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덴마크 영토 갈등 가열… 29년 연속 빙하 소실 속 지정학적 격변
덴마크령 그린란드가 자원 패권과 지정학적 야욕이 충돌하는 국제 사회의 최전선으로 부상했다. 2026년 1월 현재, 미 행정부의 그린란드 점유 의사 표명과 이에 따른 덴마크·유럽연합(EU)의 반발은 단순한 영토 논쟁을 넘어 희토류 공급망과 북극 안보를 둘러싼 ‘21세기판 신냉전’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1. 그린란드가 덴마크 영토로 편입된 역사적 과정(바이킹의 정착에서 덴마크 주권 확립까지)
그린란드가 덴마크의 영토가 된 과정은 중세 북유럽 왕실의 연합과 근대 전쟁의 결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 바이킹의 발견과 노르웨이 복속 : 986년 아이슬란드 출신 노르웨이인 **에리크 라우디(Erik the Red)**가 그린란드에 정착하며 유럽인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1261년 그린란드는 노르웨이 왕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령으로 편입되었다.
2)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 : 1380년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하나의 왕실 아래 결합(칼마르 연합 등)하면서 그린란드는 자연스럽게 연합왕국의 통치를 받게 됐다. 1721년에는 덴마크-노르웨이의 선교사 **한스 에게(Hans Egede)**가 현재의 수도 누크(Nuuk) 인근에 정착지를 건설하며 근대적 식민 지배의 기틀을 마련했다.
3) 결정적 분기점, 1814년 킬 조약(Treaty of Kiel) :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 편에 섰던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이 패배하며 왕국이 해체됐다. 당시 조약에 따라 노르웨이는 스웨덴으로 넘겨졌으나,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등 노르웨이의 옛 속령들은 덴마크의 소유로 남는다는 조항이 명시됐다. 이 한 줄의 문구가 오늘날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결정지은 법적 토대가 됐다.
20세기 초, 덴마크의 주권에 대한 도전과 이를 확정 짓는 국제법적 절차가 이어졌다.
- 동그린란드 분쟁 : 1931년 노르웨이는 동부 그린란드 일부 지역이 ‘주인 없는 땅(무주지)’이라고 주장하며 점령을 선포했다.
- 국제사법재판소(PCIJ) 판결 : 1933년 상설국제법원은 "덴마크가 그린란드 전역에 대해 오랜 기간 주권을 행사해 왔다"며 덴마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판결로 그린란드 전역에 대한 덴마크의 주권은 국제법적으로 공인되었다.
5) 현대적 지위 변화 : 1953년 덴마크 헌법 개정으로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덴마크의 정식 주로 승격되었으며, 1979년 **자치령(Home Rule)**을 거쳐 2009년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권한을 행사하는 **광범위한 자치권(Self-Rule)**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그린란드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미국의 전략적 필요성에서 시작됐다. 미 행정부는 북극권의 군사적 가치와 중국의 북극 진출 저지를 명분으로 그린란드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그린란드 북단에 피투피크(Pituffik, 구 툴레) 우주기지를 운영 중이며, 이를 나토(NATO) 차원의 미사일 방어 체계 및 '골든 돔' 구상의 핵심 축으로 활용하려 한다.
2026년 1월 초, 미국이 그린란드 할양을 압박하며 EU 제품에 대한 25% 보복 관세를 언급하자, 덴마크와 그린란드 자치정부는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라며 즉각 반발했다.
3. 진행 상황 : ‘하얀 금’ 희토류와 녹아내리는 빙하의 역설
현재 그린란드는 경제적 자립을 꿈꾸는 자치정부와 이를 선점하려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린란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개발 희토류 매장지로 평가받는다. 특히 크바네필드(Kvanefjeld) 광산 등은 전기차, 미사일 유도 시스템 등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을 보유하고 있어 중국의 자원 독점 체제를 깨뜨릴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원 개발의 길을 연 것은 기후 위기다. 2025년 기준 그린란드 빙상은 29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5년 여름 한때 빙상 면적의 **81.2%**에서 해빙 현상이 관측되는 등 관측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이로 인해 과거 얼음 아래 묻혀 있던 광물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
사안을 바라보는 양측의 입장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5. 전망: 독립 투표와 국제 분쟁의 장기화
그린란드는 2008년 국민투표를 통해 국방·외교를 제외한 광범위한 자치권을 확보한 상태다.
그린란드 자립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연간 약 **43억 덴마크 크로네(한화 약 9,700억 원)**에 달하는 덴마크의 보조금이다. 자치정부는 희토류 개발 수익을 통해 이 재정 의존도를 낮추고 완전한 독립을 달성하려 하나, 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내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나토는 최근 '북극 파수꾼(Arctic Sentry)' 임무를 제안하며 군사적 긴장 완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자원 채굴권을 둘러싼 미·중·유럽의 갈등은 2026년 내내 지속될 전망이다.
35년 경력 어민 큐빅 이누크(Qivioq Inuk, 58세)은 "30년 전만 해도 이맘때면 바다가 단단히 얼어 개썰매를 타고 얼음낚시를 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는다. 전통적인 사냥 방식은 완전히 무너졌다. 외지인들은 빙하가 녹아 광산이 열린다고 좋아하지만, 우리에게 얼음은 곧 길이고 삶이었다. 얼음이 사라진 바다에는 예전에 보지 못한 어종들이 들어오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 이누이트의 미래를 보장해줄지는 의문이다."라 말했다.
관광 가이드 아네 마센(Ane Madsen, 34세)은 "수도 누크(Nuuk)와 일룰리사트(Ilulissat)에는 매일 전 세계에서 온 투자자들과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작년 한 해 동안 가이드 예약 건수가 전년 대비 45% 증가했다. 크루즈선이 들어올 때마다 현지 물가는 치솟고, 젊은이들은 더 이상 어업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돈은 돌고 있지만, 이 돈이 그린란드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공항과 호텔을 짓는 외국 자본을 위한 것인지 혼란스럽다."고 밝혔다.
이와같이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복합적이다. 자치정부가 추진하는 희토류 광산 개발이 '경제적 자립'을 통한 완전한 독립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환경 파괴 및 외부 자본(미국·중국 등)에 의한 '신식민지화'에 대한 공포가 공존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자는 "그린란드의 역사는 북유럽 제국들의 팽창과 후퇴를 그대로 보여준다"며 "1814년의 조약이 20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덴마크, 그리고 독립을 원하는 그린란드 사이의 복잡한 3각 함수를 만들어낸 근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법 전문가는 "그린란드는 2009년 발효된 자치법에 따라 자결권을 가진다"며 "덴마크의 동의 없이 미국이 영토를 획득하는 것은 현대 국제법 체계에서 불가능에 가깝지만, 경제적 예속을 통한 실질적 통제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