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소무역’상으로 환골탈태한 보따리상



▲ 평택항


마약, 짝퉁 밀반입의 대명사에서…

체계적인 조직 이룬 對 중국 수출 소무역상으로



“돈 많은 중국인은 귀찮아서 안하고, 돈이 없는 중국인은 돈이 없어서 못하는 틈새 시장을 찾아라!”



최근 북방항로를 이용하는 속초항 보따리상들이 운임비 인하를 요구하며 승선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해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3일부터 북방항로 교역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로 그동안 선사와 상인측은 수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당사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정부 또한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따리상은 한․중 교역의 일원으로 무시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이다. 이렇듯 사각지대에 놓인 보따리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에 그동안 종종 뉴스에서만 볼 수 있었던 보따리상의 속사정을 들여다보았다.

보따리상은 1992년 한․중 양국의 항로가 개방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상인들은 여객선을 통해 중국 농산물을 우리나라로 가져와 판매하면서 수익을 얻었다. 당시 물건을 손에 들 수 있을 만큼만 가져와서 판다고 해서 보따리상으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보따리 장사의 수입이 꽤 짭짤하다는 입소문이 타면서, 지난 IMF때에는 실업자들이 몰려 들었다. 당시 정부에서도 대규모의 실직자를 구제하기 위해 보따리상에 대한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했었다. 때문에 인천, 평택, 속초, 군산 등 전국의 개항장에서는 흔히 보따리를 짊어지고 줄을 선 상인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주로 고추, 참깨, 잣, 참기름 등 값싼 중국산 농산물과 한약재를 우리나라에 들여와 몇 배의 이윤을 남기고 팔았다.

이렇게 잘나가던 보따리상들은 지난 1999년 국내농산물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세금 없이 휴대 반입할 수 있던 농산물이 100kg에서 80kg 이내로 제한되면서 이후 지난 2000년부터는 두 달에 10kg씩 면세 허용량이 줄어들었고, 현재는 50kg 반으로 대폭 낮춰졌다. 이에 상인들은 규제를 완화시켜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한번 바뀐 규제는 요지부동이다.

이 여파로 보따리상은 좀처럼 살아남기 힘든 여건 형성돼 지난 2003년부터는 상인의 수가 1천5백 명으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틈을 타 중국인 보따리상들이 등장하게 됐다. 이러한 가운데 보따리상들은 아직 활동을 하고 있다. 환골탈태를 하면서 말이다.



보따리 속에 감춘 범죄


보따리상은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6일에는 인천본부세관이 명품시계를 밀수한 혐의로 보따리상 노모(4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노씨는 11월 20일 중국 스다오발 국제여객선을 타고 인천항에 도착한 뒤 시가 3천만 원 상당의 여성용 롤렉스 시계를 랩으로 싸 속옷 안에 숨겨 반입한 혐의다.

보따리상들의 밀수품거래는 점점 그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해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2007년 상반기 최고 인기 밀수 품목은 보석류, 의류 및 직물, 식료품이다. 밀수대상국은 당연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다. 그다음은 미국, 일본 홍콩 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밀수기법은 매우 다양하다. 몇 가지만 설명하자면, 첫째로 ‘환적화물로 위장’하는 수법이다. 환적화물은 국내를 단순히 경유하여 제 3국으로 반출되는 화물을 말한다. 환적화물은 수입통관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검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 수법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하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행해진다. 두 번째로 ‘공간 채우기’이다. 이는 가구나, 관 큰 가방 등을 이용해 정상화물과 밀수품의 소포장을 같은 모양으로 포장해 속을 채우는 것이다. 이를 적발하려면 모든 화물 내부를 검사해야하기 때문에 쉽게 검거되지 않는 헛점을 노린 것. 이밖에도 컨테이너 박스 바깥쪽과 안쪽의 물품을 다르게 하는 ‘커텐치기’ 등 그 수법이 날로 지능화되고 있다.

검거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정말 요지경 세상이다. 최근에는 대만 국적의 여성 보따리상 2명은 총 2.7kg에 달하는 벽돌 형 금괴를 12개를 반씩 나눠 생리대에 숨겨 들여오다 현장에서 검거됐다. 밀수품을 숨기기 위해 신체의 은밀한 부분을 활용하는 방법은 꽤 고전적인 수법에 속하지만 생리대까지 사용된 것을 보면 날로 방법이 교묘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에는 즉석밥 제품에 마약류인 메스암페타민 2240g이 적발돼 화제가 됐었다.

