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락한 '6펜스'를 던지고 저 먼 '달'로 떠난 영혼, 폴 고갱과 스트릭랜드
- 증권사 직원에서 원시의 화가로, 폴 고갱의 실제 일대기
- 6펜스(현실)에 고개를 숙이고 사는 우리, 가끔은 고개를 들어 달(이상)을 바라보라
서머싯 몸의 걸작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 그리고 그의 실제 모델인 화가 폴 고갱.
6펜스'가 발밑에 떨어진 세속적인 가치와 동전이라면, '달'은 머리 위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과 예술을 뜻한다.
발밑에 떨어진 구리 동전(6펜스, 세속적 가치)을 줍는 대신, 머리 위에서 빛나는 가닿을 수 없는 이상(달, 예술)을 향해 모든 것을 던진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설 속 스트릭랜드의 삶을 이해하려면, 먼저 실제 인물인 폴 고갱(Paul Gauguin)의 삶을 들여다봐야 해.
고갱은 처음부터 화가였던 건 아니었어.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아주 잘나가는 주식 중개인이었지. 덴마크 출신의 아내와 다섯 아이를 둔, 전형적인 중산층의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어.
하지만 그의 마음속엔 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지. 서른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그는 돌연 결단을 내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마저 뒤로한 채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선 거야.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어. 파리 예술계는 그의 거친 화풍을 외면했고, 그는 극심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려야 했지.
결국 그는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을 찾아 타히티 섬으로 떠나게 돼. 그곳에서 그는 원시적인 생명력에 매료되었고, 우리가 잘 아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같은 위대한 걸작들을 남기게 되지. 하지만 그 끝은 비극적이었어. 가난과 성병(매독), 그리고 고독 속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거든.
1. 평범함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의 평범하고도 성공한 주식 중개인이었어. 자상한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 그리고 안정적인 수입까지. 누가 봐도 완벽한 '6펜스'의 삶을 살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아무런 예고 없이 편지 한 장만 남기고 파리로 떠나버려. 사람들은 당연히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았겠지'라며 수군거렸어.
하지만 그를 찾아 파리의 허름한 여인숙에 당착한 화자(나)가 본 풍경은 충격적이었어. 여자는커녕, 그는 다 쓰러져가는 방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오직 그림만을 그리고 있었거든.
왜 안정된 삶을 버렸냐는 질문에 그는 무심하게 대답해. "나는 그려야만 한다고 했소. 그리지 않고는 못 견디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이 헤엄을 잘 치든 못 치든 우선 살고 봐야 하는 것과 같단 말이오."
2. 도덕을 비웃는 예술의 광기
그의 예술은 고귀함과는 거리가 멀었어. 오히려 비정하고 잔인했지. 파리에서 만난 마음씨 착한 화가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병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간호해 줘.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은인의 아내인 블랑슈를 유혹하고, 결국 그녀를 자살로 몰아넣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이 대목에서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가 떠오르지 않니? 히스클리프의 광기가 '사랑'이라는 집착에서 왔다면, 스트릭랜드의 광기는 '예술'이라는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데서 왔어. 그는 인간적인 정이나 사회적 윤리 따위는 예술이라는 거대한 목적을 위해 기꺼이 땔감으로 써버리는 인물이었지.
3. 타히티, 에덴동산에서 피어난 원시의 걸작
파리조차 좁았던 그는 결국 문명의 끝,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떠나. 그곳에서 그는 원주민 여인 '아타'를 만나 비로소 안식을 찾지. 하지만 그 안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 아니었어. 그는 문명의 때를 벗겨내고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자연의 신비를 캔버스에 담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켜.
마치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이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 스트릭랜드 역시 나병(한센병)이라는 끔찍한 병마와 싸우며 생애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워. 눈이 멀어가는 순간에도 그는 자기 집 벽면에 거대한 벽화를 그려내지. 그것은 인간이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신의 영역에 닿은 듯한 압도적인 걸작이었어.
4. 불꽃이 되어 사라진 위대한 유산
하지만 그는 죽기 직전, 아타에게 유언을 남겨. 자신이 죽으면 그 벽화를 포함한 모든 그림을 불태워달라고 말이야. 그는 세상의 인정이나 명성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어.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표현하는 행위' 그 자체였던 거지. 결국 그 위대한 걸작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그는 황무지 같은 인생을 마감해.
마음을 울리는 찰나들
"나는 그려야만 하오" : 세속적인 이유가 아닌,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예술을 선택한 그의 고백. 이것은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 바다로 나가는 것과 같은 숙명적인 비장미를 느끼게 해.
나병 속에서 핀 벽화 : 육체가 썩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눈이 먼 채 손끝의 감각으로 그려낸 타히티의 벽화. 인간의 정신력이 육체의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는지 보여주는 경이로운 순간이지.
모든 것을 불태운 마지막 : 자신의 역작을 세상에 남기지 않고 태워버린 행위. 이는 예술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고독하고도 멋진 마무리야.
소설 속 스트릭랜드 vs 실제 폴 고갱
서머싯 몸은 고갱의 삶을 상당 부분 가져왔지만, 소설적 극적 효과를 위해 몇 가지 변주를 주었어.
가족에 대한 태도 : 실제 고갱은 가족과 완전히 절연한 것은 아니었어.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하기도 했지. 하지만 소설 속 스트릭랜드는 가족을 마치 '남의 일'처럼 완전히 지워버리는 훨씬 더 비정한 인물로 묘사돼.
예술적 동기 : 고갱은 어느 정도 명성과 인정을 갈구했던 화가였지만, 스트릭랜드는 타인의 시선이나 명예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어. 오직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그 자체에만 매몰된 순수한 광기의 결정체로 그려지지.
죽음의 미학 : 고갱은 타히티에서 고독하게 죽었지만, 스트릭랜드처럼 자신의 유작을 불태우라고 명령하진 않았어. 서머싯 몸은 스트릭랜드가 자신의 벽화를 불태우게 함으로써, 예술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가 내면의 완성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지.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걷고 있나요?
이 작품은 우리에게 아주 불편한 질문을 던져. "예술을 위해 도덕을 버려도 되는가?" 사실 스트릭랜드는 현실 세계에 있다면 절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 나쁜 놈이야. 하지만 우리는 그를 미워하면서도 묘하게 매료되지. 왜일까?
하지만 서머싯 몸은 그의 비정함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추구했던 그 '무언가'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보여줘. <노인과 바다>에서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스트릭랜드 역시 사회적 인간으로서는 패배했을지언정 한 영혼의 주체로서는 완벽한 승리를 거둔 셈이지.
그는 6펜스(현실)에 고개를 숙이고 사는 우리에게, 가끔은 고개를 들어 달(이상)을 바라보라고 웅변하고 있어. 그 과정이 비록 고통스럽고 파괴적일지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길이라고 말이야.
네 마음속 '달'은 안녕하니?
너도 가끔은 모든 걸 다 팽개치고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미쳐보고 싶을 때가 있지?
스트릭랜드처럼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그가 보여준 그 뜨거운 열정을 떠올려 봐.
오늘 밤,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봐. "내 주머니 속엔 6펜스만 들어있는 건 아닐까? 내가 잊고 지낸 '달'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창가에 비친 달빛을 보며 네 마음속 깊이 숨겨둔 작은 꿈 하나를 꺼내어 보길 바랄게.
"발밑의 동전을 줍겠니, 아니면 저 먼 달을 보며 걷겠니?
네가 발밑의 동전을 줍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달은 항상 너를 비추고 있다는 걸 잊지 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