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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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66) 세종대 명예교수가 26일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단을 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이날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2015년 11월 검찰이 사건을 기소한 지 8년, 2017년 11월 상고가 접수된 지 6년 만에 나온 결론으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인정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박 교수는 2013년 8월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이자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고, 일본 제국에 의한 강제 연행이 없었다고 허위 사실을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5년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35곳 표현 가운데 11곳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게 맞는다며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2심 법원이 문제 삼은 표현은 "강제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은 없다",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 등이다.


박 교수가 "'그런 부류의 업무에 종사하던 여성이 스스로 희망해서 전쟁터로 위문하러 갔다'든가 '여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보는 견해는 '사실'로는 옳을 수도 있다"고 쓴 부분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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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학문적 연구 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 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 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 평가 과정을 통해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런 기준에 따라 박 교수가 저서에 쓴 표현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의 적시'로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춰 보면 박 교수가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맥락이나 집필 의도 등에 비춰 보면 박 교수가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인한 것은 아니며, 제국주의나 가부장제 질서 등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있으므로 일본의 책임에만 주목해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쓴 표현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나 조선인 비율에 비춰 조선인 위안부를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거나 균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각 표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도 보기 어렵다"며 "'공적 강제연행'에 관한 표현은 학문적 개념 포섭을 전제한 것으로 사실 적시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며 "(박 교수가) 통상의 연구윤리를 위반했다거나 피해자들의 자기결정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판결 후 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해결 방법에 대한 지원단체의 주장에 대해 검토한 책인데, 검사는 지원단체의 '법적 해결'이라는 주장을 부정하지 않았느냐며 저를 매국노 취급했다"며 "지원단체 주변인들이 만들고, 국민의 상식이 되고 국가의 견해가 돼 버린 생각에 이견을 제시했다고 해서 고발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강제연행을 부인했다는 것은 커다란 오해"라며 "제가 시도한 것은 양극단을 비판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검토한 일이다. 지원단체의 사고나 활동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는 것이 '제국의 위안부'가 제시하는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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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집. 연합뉴스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계의 반응은 학자의 솔직한 의견을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측과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선 진실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측으로 분분하다.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학술 저서는 명예훼손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박 교수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책임을 부인한 게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제국의 위안부'가 처음 출간된 것은 2013년 8월이었다. 이 책에서는 *위안부의 불행을 낳은 것은 식민 지배,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라는 복잡한 구조였다. *20만명이 강제로 위안부가 됐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등의 주장을 담았다.


이에 2014년 6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9명이 자신들을 '자발적 매춘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 등으로 매도했다며 민형사 고소에 나섰다.


법원은 이들이 낸 출판 금지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해 34개 문장을 삭제해서 출판하도록 했다.


2015년 11월 검찰이 박 교수를 기소했고,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시작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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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무죄…학문적 주장 명예훼손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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