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니하오”차이나타운

중국이 고스란히 옮겨진 인천의 작은 마을

100년이 훌쩍 넘은 역사와 중국인들의 자존심으로 지켜진 곳




지하철 1호선 인천역. 낡은 역사를 빠져나오면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분명 우리나라이긴 한데, 온통 황금과 붉은색으로 치장한 거리의 풍경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이곳이 바로 100여 년 전 중국인들이 건너와 형성된 국내 유일한 ‘차이나타운’이다.

▲ 패루는 중국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활을 하는 건축물로 차이나타운이 있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지 패루가 있다. 인천의 패루는 산동성 웨이하이시가 기증한 것으로 중국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다른 나라에 기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마을 입구를 알리는 패루는 순간이동의 통로. 한걸음을 떼자 중국으로 건너왔다. 거리는 이른 오전 매서운 날씨 탓인지 적막했다.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호박같이 둥근 연등만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반겨주었다. 차이나타운 집집마다에는 새해를 맞아 '年年有鱼'와 '福' 등이 쓰인 춘련(빨간 종이에 대구(對句)를 적은 것)이 대문이나 기둥에 붙어있어 이곳이 차이나타운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벌써 세 번째 차이나타운을 찾은 것이지만, 올 때마다 거리의 빨간 물결은 시선을 놓지 못하게 되고, 한편으로 낡고 조그마한 마을이 모습은 고향집에 온 것 마냥 정겹다.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 제물포 개항이후 청나라 영사관이 들어오면서 형성됐다고 한다.오랜 세월 타지에서 서러움을 이겨낸 화교들이 자존심만은 지켜 살아왔기 때문인지 이곳 길가에 이층 베란다 하나까지도 짙은 중국풍을 자랑하고 있다.

▲ ▲ 세월의 풍파 겪은 낡은 중국식 건물에는 아직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다.

차이나타운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골목이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어 자칫하면 같은자리만 맴돌게 된다. 결국은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게 돼 별무리는 없다. 시간이 많다면, 발길가는대로 걸어서 미로처럼 왔다 갔다 쭉 둘러보는 것도 재밌다.




패루를 지나 이어진 언던 양길에는 중국 상점들이 즐비하다. 어디선가 중국노래가 흘러나오고 가게들마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기념품들이 가득하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환영받지 못하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중국산 기념품이 값지고 뜻 깊다.

기념품이란, 사고 나면 곧 후회되는 것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여행지에서 빼 먹으면 무언가 아쉬운 것이 또 기념품이다. 필자 또한 ‘이번에는 절대 사지 말아야지’ 다짐했건만 돌아오는 길에 예전의 그 가게에 들려 다기세트를 사버렸다.

거리의 상점들은 중저가부터 고가의 상품까지 주로 다기, 비단신, 장신구, 간식거리, 중국풍의 소품 등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모두 화교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매우 친절히 대해준다. 간단한 중국어로 인사라도 하면 즐겁게 맞이해준다.

차이나타운의 상점에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된 이유는 대학시절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들린 한 가게 때문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다른 상점들과 달리 호젓한 분위기의 가게에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중국인 3세 남종업원이 있었다. 그는 조잘대는 우리들에게 여러 종류의 차를 손수 시음시켜주고 차에 대해, 화교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줬다. 우리 일행은 최소 3잔 이상의 차를 얻어 마시고는 겨우 2천 원짜리 계화꽃잎차를 사왔던 기억이다. 지금도 여전히 가게는 남아있지만, 그때 종업원 대신 동그란 안경을 쓴 중년의 주인아저씨가 손님을 맞고 있다.

 

자장면 거리 “우리가 원조”

▲ ★자장면의 유래-1884년 화교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음식점들이 생겨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싼 가격과 맛에 감탄했고 곧 인기를 끌게 됐다.초기 자장면은 ‘챠오장멘’이라 불렸다. 당시 중국산 된장인 춘장을 볶아 국수에 얹은 것을 말하는데 화교들은 야채와 고기를 넣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자장면을 개발했다.이후 춘장에 캐러멜을 섞어 만들어 고소하면서도 달큰한 자장면이 탄생하게 됐다. 60년대까지도 우리나라에선 고급음식이었으나 지금은 서민들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 됐다.






