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7-15(수)
 
  • 불멸의 제국 로마, 그 흥망성쇠
  • 지성보다 이성, 감성보다 체계... 로마를 만든 근육은 '개방성'이었다
  • '로마인 이야기' 15권의 대장정, 거대한 서사가 남긴 질문: "리더는 무엇으로 사는가"
  • 시오노 나나미가 되살린 로마, '영웅의 시대'를 넘어 '시스템의 제국'을 읽다

 

로마시오노축.png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진부해 보이는 격언이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제국이 명멸해간 인류사에서 로마는 단순한 국가를 넘어 하나의 '현상'이었고, 서구 문명의 유전자를 결정지은 '설계도'였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는 자국 우선주의와 혐오의 정치를 목격하며, 우리는 다시금 로마를 떠올린다. 민족과 종교, 인종의 벽을 허물고 1,000년의 번영을 구가했던 그들의 '개방성'은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 『로마인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공존의 시스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30여 년 전 출간이 시작된 이래 여전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거대한 서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본다.

 

 

1. 저자의 생애와 집필 배경 : 15년의 고독한 추적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이 낳은 독보적인 역사 작가다.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가쿠슈인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매료되어 1963년 무작정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후 반세기 넘게 피렌체와 로마에 거주하며 철저한 이방인의 시각으로 서양사를 재해석해 왔다.

 

『로마인 이야기』는 그가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한 권씩, 총 15년에 걸쳐 완성한 필생의 역작이다. 당시 일본 사회는 버블 경제의 붕괴 이후 새로운 국가 모델을 갈구하고 있었고, 시오노는 그 해답을 로마의 리더십에서 찾고자 했다. 그는 정통 역사학자가 아니라는 비판 속에서도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한 상상력과 특유의 직관을 결합해,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 숨 쉬는 로마인'들을 복원해 냈다.

 

 

2. 전체 상세 줄거리: 7개의 언덕에서 천년 제국까지

 


이 방대한 서사는 로마의 건국 신화에서 시작하여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약 1,200년의 세월을 관통한다.

 

제1부 : 공화정의 서막과 시련 (1~3권) 

 

트로이의 후예 아이네아스로부터 이어진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로마를 세운 기원전 753년, 로마는 보잘것없는 도시에 불과했다. 초기 왕정을 거쳐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로마는 귀족과 평민의 갈등을 '법'이라는 시스템으로 승화시킨다. 이후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과 운명적인 '포에니 전쟁'을 벌인다. 한니발의 천재적인 전술에 멸망 직전까지 몰렸던 로마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등장과 '끈질긴 연대'를 통해 결국 지중해의 주인이 된다.


제2부 :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제국의 기틀 (4~6권) 

 

공화정 말기, 로마는 비대해진 영토를 관리하지 못해 혼란에 빠진다. 이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시오노가 가장 애정을 쏟은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루비콘강'을 건너며 낡은 공화정을 허물고 제정(帝政)의 기틀을 닦는다. 그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짧은 문장처럼 명쾌한 결단력으로 로마를 재설계한다. 카이사르 사후, 그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는 교묘한 정치력을 발휘해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 시대를 연다.

 

제3부 : 제국의 번영과 오현제 시대 (7~10권) 

 

아우구스투스 이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등 초기 황제들은 카이사르가 설계한 시스템을 공고히 한다. 네로의 치세 등 굴곡이 있었으나, 하드리아누스와 트라야누스로 대표되는 '오현제(五賢帝) 시대'에 이르러 로마는 최대 판도를 형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도로나 수도교 같은 인프라가 속주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가고, 로마 시민권은 피부색과 출신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자들에게 부여되었다.

 

제4부 : 쇠락과 종말 (11~15권) 

 

영원할 것 같던 제국에도 그림자가 드리운다. 게르만족의 침입과 전염병, 그리고 경제적 불황이 겹치며 로마는 활력을 잃는다. 기독교의 공인과 국교화는 로마적 가치관(다신교적 관용)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콘스탄티누스가 수도를 옮기고 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끝에, 476년 서로마 제국은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공식적으로 역사 속에서 퇴장한다.



3. 서사 구조와 주요 사건 분석 : 시스템이 만든 기적

 

 

이 작품의 핵심은 로마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거대 제국을 유지했는가에 대한 '분석적 서사'에 있다. 저자는 로마의 승리 요인을 다음과 같은 주요 사건들을 통해 조명한다.

 

첫째, '성벽의 확장'이다. 

다른 고대 국가들이 정복한 민족을 노예로 삼거나 몰살한 것과 달리, 로마는 패자를 자신들의 시스템 안으로 흡수했다. 사비니 여인 유괴 사건 직후 사비니인들과 연합한 사례는 로마적 '동화 정책'의 원형을 보여준다.

 

둘째, '법과 인프라의 구축'이다. 

