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흐부터 모딜리아니까지,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그들의 '지독한 가난'
- 생전 단 한 점 팔았던 고흐, 130년 뒤 '억' 소리 나는 경매의 주인공
오늘날 전 세계 주요 박물관의 가장 깊숙한 곳, 삼엄한 경비 속에 걸린 수천억 원짜리 명화들. 그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정작 생전에는 물감 살 돈이 없어 배를 곯았다는 사실은 미술사의 가장 거대한 아이러니다.
왜 세상은 그들이 살아있을 때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예술적 순교자'라 불리는 이들의 삶을 통해 예술의 가치와 시대의 안목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 1. 빈센트 반 고흐: 평생 팔린 그림은 단 1점
'사후의 황제'를 꼽을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은 단연 빈센트 반 고흐다. 그는 10년의 짧은 화업 동안 2,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에 팔린 그림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딱 한 점뿐이었다.
생전의 삶: 동생 테오의 경제적 지원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었으며, 카페 외상값을 갚기 위해 그림을 넘기려 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반전의 미학: 고흐의 강렬한 색채와 소용돌이치는 붓질은 당시의 엄격한 아카데미즘 미술계에서 '정신 나간 낙서'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재평가받으며 현재 그의 작품 한 점은 약 1억 달러(한화 약 1,300억 원)를 상회하는 가치를 지닌다.
■ 2.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가난과 병마에 꺾인 '파리의 귀공자'
긴 목과 눈동자 없는 인물화로 유명한 모딜리아니 역시 지독한 빈곤 속에 생을 마감했다.
생전의 삶: 결핵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던 그는 단돈 몇 프랑에 그림을 팔아 술을 사 마셨다. 1917년 열린 생애 유일한 개인전은 '나체 그림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전시 시작 몇 시간 만에 폐쇄되는 수모를 겪었다.
사후의 가치: 그가 서른여섯의 나이로 요절한 직후, 그의 작품값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2015년 그의 '누워있는 누드'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억 7,040만 달러(약 2,000억 원)에 낙찰되며 세계 미술계를 경악하게 했다.
■ 3. 요하네스 베르메르: 빚만 남기고 떠난 '빛의 거장'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화가 베르메르 역시 생전에는 지역에서 인정받는 정도의 화가였을 뿐, 경제적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생전의 삶: 다작을 하지 못했던 그는 11명의 자녀를 부양하느라 평생 빚에 시달렸다. 사망 당시 그는 파산 상태였으며, 아내는 빚을 갚기 위해 남편의 유작들을 헐값에 넘겨야 했다.
부활의 역사: 사후 200년 동안 잊혔던 그는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빛을 조절하는 탁월한 능력과 정교한 구성을 인정받으며 '네덜란드의 거장'으로 부활했다.
시대를 앞서간 혁신: 거장들은 당대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문법을 창조한다. 대중의 안목이 그들의 혁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희소성의 원칙: 화가가 사망하면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없다. 공급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가치가 재발견되면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드라마틱한 서사: 화가의 고통스러운 삶과 비극적인 죽음은 작품에 '신화적 가치'를 부여한다. 컬렉터들은 그림뿐 아니라 화가의 고귀한 희생이라는 '이야기'를 사고 싶어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 단칸방에서 제2의 고흐를 꿈꾸며 붓을 드는 무명 화가들이 있다. "죽어야 뜨는 게 미술계"라는 서글픈 농담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당대의 예술가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어쩌면 오늘 당신이 이름 없는 전시회에서 구매한 50만 원짜리 그림이, 100년 후 인류의 보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