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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흔들리는 대만: 양안 관계의 군사적 긴장감과 동북아 안보
-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를 꼽으라면, 많은 전략가가 주저 없이 폭 180km의 대만 해협을 지목할 것이다. 매일같이 중국 인민해방군(PLA)의 군용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거대한 항공모함과 구축함이 해협을 에워싸며 무력시위를 벌인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조국 통일'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공언하는 중국의 거대한 야망과, 스스로를 주권 민주주의 국가로 인식하는 대만의 정체성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현장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증폭기까지 더해진 이 대치는 이제 양안(两岸)만의 문제가 아닌,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전체,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지정학적 특이점(singularity)이 되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치: 압도적 군사력과 비대칭 전략 숫자로 본 양안의 군사적 균형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골리앗에 비견되는 중국의 군사력은 압도적이다. 병력 및 국방예산: 중국의 현역 병력은 약 200만 명으로, 대만(약 17만 명)의 10배가 넘는다. 공식적인 국방예산 역시 중국이 약 2,300억 달러로 대만(약 190억 달러)의 12배를 상회하며, 실제로는 그 격차가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해군 및 공군력: 중국은 3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해 수백 척의 현대적인 군함을 보유하고 있으나 대만은 주력함이 20여 척에 불과하다. 공군 역시 스텔스 전투기 J-20 등을 앞세운 중국의 4세대 이상 전투기가 1,200대를 넘는 반면, 대만은 400여 대 수준이다. 수천 기에 달하는 중국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유사시 대만의 주요 군사 시설을 수 시간 내에 무력화할 수 있다. 이러한 압도적 전력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은 전면 침공 위협뿐 아니라, 군용기의 일상적인 위협 비행, 해상 봉쇄 훈련, 사이버 공격과 가짜뉴스 유포 등 전쟁과 평화 사이의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을 통해 대만의 군사적, 심리적 피로도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다윗, 대만의 생존 전략은 '고슴도치(Porcupine)'로 요약된다. 전면전에서의 승리가 아닌, 중국의 침공을 최대한 고통스럽고 값비싸게 만들어 포기하게끔 만드는 비대칭 전략이다. 이를 위해 대만은 하푼 지대함 미사일, 슝펑(雄風) 순항미사일 등 적 함대를 원거리에서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또한, 스팅어와 재블린 같은 휴대용 대공·대전차 미사일을 대량으로 확보해 시가전과 상륙 저지 능력을 키우고 있으며, 자체 잠수함과 드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180km의 대만 해협이라는 자연 방어선과 '대만관계법'에 따른 미국의 잠재적 개입 가능성은 고슴도치의 가장 날카로운 가시다. 실리콘 방패: 반도체가 만든 경제적 딜레마 양안 관계의 또 다른 핵심 변수는 군사력이 아닌 경제, 특히 반도체다. 대만은 TSMC를 필두로 전 세계 최첨단(7나노 이하) 반도체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독점적 공급자다. 이는 대만에게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라는 독특한 방어막을 제공한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TSMC의 생산 라인이 멈춘다면, 중국의 첨단 산업은 물론 전 세계 IT, 자동차, 방산 업계가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는 중국 경제에도 자살골에 가까운 충격을 줄 것이기에, 섣불리 군사행동에 나설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한다. 역설적이게도, 양안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도는 여전히 매우 높다. 대만 전체 수출의 약 35%가 중국(홍콩 포함)으로 향하며, 수많은 대만 기업이 중국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경제적 이해관계는 양안 관계가 군사적 논리로만 재단될 수 없는 복잡성을 띠게 만든다. 강 건너 불이 아닌 우리의 문제 일각에서는 대만 해협의 위기를 '강 건너 불'처럼 여기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직접적인 위협이다. 경제 안보의 붕괴: 대만 해협은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90%, 수출입 물동량의 40% 이상이 통과하는 핵심 해상교통로(SLOC)다. 해협이 봉쇄되는 순간, 한국 경제는 에너지를 수혈받지 못하고 수출길이 막히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안보 딜레마: 유사시 주한미군의 전략 자산이 대만 방어를 위해 이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곧 한반도의 대북 억제력에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동맹으로서의 역할과 지원을 요구받을 경우, 우리는 최대 동맹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파괴적인 선택을 강요당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북한의 오판 가능성: 동북아에 권력 공백이 발생하면, 북한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도발의 수위를 급격히 높일 수 있다. 이는 한반도에 제2의 전선이 형성되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결론적으로, 대만 해협의 평화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생존 문제다. 현재의 아슬아슬한 현상 유지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지만, 무력 충돌이라는 파국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와 연대해 중국의 무력 사용을 억제하고, 동시에 대화의 끈을 놓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는 것. 이 위태로운 균형을 관리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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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흔들리는 대만: 양안 관계의 군사적 긴장감과 동북아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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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품 붕괴 막기, 중국식 해법은 시장에 어떤 신호를 주는가