최근 밀수는 개인에서 기업화로 그 규모가 수십억 원대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여러 명의 상인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 조직화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밀수 보따리상이 들여오는 물품은 국민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보따리상과 관련된 마약, 짝퉁반입 지적재산권 침해 등의 사건이 잊을만하면 발생하고 있어 경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보따리상들의 입장 또한 절박하다. 대부분이 50대 후분이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한 소무역 커뮤니티의 운영자는 “처음 시작하는 보따리상이라면 누구나 그런 것(짝퉁)에 유혹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계속 할 사람은 통관과 세관에 대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손을 놓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범성이 있는 일부의 밀수 보따리상에 집중관리 필요성도 인정되지만 현실적으로 제도화 되지 않는 보따리 무역 실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또한 항간에서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관세장벽이 없어져 자연히 보따리상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본보따리상들이 일본제품 수입자유화이후 자취를 감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대에 맞춰 보따리상들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편리한 ‘인간택배’로 변신


소규모의 보따리 물품만으로는 수익이 어려워지자 상인들은 택배를 자처했다. 중국으로 갈 때는 가전제품이나 기업부자재를 가져가고, 한국으로 돌아 올 때는 생산품 샘플이나 농산물을 가져오는 것. 쉽게 말해 보따리상이 중국에 진출한 기업과 국내본사를 이어주는 ‘인간택배’로 변신한 것이다. 다만 오토바이 대신에 여객선을 이용한다는 것이 차이점일 뿐.

이러한 인간택배형 보따리상을 ‘따이공’(물건을 배달해주는 사람을 지칭)이라고 지칭한다.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따이공’이란 단어를 검색해보니 한 업체에서 따이공을 구하는 채용공고를 볼 수 있었다. 업체에서 제시한 채용조건 중 특이한 점이 있었다. ‘생계 차원에서 지원하는 자는 하지 말라’는 것. 그 내용에는 용돈벌이 정도만 될 뿐이니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중국 무역에 뛰어들고 싶거나, 언어, 문화를 배우고 싶은 사람만 지원하라고 나와 있었다.

이러한 인간택배는 기업들의 선호를 받고 있다. 소요기간이 오래 걸리고 요금도 비싼 화물에 비해, 적게는 15시간에서 최대 25시간이면 정확하게 물건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물건 분실이나 파손의 위험부담도 적기 때문이다.
 


“돈 많은 중국인은 귀찮아서 안하고,
돈이 없는 중국인은 돈이 없어서 못하는 틈새 시장을 찾아라!”




물류 장소이동만으로는 한계


보따리상의 변신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전의 보따리 개인상에서 근래에는 중소 기업화된 소무역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을 ‘소무역상인’이라 부른다. 지난날 농산품만을 취급하던 보따리상들은 공산품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보따리상들의 주 활동무대인 이우시장의 소상품으로부터 신발류, 의류, 경공업제품 등 전문화된 아이템으로 다양하게 다룬다.

최근에는 소무역에 대한 카페나, 블로그, 커뮤니티 동호회 등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상인들은 이전의 시세차이가 많이 나는 물품을 들여와 수익을 내던 때와는 달리 사전 충분한 시장조사와 빈틈없는 자기개발로 소무역상으로서 발전을 꾀하고 있다.

‘한중일소무역창업센터’ 운영자에 따르면 더 이상 국내유통망이나 중국내 유통망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물류의 장소이동만으로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안정된 소득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소무역상들은 중국에서 돈 많은 사람은 귀찮아서 안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 못하는 틈새 아이템을 찾아서, 중국현지에서 하는 사업을 찾아야 한다. 그는 10년 전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했지만, 현재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인건비 상승, 외국기업 지원책도 없어져 더 이상 제조업 시장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즉 보따리상은 큰 사업으로 발전하기 위한 반드시 겪어야 하는 준비단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속적 관심 필요





보따리상들은 세관통과에 따른 과다통제, 중국 현지 편의시설 부족과 불친절, 법률상식 인지 부족 등이 교역을 힘들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 꼽는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한 보따리상이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상인들은 정부에 치안유지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보따리상들은 어려움이 많다.

보따리상뿐만이 아니라 항공료 인하로 인한 경쟁에 한중 카페리도 곤혹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인천에서 중국 국제여객선 승객수가 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들어선 것. 지난 1월 24일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인천 중국의 10개 항로(다롄, 단둥, 옌타이, 칭다오, 톈진 등) 카페리 승객은 76만 6천명으로 2006년보다 13%감소했다. 그동안 한중 카페리 항로들이 외환위기 당시 2~3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성장세를 보여 왔던 것에 비하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감소의 원인은 지난해부터 한중항공노선이 본격적인 운임인하 경쟁과 카페리의 VIP인 보따리상들의 퇴장 때문으로 분석되어진다.

한편, 그동안 배는 보따리상의 최고 이동수단이었다. 비행기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며, 일주일에 6번을 출항하는 보따리상들에게 숙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인천에서 웨이하이 항공운임비가 최저 23만 원선으로 인하했다. 하지만 카페리의 운임비는 22원대로 일부는 비용이 오른 곳도 있어서 카페리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 앞서 속초항의 경우처럼, 선사측은 가격경쟁으로 곤란을 겪고 있고, 보따리상은 생존권이라는 카드로 대치중이다. 이 문제는 쉽게 해결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보따리상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없고 규제만 강화되고 있는 실태여서, 정부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글. 정아람 기자 araming@chinab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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