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저항이 곤란한 정도'를 요구했던 강제추행죄의 판단 기준을 완화하면서 처벌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저항하기 곤란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제추행죄가 성립된다고 보았으나, 이번 판결은 그것보다 낮은 정도의 폭행·협박을 사용한 경우에도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에서 추행의 수단이 되는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할 정도일 것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를 폐기한다"며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해 상대방을 추행한 경우에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강제추행죄는 1983년부터 '폭행 또는 협박'이 성립 요건이었으나 '상대방에게 저항하는 것이 곤란한 정도'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고 '정조에 관한 죄'로 분류하던 옛 관념의 잔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 형법에서 폭행·협박죄가 인정되는 수준의 행위만 있다면 강제추행죄에서도 폭행 또는 협박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게 맞는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강제추행죄의 처벌 기준이 완화되면서 과도하게 처벌받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와 법 문언에 맞는 기준 재정비의 의미라 부당한 처벌 범위 확대로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 엇갈렸다.
법조계에서는 이날 대법원판결을 시작으로 강간 등 성폭행 범죄에서도 요구되는 폭행·협박의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