 이러한 사법 기조 변화의 핵심적인 단계로 풀이된다.
[전문가 제언]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근대적 재정립”
장 뤽 마르탱 (소르본 대학 법학 교수) “이번 입법은 혼인을 ‘신체 점유권의 획득’으로 보던 전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 개별 주체 간의 평등한 결합으로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국가가 부부의 침실 내 권리 의무를 규정하던 시대는 끝났다. 다만, 혼인 관계의 실질적 유지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법원의 재량권과 충돌할 여지가 있어 세부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