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구원인가, 아니면 파멸인가?"
-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두 영혼의 대서사시
영국 문학사상 가장 강렬하고도 기괴한, 그래서 더 아름다운 에밀리 브론테의 걸작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1847년에 쓰인 이 소설. 그 거친 바람 속으로 들어가 보자.
바람이 머무는 곳, '워더링 하이츠'의 고독
이 작품의 제목인 '워더링 하이츠'는 영국 요크셔의 거친 황무지 꼭대기에 세워진 저택 이름이야. '워더링(Wuthering)'은 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때 나는 소리를 뜻하는 방언이지.
일 년 내내 안개가 자욱하고, 휘어진 나무들이 비바람에 몸을 맡기는 이곳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야. 주인공들의 가공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상징하지. 문명화된 사회의 예절이나 도덕이 끼어들 틈이 없는, 오직 본능과 열망만이 숨 쉬는 고립된 성소와도 같은 곳이야.
1. 이방인의 침입과 운명적 얽힘 (어린 시절)
요크셔의 황량한 들판 위,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 씨는 리버풀 거리에서 죽어가던 부랑아 소년 한 명을 데려와. 검은 머리에 거친 피부를 가진 이 소년에게는 죽은 아들의 이름인 '히스클리프'가 주어지지. 하지만 이 소년의 존재는 저택의 평화를 뒤흔드는 폭풍의 눈이었어.
아들 힌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뺏어간 히스클리프를 짐승처럼 증오하며 학대하기 시작해.
하지만 딸 캐서린만은 달랐어. 두 아이는 손을 맞잡고 안개가 자욱한 황무지를 누비며 세상에 단둘뿐인 것처럼 서로에게 탐닉해. "너와 나는 같은 흙으로 빚어졌다"고 믿었던 그 시절, 히스클리프에게 캐서린은 유일한 구원이었고,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는 거친 본능 그 자체였어.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힌들리가 가장이 되자, 히스클리프는 하인보다 못한 처지로 전락하며 매질과 모욕 속에 어둠을 키워가게 돼.
2. 엇갈린 선택과 배신의 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날, 이들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사건이 터져. 우연히 부유하고 우아한 저택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를 엿보게 된 캐서린은 그곳의 도련님 에드거 린턴의 친절과 세련된 문명에 매료되고 말아. 진흙투성이에 무식한 히스클리프와 달리, 비단옷을 입고 시를 읊는 에드거는 캐서린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지.
결국 캐서린은 하녀 넬리에게 속마음을 털어놔.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는 건 내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야. 그래서 난 에드거와 결혼할 거야." 문밖에서 이 말을 훔쳐 듣던 히스클리프는 뒤이어 나온 "하지만 내 영혼이 히스클리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라는 고백은 듣지 못한 채, 피눈물을 흘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려.
그날 밤, 워더링 하이츠에는 지붕이 날아갈 듯한 폭풍우가 몰아치지. 마치 그의 찢겨나간 심장 소리처럼 말이야.
3. 복수의 화신으로 돌아온 히스클리프
3년 뒤, 행방불명되었던 히스클리프가 막대한 부를 쌓은 신사가 되어 돌아와.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엔 사랑 대신 검은 복수심만이 가득했지.
그는 도박으로 타락한 힌들리를 빚더미에 앉혀 워더링 하이츠를 통째로 뺏어버리고, 자신을 무시했던 이들에게 차례로 칼을 겨눠. 심지어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해 결혼한 뒤, 그녀를 지옥 같은 삶으로 몰아넣으며 린턴 가문을 무너뜨리려 해.
캐서린은 에드거의 아내가 되어 평온한 삶을 사는 듯했지만, 히스클리프의 등장은 그녀의 잠들었던 야성을 깨워버려.
두 사람은 재회하자마자 서로를 할퀴고 비난하면서도,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고통스러운 애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왜 나를 배신했어? 내 심장을 찢어놓고 어떻게 숨을 쉬고 있었냐"는 히스클리프의 절규 앞에 캐서린은 서서히 미쳐가며 병들어 누워버리고 말지.
4. 죽음을 넘어서는 광기, 그리고 영원한 합일
캐서린의 죽음이 임박한 순간, 히스클리프는 에드거의 눈을 피해 그녀의 침실로 숨어들어. 두 사람은 마지막 포옹을 나누며 서로를 저주하고 축복해.
