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황하는 인간을 향한 천상의 위로, 괴테가 60년간 빚어낸 영혼의 지도
- 지식의 허무를 넘어 삶의 실천으로, 파우스트라는 거대한 산맥

지식의 끝에서 만난 절망, 그리고 악마의 유혹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인간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방황하는가.
18세기 독일 문학의 거성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20대부터 80대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바쳐 집필한 '파우스트'는 이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거대한 응답이다.
‘파우스트’란 르네상스기에 실재한 마법사(1480~1538)의 이름이다. 이를 핵심으로 16~17세기에 그 전설을 전하는 ‘민중소설’이 유포되어 이를 상연하는 극단이나 인형극이 탄생하였다. 괴테는 소년시절부터 이 이야기에 친숙하였고, 이를 소재로 이용하여 만일 인간이 외적인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껏 자기의 의욕을 실현할 수 있다면 결국 어떠한 결과에 도달하는가를 묘사하고, 비록 이 세상의 죄는 범할지라도 내연적(內燃的)인 자기 확충의 충동에 따라서 행동하는 자는 그의 심정과 행동의 순수성으로 해서 신에게 용납된다는 반기독교적인 확신을 표시하며, 구원의 계기에 유화적인 여성의 사랑을 삽입시키고 있다.
1부에서는 게르만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하여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여러 가지 일들을 겪는 과정들이 들어 있고 2부에서는 서구문명 전통의 그리스적인 요소들을 이용하여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폭넓게 탐구하였다.
당대 모든 학문을 섭렵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의 한계와 생의 허무에 부딪힌 한 노학자의 절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한 울림을 준다. 신과 악마가 한 인간의 영혼을 두고 벌이는 내기, 그 치열한 영적 전쟁의 서막이 오른다.
본문 1 : 지상의 방황, 메피스토펠레스와의 위험한 동행[줄거리 1: 비극 제1부 - 고립된 서재에서 거리의 불꽃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노학자 파우스트는 서재의 먼지 쌓인 책들 속에서 진리를 찾지 못하고 독배를 마셔 자살하려 한다. 이때 부활절 아침의 종소리가 그를 지상으로 불러내고, 그 앞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개(푸들)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제안한다. 지상의 삶에서 파우스트가 만족하여 어느 한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순간, 그의 영혼을 가져가겠다는 계약이다.
회춘의 약을 마시고 젊어진 파우스트는 순수한 처녀 마르가레테(그레첸)를 만나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악마의 조력이 개입된 이 사랑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파우스트와의 만남을 위해 그레첸의 어머니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오빠 발렌틴 역시 파우스트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절망한 그레첸은 영아 살해의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다. 파우스트는 그녀를 구하려 하지만, 그레첸은 신의 심판을 받겠다며 탈출을 거부하고 처형당한다. 이때 하늘에서는 "그녀는 구원받았다"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제1부는 막을 내린다.
본문 2 : 세계의 무대, 권력과 예술 그리고 인류애[줄거리 2: 비극 제2부 - 미(美)의 탐구와 건설적인 노동]
제2부에서 파우스트의 방황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와 역사,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는 황제의 궁정에서 종이 화폐를 발행해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의 절세미녀 헬레나를 소환해 이상적인 미를 추구한다. 헬레나와의 사이에서 아들 에우포리온을 얻으며 행복을 맛보지만, 아들의 죽음과 함께 헬레나도 사라지며 탐미적인 추구 역시 허무로 끝난다.
노년에 이른 파우스트는 이제 권력이나 미가 아닌 '실천적 봉사'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는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불모의 해안 지대를 개간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낙원을 건설하려 한다.
비록 장님이 된 상태에서 인부들이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삽질 소리를 땅을 개간하는 소리로 착각하는 아이러니 속에 있지만, 그는 인류를 위한 이 위대한 과업의 비전을 보며 마침내 외친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그 순간 파우스트는 쓰러져 숨을 거둔다.
본문 3 : 패배한 악마와 승리한 인간, 구원의 논리[명장면과 핵심 대사]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 신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파우스트를 내어주며 하는 말로, 방황이 곧 살아있음의 증거이자 성장의 과정임을 시사한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 파우스트가 최후에 내뱉은 이 말은 쾌락에 굴복한 항복 선언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헌신이라는 가치 있는 순간에 대한 찬사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 : 극의 마지막 합창 내용으로, 자비와 사랑(그레첸의 기도)이 결국 인간을 구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괴테의 60년 집필기]
괴테는 23세에 '파우스트' 초고를 쓰기 시작해 83세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제2부를 완성했다. 그는 완성된 원고를 봉인하며 자신의 사후에나 공개하도록 했다. 이는 한 작가의 단순한 창작 활동을 넘어, 한 인간의 영혼이 성숙해가는 전 과정을 기록한 일종의 '정신적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방황하는 모든 파우스트들에게]
파우스트는 결코 완벽한 성인이 아니다. 그는 욕망에 충실했고,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괴테는 파우스트의 손을 들어준다. 그 이유는 그가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높은 곳을 향해 자신을 던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쉽게 정답을 찾으려 하고, 실패 없는 삶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말한다. 방황은 오류가 아니라 인간이 신성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지금 당신이 겪는 혼란과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우리 안의 메피스토펠레스가 "이제 그만 멈추라"고 속삭일 때, 우리는 어떤 '아름다운 순간'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괴테가 남긴 이 묵직한 질문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