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12(월)
 
  • '보이는 것'이 아닌 '생각의 가치'를 사는 시대… 현대미술의 문턱을 넘다
  • 캔버스를 찢은 폰타나부터 점을 찍은 이우환까지, '개념'이 권력이 되는 법

 

 

갤러리 하얀 벽면에 덩그러니 놓인 점 하나. 

혹은 캔버스를 칼로 슥 그어놓은 자국. 

 

현대미술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가장 흔히 내뱉는 탄식은 "저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나도 그리겠는' 작품들이 경매 시장에서 수십억 원, 수백억 원에 낙찰되는 현실 앞에 대중은 당혹감을 느낀다. 

 

도대체 현대미술은 무엇을 팔기에 이토록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것일까?

 

 

1. "무엇을 그렸나"가 아니라 "왜 그렸나" (철학의 승리)

 

과거의 미술이 사물을 얼마나 똑같이 재현하느냐(Skill)의 싸움이었다면, 카메라의 발명 이후 현대미술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Concept)의 싸움으로 변했다.

 

발상의 전환 :   캔버스를 칼로 찢은 루치오 폰타나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단순히 천을 훼손한 것이 아니다. 2차원의 평면인 캔버스에 구멍을 내어 그 너머의 3차원 공간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 '최초의 시도'가 가진 철학적 가치가 가격을 결정한다.

 

이우환의 점 :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의 점(Point)은 단순히 찍은 점이 아니다. 돌가루를 섞은 물감이 붓에서 다할 때까지 찍어 누르는 행위, 그 시간의 흐름과 공간과의 여백을 담은 '관계'의 철학이다.

 

 

2. '숙련된 노동' 대신 '예술적 권위'를 사다

 

 

현대미술 시장에서 가격은 작가의 '브랜드 파워'와 '미술사적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

 

기록의 가치: "누가 먼저 이 생각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후발 주자가 아무리 똑같이, 혹은 더 정교하게 점을 찍어도 그것은 '모방'일 뿐 '창조'가 아니다.

 

전문가의 보증: 세계적인 큐레이터, 평론가, 유수한 미술관이 그 작가의 철학을 공인할 때, 작품은 단순한 물건에서 '인류의 문화 자산'으로 격상된다. 컬렉터들은 종이 한 장의 물리적 가치가 아니라, 그 작가가 쌓아올린 '예술적 연대기'를 구매하는 것이다.

 

 

3. 희소성과 자본의 논리

 

 

경제적 관점에서 현대미술품은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다.

 

한정된 공급: 거장들의 작품 수는 정해져 있다. 반면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전 세계 자산가들의 수요는 계속 늘어난다. 점 하나 찍은 그림이 수십억 원인 이유는, 그것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며 그 가치를 인정하는 자본가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보관된 가치: 주식이나 화폐와 달리 미술품은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활용된다. 특히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품들은 유행을 타지 않고 시대를 초월하는 세련미를 지녀 안정적인 투자처로 각광받는다.

 

 

결론: 당신이 보는 것은 그림인가, 생각인가?

 

현대미술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으로 읽는 장르다. 점 하나를 보고 "저건 나도 찍겠다"고 말하는 것은, 스마트폰을 보고 "저건 나도 조립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조립 기술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설계한 생각'이다. 이제 갤러리에서 점 하나를 마주한다면, 작가가 그 점을 찍기 위해 비워낸 고뇌의 시간과 그 점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을 상상해 보라. 그때 비로소 수십억 원이라는 가격표 너머의 진짜 예술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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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리겠는데!" 점 하나 찍은 그림이 수십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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