캐서린이 숨을 거두자 히스클리프는 벽에 머리를 찧으며 울부짖어. "나를 이 지옥에 혼자 두지 마! 유령이 되어 나를 미치게 해도 좋으니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마! 너 없는 세상에서 나는 살 수가 없어!"
그로부터 20년, 히스클리프는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 복수의 남은 과업들을 완수해 가. 복수는 완성되었지만 그의 영혼은 단 한 순간도 평안하지 못했고 그의 시선은 늘 캐서린의 유령이 떠도는 황무지 너머를 향해 있었어.
마침내 그는 캐서린의 무덤을 파헤쳐 그녀의 관 옆면을 뜯어내고, 자신의 관도 그 옆에 놓이게 유언을 남겨. 흙 속에서라도 그녀와 육체가 섞이길 갈망한 거야.
비바람이 거세게 치던 날, 그는 창문을 열어둔 채 미소 띤 얼굴로 죽음을 맞이해.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캐서린의 곁으로 돌아간 거지. 이제 황무지에는 더 이상 복수의 비명은 들리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폭풍우가 치는 밤이면 두 연인의 유령이 황무지를 함께 달리는 것을 보았다는 전설만이 전해질 뿐이야.
문명이라는 껍데기를 찢고 나온 본능의 비극
<폭풍의 언덕>이 시대를 초월해 고전으로 남은 이유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가장 파괴적이고도 순수한 '본능'을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야. 에드거 린턴의 저택이 상징하는 '문명, 재산, 예의'는 겉보기에 아름답지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야생적 결합' 앞에서는 종잇장처럼 무력해지지.
에밀리 브론테는 사랑을 단순히 남녀 간의 애정으로 보지 않았어. 그것은 종교보다 숭고하고, 죽음보다 강력한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갈망으로 묘사했지. 히스클리프의 악행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지만, 독자들이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 건 우리 역시 가슴 한구석에 그런 원초적인 갈망을 품고 살기 때문일 거야.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장 거대한 에너지
수많은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화했지만, 공통으로 주목하는 건 '문명과 본능의 충돌'이야. 에드거 린턴이 상징하는 품위, 재산, 교양은 캐서린을 유혹했지만, 그녀의 본질인 히스클리프를 채워주진 못했어.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잔인하지만, 독자나 관객은 그를 마냥 미워할 수 없어. 그의 모든 악행은 결국 '캐서린을 향한 결핍'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지.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고 있어. "우리는 사회적 조건 때문에 내 영혼의 짝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폭풍의 언덕>은 낭만주의의 정점을 보여줘. 사랑이 단순히 달콤한 속삭임이 아니라, 한 인간을 완전히 파괴하거나 혹은 죽음을 넘어서서 결합하게 만드는 '우주적 힘'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가슴을 저미는 네 가지 순간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
캐서린의 이 한마디는 문학사상 가장 강렬한 사랑의 고백이야. 너와 내가 타인이 아니라, 하나의 영혼임을 선언하는 이 문장은 사랑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보여줘.
20년의 기다림, 열린 창문 :
죽기 직전 히스클리프가 창문을 열어둔 건, 밖에서 떠도는 캐서린의 영혼이 들어오길 기다렸기 때문이야. 평생을 증오로 살았던 남자가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그 지독한 순애보에 가슴이 먹먹해지지.
캐서린의 무덤을 파헤친 히스클리프 :
죽은 캐서린의 관을 열어 그녀의 곁에 눕고자 했던 히스클리프의 광기는 소름 끼치도록 절절해. 육체적 결합을 넘어 영혼의 합일을 꿈꾸는 그의 갈망이 느껴지지.
황무지 위를 달리는 두 영혼 :
영화의 마지막, 모든 복수가 끝난 뒤, 폭풍우가 멎은 언덕 위에서 두 사람의 영혼이 자유롭게 노니는 결말. 죽음이 끝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된 진정한 결합이라는 점이 이 비극을 위대한 로맨스로 승화시켜.
너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일에 미친 듯이 몰입하고 싶을 때가 있지?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들처럼 주변의 시선이나 조건 따위는 다 집어던지고 오직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만 달려가고 싶은 순간 말이야.
세상은 우리에게 적당히 타협하고, 세련되게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가끔은 이런 투박하고도 지독한 열정이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는 걸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어.
오늘 밤, 창밖의 바람 소리가 유독 거세게 들린다면 가만히 눈을 감고 워더링 하이츠의 그 언덕을 상상해 봐. 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뜨거운 불꽃 하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 소설을 쓴 에밀리 브론테는 평생 요크셔의 황무지를 떠나지 않고 고독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아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