-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세계 금융 시스템을 붕괴 직전으로 몰고 갔던 것처럼, 헝다(恒大)와 비구이위안(碧桂园)의 연쇄적인 채무 불이행은 중국판 '리먼 모멘트'의 공포를 불러왔다. 중국의 부동산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국가 경제 성장의 약 25%를 차지하고, 가계 자산의 70%가 묶여 있는 경제의 심장이자 사회 안정의 기반이다. 이 심장이 멎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마침내 칼을 빼 들었다. '국가'가 시장의 구원투수로 직접 등판한 것이다.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전례 없는 이 '중국식 해법'은, 시장경제 원칙에 익숙한 서방 세계에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도박은 성공할 수 있으며, 세계 시장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 수치로 본 위기: '유령 도시'와 멈춰버린 크레인 중국 부동산 위기의 심각성은 몇 가지 수치로 압축된다. 골드만삭스 등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미분양 주택 재고 규모는 완공 주택과 건설 중인 주택을 포함해 약 ‘30조 위안(약 5,7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의 미분양 주택 면적만 해도 수억 제곱미터에 이르며, 이를 모두 소화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이는 단순히 팔리지 않은 아파트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업체의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란웨이러우(烂尾楼, 썩은 꼬리 빌딩)'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했다. 평생 모은 돈으로 집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은 대출 이자만 내며 영원히 완성될지 모를 아파트를 바라보는 처지가 되었다. 부동산 개발업체에 의존해 재정을 충당해 온 지방정부들은 토지 매각 수입이 급감하며 극심한 재정난에 빠졌다. 이처럼 부동산 위기는 금융 시스템, 지방 재정, 그리고 민생을 동시에 위협하는 복합 골절과 같다. '국가 매입' 카드: 중국식 해법의 작동 방식 이 복합 골절을 치료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내놓은 처방의 핵심은 바로 '국가에 의한 재고 흡수'다. 지난 5월, 중국인민은행(PBOC)은 3,000억 위안(약 57조 원) 규모의 재대출 기금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이 자금은 국책은행 등을 통해 지방정부 산하 국유기업(SOE)에 저금리로 공급된다. 지방 국유기업은 이 돈을 활용해 시장에 쌓여있는 미분양 주택 중 일부를 '합리적인 가격'에 매입한다. 그리고 매입한 주택은 저소득층을 위한 '보장성 주택(保障性住房)' 즉,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전환된다. 이 정책은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노린다. 개발업체 유동성 공급: 미분양 주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 부동산 개발업체는 급한 빚을 갚고, 중단된 '란웨이러우'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 이는 금융 시스템으로의 위기 전이를 차단하는 방화벽 역할을 한다. 부동산 재고 해소: 시장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미분양 물량을 국가가 흡수하여 시장의 수급 균형을 맞추고, 추가적인 가격 폭락을 막는다. 사회 문제 해결: 매입한 주택을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공급함으로써, 시진핑 주석이 강조해 온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房住不炒)"라는 원칙을 실현하고 '공동부유' 이념에도 부합한다. 거대한 도박: 57조 원은 충분한가? 이 중국식 해법은 시장의 붕괴를 막겠다는 국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초기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규모의 미스매치'다. 중앙은행이 마련한 3,000억 위안의 재대출 기금은 시중 은행의 대출을 유도해 최대 ‘5,000억 위안(약 95조 원)’의 유동성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수십조 위안에 달하는 전체 미분양 재고에 비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무디스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바다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격"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방정부의 재정난 역시 심각한 걸림돌이다. 이미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는 지방정부가 추가로 빚을 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여력이 있는지, 또 그럴 의지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합리적인 가격'을 두고 벌일 개발업체와 정부 간의 줄다리기 역시 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해이'의 문제도 피할 수 없다. 부실 경영으로 위기에 빠진 기업을 결국 국가가 구제해준다는 선례는, 장기적으로 시장 규율을 무너뜨리고 더 큰 위기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시장을 완전히 회복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급한 불을 끄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응급 수혈'에 가깝다. 이 정책이 시장에 보내는 가장 강력한 신호는, 중국에서는 경제 논리보다 '정치적 안정'과 '사회 통제'가 항상 우선한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시장의 종언과 국가의 귀환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인 셈이다. 이 거대한 도박이 중국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더 큰 문제를 이연시키는 미봉책에 그칠지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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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품 붕괴 막기, 중국식 해법은 시장에 어떤 신호를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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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플러스(+)' 전략,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의 승부수