저자는 12표법의 제정과 로마 가도의 건설을 단순한 토목 공사가 아닌 '사회 통합의 하드웨어'로 규정한다. 물자뿐만 아니라 정보와 사람이 흐르는 길은 제국의 혈관이 되었다.

 

셋째,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전환'이다. 

시오노는 이를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닌, 비대해진 조직을 관리하기 위한 필연적인 '효율적 경영 체제'로의 전환으로 해석한다. 카이사르가 원로원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속주민의 권익을 보호하려 했던 행보가 그 정점이다.



4. 주요 인물 성격 및 상징성 분석

 

 

율리우스 카이사르

'만능의 천재'이자 '관용의 화신' 저자가 묘사하는 카이사르는 로마인의 이상향이다. 그는 지성, 문장력, 군사적 재능, 정치적 통찰을 모두 겸비했다. 특히 그의 '클레멘티아(관용)'는 적까지 아군으로 포용하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였다. 시오노는 그를 "모든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대로 보는 인간들 사이에서,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 직시한 인물"로 평가한다.

 

한니발 바르카

'고독한 천재'와 로마의 스승 로마를 가장 두려움에 떨게 했던 적장 한니발은 아이러니하게도 로마를 가장 성장시킨 인물이다. 칸나에 전투에서의 대패는 로마인들에게 조직적 저항과 인내를 가르쳤다. 그는 개인의 천재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로마라는 '시스템의 힘'을 이길 수 없음을 증명하는 역설적 상징이다.

 

아우구스투스 :
'인내하는 설계자' 카이사르가 파괴와 창조의 천재였다면, 아우구스투스는 그 창조물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의 천재였다. 저자는 그를 화려하진 않지만 철저히 실용적이고 인내심 깊은 경영자로 묘사하며, 진정한 통치자가 갖춰야 할 '지속 가능성'의 덕목을 투영한다.

 

 

5. 핵심 장면과 명대사 : 철학적 논쟁의 대목

 

 

장면 : 루비콘강 앞에서 (기원전 49년) 카이사르는 군대를 해산하고 홀로 로마로 돌아오라는 원로원의 명령을 거부한다. 강가에서 그는 잠시 망설이다 외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iacta est)." 이 장면은 단순한 반란의 시작이 아니다. 저자는 이를 '법의 자구(字句)'와 '제국의 실익' 사이에서 결단을 내린 정치적 결단으로 묘사한다. 낡은 형식을 지키느냐, 실질적인 변화를 선택하느냐는 오늘날의 리더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철학적 질문이다.

 

명대사 :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현실만을 본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론적 핵심이다. 시오노는 로마인들이 종교적 광신이나 이념적 편향에 빠지지 않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이성'을 가졌기에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6. 인문학적 주제와 핵심 메시지 : '개방성'과 '책임'

 


『로마인 이야기』가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개방을 통한 공존'이다. 저자는 로마인이 그리스인보다 지성이 떨어지고, 카르타고인보다 경제력이 약하며, 게르만족보다 체력이 열등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승리한 이유는 "타인의 장점을 수용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대의 '다문화주의'와 '융합'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형인 로마 귀족들의 솔선수범과 세금 납부 정신은, 리더의 권위가 특권이 아닌 책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결국 제국은 시스템이 살아있을 때 번영했고, 시스템이 소수 기득권의 도구로 전락했을 때 몰락했다.

 

 

7. 창작 비화와 에피소드 : 문학적 논란과 열광 사이

 


시오노 나나미는 이 시리즈를 쓰는 15년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매일 일정량의 원고를 써 내려갔다. "내 아들은 15명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각 권에 대한 애정이 깊다.

 

흥미로운 점은 학계의 반응이다. 정통 역사학자들은 그가 카이사르를 지나치게 영웅시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화정을 비판적으로 본다며 '역사 왜곡'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자들은 열광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기업인들 사이에서 '경영 지침서'로 통하며 로마 붐을 일으켰다. 역사적 팩트 위에 문학적 숨결을 불어넣은 그의 필력은 딱딱한 사료를 한 편의 대하드라마로 탈바꿈시켰다.

 

 

8. 현대적 시사점과 질문 : 우리 안의 로마는 안녕한가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장벽'의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 간의 무역 장벽, 계층 간의 심리적 장벽, 그리고 혐오라는 이름의 사회적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집단(In-group)을 보호하고 타자(Out-group)를 배척하려 한다. 하지만 로마는 이 본능을 이겨내고 '로마 시민'이라는 더 큰 범주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시스템은 서로 다른 가치를 포용할 수 있는가?", "우리 시대의 리더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도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가 15권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며 전하고자 한 것은 제국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그것은 '지성'과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 모여 만든 '합리적 공동체'에 대한 희망이다. 로마의 가도는 무너졌지만, 그들이 남긴 공존의 지혜는 여전히 우리 발밑에 흐르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운율은 닮아 있다고 했다. 『로마인 이야기』의 책장을 덮으며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2,000년 전의 화석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설계도일지도 모른다.

 

 

 

 

태그

BEST 뉴스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도 않았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