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의학이 분석한 ‘메니에르병’부터 고갱과의 ‘검술 결투설’까지
1888년 12월 23일 밤, 프랑스 남부 아를(Arles). 전 세계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기괴하고도 슬픈 사건이 발생했다.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자신의 왼쪽 귀를 면도날로 잘라낸 것이다.
1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예술가의 광기’를 상징하는 전설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역사학자들과 의학계는 이 사건 뒤에 우리가 몰랐던 ‘질병’과 ‘치명적 갈등’이 숨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 가설 1: “귀가 울려 참을 수 없었다” - 메니에르병 설(說)
현대 의학자들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원인은 ‘메니에르병(Meniere's disease)’이다. 이 병은 속귀(내이)의 이상으로 심한 어지럼증, 이명(귀울림), 난청을 동반한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귀에서 끔찍한 소리가 나고 정신을 차릴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당시에는 이 질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 단순히 ‘간질’이나 ‘조현병’으로 치부됐으나, 전문가들은 고흐가 끊임없이 들리는 이명과 어지럼증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싶어 귀를 자르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 분석한다.
실제로 그의 말기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 속 소용돌이치는 별빛은 메니에르병 환자가 겪는 시각적 어지럼증의 투영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 가설 2: “가장 소중한 동료와의 파멸” - 고갱과의 갈등
사건 당일, 고흐는 아를의 ‘노란 집’에서 함께 생활하던 동료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과 격렬한 다툼을 벌였다. 예술 공동체를 꿈꿨던 고흐와 달리, 현실적이고 냉소적이었던 고갱은 아를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심리적 의존도가 높았던 고흐에게 고갱의 결별 선언은 사형 선고와 같았다.
일각에서는 고흐가 고갱을 위협하다가 죄책감에 자신을 자해했다는 설을 지지한다.
심지어 2009년 독일의 사학자들은 “펜싱 고수였던 고갱이 말다툼 도중 칼로 고흐의 귀를 베었고, 두 사람이 우정을 지키기 위해 자해로 입을 맞췄다”는 이른바 ‘검술 결투설’을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 가설 3: “테오의 결혼 소식과 경제적 불안”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는 또 다른 이론은 고흐의 유일한 지지자였던 동생 테오의 결혼이다.
고흐는 사건 당일 테오로부터 약혼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경제적으로 테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고흐가 동생의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후원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발작을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 자른 부위는 어디까지? - 귓불인가, 전체인가
오랫동안 고흐가 귓불만 잘랐다는 것이 통설이었으나, 2016년 버나뎃 머피가 발견한 당시 주치의 펠릭스 레이의 스케치에 따르면 고흐는 귀의 거의 전체를 절단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 잘린 귀를 신문지에 싸서 평소 알고 지내던 사창가의 여성에게 건네며 “이 물건을 잘 간직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자신을 거부하는 세상에 대한 처절한 기표(Signifier)이자, 누구에게라도 기억되고 싶었던 외로운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 결론: 질병과 예술혼이 빚어낸 비극의 결정체
고흐의 귀 절단 사건은 단순한 광기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육체적 질병(메니에르병), 관계의 파탄(고갱), 경제적 고립(테오)이라는 삼중고가 겹쳐진 비극적 폭발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 이후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그의 생애 중 가장 강렬하고 아름다운 걸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남겨진 그의 자화상 속 하얀 붕대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한 인간의 눈물겨운 훈장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