- '세계의 공장'이라는 칭호는 지난 30년간 중국의 압도적인 제조업 규모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값싼 노동력과 방대한 규모에 의존하던 성장 모델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내수 침체와 부동산 위기라는 내부적 도전과, 미국의 첨단 기술 견제라는 외부적 압박 속에서 중국은 '제조업 대국(大国)'에서 '제조업 강국(强国)'으로의 질적 도약을 생존 과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비장의 무기로 꺼내 든 카드가 바로 'AI 플러스(AI+) 행동' 전략이다. 이는 단순히 신기술을 도입하는 차원을 넘어, 인공지능을 국가의 모든 산업 혈맥에 수혈하여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다. AI 플러스란 무엇인가? 단순한 기술 융합을 넘어 2024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리창 총리가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처음 공식화한 'AI 플러스 행동'은 모든 산업, 특히 제조업에 AI 기술을 전면적으로 접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과거 리커창 총리가 추진했던 '인터넷 플러스'의 심화 버전으로, 인터넷이 산업의 '연결'을 담당했다면 AI는 산업의 '두뇌' 역할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공업정보화부(공신부)에 따르면, 이 전략의 핵심은 **'신형 공업화(新型工业化)'**를 추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AI 기술을 활용해 ▲생산 효율성 극대화 ▲제품 품질 향상 ▲에너지 소비 및 오염물질 배출 감소 ▲공급망 관리 최적화 등을 달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중국정보통신연구원(CAICT)은 중국의 AI 핵심 산업 규모가 ‘2025년 4,000억 위안(약 76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며, AI 기술이 실물 경제에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수조 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AI 플러스'가 단순한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수치와 목표를 가진 국가 전략임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구현되는 'AI 공장'의 모습 'AI 플러스'의 진정한 모습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드러난다. 이미 중국의 선도적인 공장들은 '스마트 공장'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는 'AI 공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중국 전기차(EV) 선두주자인 BYD의 공장에서는 수천 대의 로봇팔이 AI의 통제 아래 쉴 틈 없이 움직인다. AI 비전 시스템은 0.1mm의 오차까지 실시간으로 검수하며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또한, AI는 글로벌 부품 공급망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재고 수준을 유지하고 생산 계획을 자동 조정한다. 이는 'AI 플러스'가 어떻게 생산 효율성과 품질을 동시에 잡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자제품 산업: 세계 최대의 가전업체 중 하나인 메이디(Midea)의 스마트 공장에서는 AI가 매일 수억 건의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효율적인 생산 라인 조합을 찾아낸다. 덕분에 주문부터 최종 제품 출하까지 걸리는 시간은 과거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철강 및 화학 산업: 과거 대표적인 '굴뚝 산업'도 AI를 통해 변신하고 있다. 바오산 철강(宝山钢铁)은 AI를 용광로 운영에 도입하여, 최적의 온도와 원료 투입량을 계산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10% 이상 개선하고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AI 플러스'는 전통 제조업의 생산 공식을 완전히 새로 쓰고 있다. 과거 인간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던 공정들이 이제는 데이터와 AI 알고리즘에 기반한 정밀한 예측과 제어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넘어야 할 산: 기술 자립과 데이터의 딜레마 물론 중국의 'AI 플러스' 전략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제조업 강국'으로 가는 길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허들이 존재한다.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핵심 기술의 대외 의존도다. AI 모델을 구동하는 데 필수적인 고성능 AI 반도체는 여전히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의존이 절대적이다. 미국의 강력한 수출 통제는 중국의 AI 발전에 직접적인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화웨이 등이 자체 AI 칩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최선단 공정에서의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은 과제다. 또한, 데이터의 딜레마도 존재한다. AI의 성능은 양질의 데이터에 의해 좌우되는데, 공장 내 수많은 설비와 공정에서 발생하는 산업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공유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기업들은 자사의 핵심 노하우가 담긴 데이터를 외부에 공개하기를 꺼리며, 이는 산업 전반의 AI 도입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데이터 보안과 소유권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할 난제다. 