중국에 온 것을 만끽하며 걷고 있는데, 점심때가 되자 거리에는 춘장을 볶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차이나타운의 명물은 역시 자장면! 매년 10월 정도가 되면 중국문화 축제가 열리는데 그때 자장면을 먹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각 음식점마다 100미터 이상 길게 줄을 선다. 자장면 거리의 음식점들은 모두 역사가 70년은 기본인 곳들로 서로가 원조임을 알리는 간판을 내걸고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 (구)공화춘, 왼쪽 옛 공화춘 주인의 외손녀가 하는 음식점




자장면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정확한 단서는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화춘(구)’이라는 청요리전문음식점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낡은 건물만 남아있는 공화춘은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건물관리대장에는 1948년으로 나와 있다. 당시 공화춘은 구 대불호텔의 ‘중화루’와 궤를 같이하는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옛날 공화춘 주인의 외손녀가 운영하는 음식점이 있다고 해서 수소문 끝에 찾아가 보았다. 일절하고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대학시절 피씨방 알바를 하면서 줄곧 자장면만 먹었던 터라 이후 어지간해서는 자장면은 입에 데지 않는데, 옛 공화춘 주인의 외손녀가 한다는 그곳은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물만두 또한 직접 만든 것으로 쫀득쫀득 씹히는 것이 감칠맛 났다. 특히 물만두는 한 접시가 겨우 2천원이다. 이 집에는 무언가 비결이 전해져 오는 것이 아닐까.





자장면 거리 이외에도 중국인 거리에는 먹거리가 많다. 양꼬치, 월병, 공갈빵 등은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월병은 손바닥만 한 크기에 두툼한 중국식 과자인데, 여러 견과류를 넣은 것, 말린 과일, 단팥이 들어간 것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군침을 흘리며 눈 구경만 하던 중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고량주를 내놓고 있는 가판에서 투명한 유리컵에 담겨 스티커로 밀봉돼있는 형태의 잔술이었다. 중국인들이 술을 좋아한다더니, 마치 젤리포를 뜯어 먹듯이 휴대용으로 잔술을 뜯어먹나 보다고 생각하니 재밌었다. 사고 싶었지만 술이 너무 독한관계로 꾹 참았다.





상점거리를 지나 잘 닦여진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즈넉한 ‘삼국지 벽화길’이 나온다. 총 127장으로 이뤄진 벽화는 원용연(54)화백의 작품으로 100미터 길이의 양쪽 벽을 따라 황건적의 난, 도원결의, 동탁의 도성진격, 등 삼국지의 주요장면들이 77장 그려져 있다. 나머지 55장은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여포 등의 인물 그림이다.

골목 맞은편 중산화교학교의 빨간 정문과 대비돼 사진 찍기에도 좋은 장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빨간색 펜으로 이름을 쓰면 눈살을 찌푸릴 만큼 빨간색을 좋아하지 않는데, 중국 사람들은 정말 빨간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마을 대문들도 빨간 문이 많았다. 강렬한 빨간색은 중국인들의 열정적인 삶을 상징하는 것 같다.





벽화거리를 지나면 ‘자유공원’으로 향하는 산채로가 나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라는 자유공원은 1897년에 세워진 서울 파고다 공원보다 9년가량 빨리 지어졌다고 한다. 초기에는 서양인들이 조성한 공원이라 하여 만국공원으로 불렸다. 공원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주인공인 맥아더 장국의 동상이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대가 높은 공원에서는 시가지 일부와 항만시설 서해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자유공원에서 내려오는 길 제 2패루로 향하는 계단에는 ‘공자상’이 있다. 차이나타운은 이렇게 샛길마다 가보지 않으면 볼거리를 놓치고 만다. 어디에 어떤 것들이 숨어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을을 내려 보고 있는 공자상은 눈매가 어질었고 어릴 적 선생님 앞에 섰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

“지혜로운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어진 사람은 걱정이 없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고대 중국의 위대한 교육자인 공자는 중국인들에게 인생의 스승이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현재까지도 공자의 후손들은 추대를 받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공자상이 있는 장소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국내 유일한 중국식 절인 ‘의선당’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가정집으로 보여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절의 모습은 평범하다. 소박한 안뜰을 지나 신당에는 부처만이 있는 줄 알았건만, 총 4명의 신이 모셔져있었다. 그 중 관우도 보였다. 중국인들이 관우를 존경한다고 하더니 신으로까지 모시나보다. 이는 중국특유의 불교와 도교가 결합한 독특한 문화이리라.





100년 전 황합경이라는 스님이 세웠다는 의선당은 예전에는 춘절(중국의 설)이면 화교들이 모여 중국식 음악을 울리고 음식을 차리는 등 한해의 평안을 기원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떠나 그런 광경을 볼 수 없다고. 앞으로 이곳이 뉴욕의 차이나타운 만큼 중국인들로 북적거려서 중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약 2시간에 걸쳐 돌아본 차이나타운은 발이 꽁꽁 얼고, 살이 에이는 추운날씨였지만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편, 차이나타운은 종합선물세트이다. 걸어서 넉넉히 2시간이면 네 곳의 관광지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가 중국인거리, 두 번째는 자유공원, 세 번째는 역사문화의 거리, 마지막으로 근대건축물탐방거리이다.

글. 사진 정아람 기자 araming@chinabj.co.kr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니하오” 인천의 차이나타운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