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경찰청 소속 장 경감, 범행 사흘 뒤 거주지서 리얼돌·휴대전화 소각
- 법조계 “가족 보호라는 인간 본성” vs “실체적 진실 규명 방해” 팽팽
지난 5월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의 피의자 장윤기(23) 부친이 사건 직후 아들의 범행 관련 핵심 증거를 조직적으로 인멸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나 현직 경찰 간부인 부친은 혈연관계를 이유로 처벌을 면했다. 범죄 실체 규명을 가로막은 행위조차 가족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는 형법상 '친족 특례' 조항을 두고 폐지론과 유지론이 격하게 충돌하고 있다.
사건 발생 사흘 뒤, 참혹했던 증거 인멸의 현장
3일 광주지방검찰청과 지역 법조계 등에 따르면, 피의자 장윤기의 아버지인 광주경찰청 소속 장모 경감은 살인 사건 발생 사흘 뒤인 지난 5월 8일 광주 서구에 위치한 장 씨의 거주지를 찾아 내부 물건을 대량으로 폐기했다.
장 경감은 사건의 중대성을 인지하고도 경찰 통제선이 쳐지기 전 아들의 원룸에 진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익명을 요구한 인근 주민 A씨는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장 씨의 아버지가 커다란 쓰레기봉투 여러 개를 바쁘게 옮기는 것을 봤다"며 "당시에는 단순한 이삿짐 정리인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
특히 검찰 수사 결과, 폐기된 물품 중에는 가슴과 목 부위가 집중적으로 훼손된 성인용품 '리얼돌'이 포함되어 있었다. 장 경감은 이를 직접 해체해 버렸으며, 아들이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사용했던 구형 일반 휴대전화 여러 대 역시 불태워 소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를 명백한 '주요 증거물 인멸 행위'로 판단했다.
경찰 간부의 증거 인멸, 면죄부 준 형법 제155조
수사기관을 기만하는 중대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장 경감을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하지 않았다. 근거는 형법 제155조 4항에 명시된 '친족 간의 특례' 조항이다. 해당 법안은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증거인멸 등의 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본인의 범죄를 숨기려는 것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보아 처벌하지 않는 것처럼, 가족을 보호하려는 행위 역시 기대가능성이 낮다는 이른바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 이론에 기초한 법리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의자의 방어권을 두텁게 보장하는 사법 체계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 경감이 수사 절차와 증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직 '경찰 간부'였다는 점에서 대중의 공분은 커지고 있다.
"가족 윤리 보호" vs "사법 정의 훼손" … 정치권으로 번진 논쟁
논란이 확산하자 정치권도 즉각 반응했다. 정성호 장관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실체적 진실 규명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친족 특례 조항은 이제 시대적 변화에 맞춰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논의의 불씨를 당겼다.
양측의 입장은 팽팽하다.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한 임원은 "현대 사회에서 범죄 수법이 고도화되고 흉악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증거 훼손을 묵인하는 것은 국가 형벌권의 정당한 행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며 폐지를 주장했다.
반면, 가족 간의 윤리를 법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부모가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지상정"이라며, "이 특례를 폐지할 경우 무수한 가족을 범죄자로 만들고 가정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이모 박사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가족 중심의 농경사회 가치관이 반영된 조항입니다. 현재 독일, 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들도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으나, 영미법계에서는 사법 방해 행위를 엄격히 처벌합니다. 전면 폐지보다는 이번 장 경감 사례처럼 '직무상 의무가 있는 공무원'이거나 '살인 등 특정 강력범죄'에 한해 예외를 두는 제한적 개정안을 대안으로 고려해 볼 시점입니다."라고 밝혔다.
■ 형법 제155조(증거인멸 등과 친족간의 특례) ①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④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전 3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