결론적으로, 'AI 플러스' 전략은 중국이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규모'에서 '지능'으로 전환하려는 야심 찬 승부수다. 이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미국의 기술 압박을 우회하고 미래 산업의 표준을 선점하려는 국가 생존 전략의 일환이다. 비록 핵심 기술 자립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하지만,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국가 차원의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이 도전을 정면 돌파하려 하고 있다. 'AI 플러스'의 성공 여부는 향후 10년, 중국이 진정한 제조업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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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플러스(+)' 전략,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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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환신(以旧换新)' 정책, 소비 진작을 넘어 산업 고도화의 촉매 될까
-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 내수 부진, 그리고 디플레이션의 그림자. 2025년 중국 경제를 짓누르는 이 삼중고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다시 한번 과거에 성공했던 정책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이구환신(以旧换新)', 우리말로 '헌 것을 새것으로 바꾼다'는 의미의 대규모 소비재 교체 지원 정책이다. 자동차, 가전 등 내구소비재 교체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는 단기 부양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것을 넘어, 중국의 산업 구조를 미래형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거대한 야망이 숨어있다. 과연 이구환신은 단순한 소비 진작을 넘어 중국 산업 고도화의 촉매가 될 수 있을까? 15년 만의 재등장, 규모와 목표부터 다르다 이구환신 정책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처음 시행되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당시 정책이 4조 위안 규모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맞물려 경제를 V자 반등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5년 만에 다시 등장한 2025년의 이구환신은 그 규모와 목표에서 과거와 궤를 달리한다.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행동 방안에 따르면, 이번 정책의 핵심은 자동차와 가전 두 축으로 나뉜다. 자동차의 경우, 노후 내연기관차를 폐차하고 신에너지차(NEV)로 교체 시 ‘최대 1만 위안(약 19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가전 부문에서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스마트 가전, 친환경 가구 등으로 교체하는 소비자에게 보조금 혜택을 제공한다. 중국 상무부의 추산에 따르면, 이 정책으로 인해 창출될 시장 규모는 자동차 부문에서만 1조 위안, 가전 부문에서 수천억 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전체 설비 교체 수요를 연간 5조 위안(약 950조 원) 이상으로 추정하며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핵심적인 차이는 정책의 지향점이다. 2009년에는 단순히 '소비'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면, 2025년의 목표는 “'녹색(绿色)'과 '스마트(智能)'”라는 키워드로 압축된다. 즉, 단순히 낡은 차를 새 차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구형 아날로그 가전을 AI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홈 가전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소비의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전환을 통해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중국 정부의 전략적 의도가 담겨있다. 소비 부양과 산업 업그레이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이 정책의 기대효과는 명확하다. 단기적으로는 잠자고 있던 교체 수요를 깨워 소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중국 내 자동차 보유량은 약 3억 4천만 대, 주요 가전제품 보유량은 30억 대를 넘어섰다. 이 중 상당수가 교체 주기에 들어선 노후 제품들이다. 막대한 잠재 수요에 보조금이라는 인센티브가 더해지면, 관련 기업들의 매출 증대와 재고 소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산업 고도화 효과다. 이구환신 정책은 수요 측면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미래형 제품'의 시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신에너지차 구매 보조금은 BYD, 니오(Nio) 등 자국 전기차 기업들에게는 안정적인 내수 시장을 보장해주며, 이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가격 경쟁력 확보에 매진할 동력을 제공한다. 스마트 가전 역시 마찬가지다. 하이얼, 메이디 같은 기업들은 정부가 창출한 교체 수요를 발판 삼아 사물인터넷(IoT)과 AI 기술이 결합된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낼 수 있다. 결국 이구환신은 수요가 공급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중국 제조업의 체질을 전통적인 '규모의 경제'에서 '기술 기반 경제'로 바꾸려는 시도인 셈이다. 넘어야 할 산: 재정 부담과 소비자의 신뢰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 부담이다. 막대한 보조금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명확한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미 부동산 시장 침체로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는 지방정부가 보조금 지급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원 마련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또한, 위축된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다. 현재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근본적인 이유는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고용 시장이 불안하고 자산 가치(부동산)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보조금만으로 고가의 내구소비재 구매를 선뜻 결정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구환신 정책이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앞당겨 쓰는 '수요 이연'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결론적으로, '이구환신' 정책은 중국 경제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미래 산업을 향한 전략적 투자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 정책이 단순한 경기 부양을 넘어 중국 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이끄는 성공적인 촉매가 될 수 있을지, 혹은 막대한 재정만 투입한 채 미미한 효과에 그칠지는 향후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중국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 여부에 달려있다. 전 세계가 그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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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환신(以旧换新)' 정책, 소비 진작을 넘어 산업 고도화의 촉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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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이라는 아킬레스건, '탕핑'을 넘어선 세대의 출구는?
-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현대 중국의 정당성은 암묵적인 사회 계약에 기반한다. '정치적 자유를 논하지 않는 대신, 경제적 번영과 안정적인 삶을 보장한다.' 지난 40여 년간의 개혁개방은 이 약속이 유효함을 증명하는 거대한 성공 서사였다. 그러나 지금, 이 견고했던 계약의 가장 약한 고리가 드러나고 있다. 바로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이라는 아킬레스건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한 세대의 좌절이자,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잠재적 뇌관이다. 통계가 보여주는, 그리고 감추는 현실 공식적인 수치만으로도 문제는 심각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023년 6월, ‘21.3%’라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도시 청년 5명 중 1명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상황이 악화되자 당국은 약 6개월간 돌연 통계 발표를 중단했고, 올해부터 '재학생을 제외한다'는 새로운 기준으로 수치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기준으로도 실업률은 14%대를 오르내리며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식 통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장단단(張丹丹) 베이징대 교수의 연구팀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자발적 실업 상태의 청년, 즉 부모에게 의존해 생활하는 '캥거루족' 등을 포함할 경우, ‘실질적인 청년 실업률은 무려 46.5%’에 달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중국 청년 두 명 중 한 명은 사실상 온전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매년 1,100만 명 이상의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는 거대한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구조적 미스매치와 정책적 충격의 합작품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이는 복합적인 원인이 얽힌 결과다. 첫째, 고질적인 '구조적 미스매치'다. 중국의 대학교들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보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졸업생을 과도하게 배출해왔다. 반면, 제조업 현장에서는 숙련된 기술공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고학력 저숙련' 인력의 과잉 공급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쿵이지의 긴 두루마기(孔乙己的长衫)'라는 밈(meme)은 이러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육체노동을 하기엔 너무 많이 배웠고, 배운 것을 써먹을 지식인 일자리는 없는 청년들의 딜레마다. 둘째, 정부의 정책적 충격이 결정타를 날렸다. 시진핑 정부는 2021년부터 사교육 산업을 초토화한 '쌍감(双减)' 정책, 알리바바와 텐센트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에 대한 고강도 규제, 그리고 부동산 시장의 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을 동시에 추진했다. 이 세 분야는 모두 지난 10여 년간 대졸 청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일자리를 공급하던 핵심 산업이었다. 하나의 정책도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동시에 가하면서, 청년 고용 시장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탕핑'과 '바이란', 소극적 저항을 넘어 이러한 현실 앞에서 중국 청년 세대가 보인 반응은 '탕핑(躺平, 드러눕기)'과 '바이란(摆烂, 될 대로 되라)'으로 대표된다. 치열한 경쟁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최소한의 생존만 유지하며 분투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나태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설계한 성공 공식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자 합리적 선택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데 굳이 애쓸 필요가 있는가?"라는 자조 섞인 질문이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실업 청년들이 사회 불만 세력으로 전환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이다. 당국은 청년들에게 창업을 독려하고, 농촌으로 내려가 일자리를 찾으라는 '신상산하향(新上山下乡)' 운동을 장려하며, 국유기업과 공무원 채용을 늘리는 등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문제의 폭발을 지연시키는 임시방편에 가깝다. 출구를 찾아서: 세대의 고민과 국가의 과제 '탕핑'을 넘어선 세대의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현재 청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배달, 차량 호출 등 긱 이코노미(gig economy)에 뛰어들거나, 취업난을 피해 대학원으로 진학해 시간을 벌거나, 심지어 매달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며 '전업자녀(全职儿女)'로 사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중국 경제의 체질 개선에 있다. 정부 주도의 투자가 아닌, 민간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신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의 고삐를 풀고, 민간 기업가들의 불안을 해소하여 투자를 유도하며, 미래 산업에 대한 예측과 함께 교육 시스템을 개혁하는 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하다. 중국 청년 실업 문제는 이제 막 곪아 터지기 시작한 상처다.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한 세대의 좌절을 방치한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한 번영을 이룰 수 없다. '중국의 꿈(中国梦)'이 신기루가 되지 않기 위해, 시진핑 정부는 이제 가장 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대수술에 나서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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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이민 확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
- [오늘일보=김준연 발행인]세계 최저 출산율,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대한민국 인구 시계는 이제 경고음을 넘어 비상벨을 울리고 있다. '인구절벽'은 더 이상 미래의 위협이 아닌, 당장 우리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지방 소멸을 가속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이 명백한 국가 소멸의 위기 앞에서, '외국인 이민 확대'는 이제 좋고 싫음의 선택지가 아닌, 생존을 위한 마지막 카드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이민'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경제적 불안감,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우려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단일민족'이라는 익숙하고 안온한 서사 속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은 두려운 미지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거의 관성에 갇혀 시대적 과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이미 우리 산업 현장 깊숙한 곳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농어촌과 지방 도시는 소멸을 막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과 이주민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사실상의 '이민사회'에 진입했지만, 이를 인정하고 미래를 설계할 국가적 차원의 논의와 준비는 한참이나 뒤처져 있다. 이제는 소극적인 단기 노동력 수입을 넘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할 이민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성공적인 이민 정책의 핵심은 '선별'과 '통합'이다. 첫째,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를 주도적으로 유치하는 '선별적 이민 정책'이 필요하다. 저출생으로 부족해진 생산가능인구를 채우고, AI와 첨단 산업 분야의 우수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캐나다나 호주처럼 명확한 점수제에 기반한 이민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할 때다. 둘째, 체계적인 사회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민자들이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차별 없이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갈등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를 총괄할 '이민청'과 같은 독립적인 컨트롤 타워 설립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독일의 실패와 캐나다의 성공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통합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정해진 미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변화의 파도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올라타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이민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야 한다. 대신 '어떤 이웃을, 어떻게 받아들여, 어떤 나라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건설적인 질문을 시작할 시간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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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이민 확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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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의 다음 단계: 플랫폼 종속을 넘어 IP 강국으로
- [오늘일보=김준연 발행인]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에 열광하고 BTS와 블랙핑크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K-콘텐츠는 의심할 여지 없이 문화적 현상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핵심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은 K-콘텐츠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결정적인 '고속도로'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질문이 있다. "이 잔치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오징어 게임’이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 천문학적인 후속 수익과 파생 사업의 권리는 대부분 넷플릭스가 가져갔다. 우리는 뛰어난 요리사처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멋진 요리(콘텐츠)를 만들어냈지만, 그 요리가 나오는 식당(플랫폼)과 요리법(IP, 지식재산권)의 소유권은 넘겨준 셈이다. 이러한 '플랫폼 종속' 모델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제작비와 글로벌 유통망을 확보하는 달콤한 과실을 주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콘텐츠 산업의 허리를 약화시키는 족쇄가 될 수 있다. IP가 없으면 시즌2, 캐릭터 사업, 게임, 굿즈 등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남의 밭에서 농사를 지어주는 소작농에 머물러야 하는가? 이제 K-콘텐츠는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모색해야 한다. 훌륭한 '콘텐츠 제작소'를 넘어, IP를 직접 소유하고 그 가치를 키워나가는 진정한 'IP 강국'으로 도약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과제가 시급하다. 첫째, 창작자 중심의 IP 소유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웹툰과 웹소설 업계가 보여주듯, 원천 IP를 가진 플랫폼과 작가가 중심이 되어 IP 가치를 키워나가는 모델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영상 제작 단계에서도 제작사와 창작자가 IP 권리를 확보하고, 플랫폼과는 '방영권'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둘째,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와 연대가 필요하다. 글로벌 플랫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국내 OTT와 콘텐츠 기업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공동으로 오리지널 IP에 투자하고, 해외 시장에 함께 진출하는 'K-콘텐츠 연합군'을 형성하여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 셋째, 정부는 IP 확보를 위한 금융 및 정책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IP를 담보로 한 제작비 펀딩을 활성화하고, 불공정한 IP 계약을 막기 위한 표준계약서 개선 등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해야 한다. 당장의 제작 편수 늘리기보다, 세계적인 IP 몇 개를 키워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디즈니는 미키마우스라는 IP 하나로 100년 가까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럴 잠재력을 가진 웹툰, 캐릭터,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이제는 우리 손으로 직접 IP를 키워, 그 결실을 온전히 우리가 거두는 새로운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갈 때다. K-콘텐츠의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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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의 다음 단계: 플랫폼 종속을 넘어 IP 강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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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경제 안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
- 과거 30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해 온 '효율성'이라는 금과옥조가 깨지고 있다. 가장 값싼 곳에서 생산해 가장 필요한 곳으로 실어 나르던 글로벌 분업 체계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예상치 못한 팬데믹은 '비용'보다 '안정'이, '효율'보다 '회복력'이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제 글로벌 공급망은 '안보'라는 새로운 중력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경제는 그 어떤 나라보다 민감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효율적인 생산망의 핵심 플레이어로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해, 그 생산망의 작은 균열 하나가 우리 경제 전체를 멈춰 세울 수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1년 경험했던 차량용 반도체 대란과 요소수 품귀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낸 예고편이었다. 이제 '경제 안보'는 더 이상 외교·안보 부처에서나 다루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는 우리 기업의 생존과 국민의 일자리가 걸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민생 문제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추진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CHIPS Act)은 동맹국에게조차 국익 앞에서는 양보가 없다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준다. 중국 역시 핵심 광물과 원자재를 전략적으로 통제하며 '자원의 무기화'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처럼 거친 파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이상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수동적으로 학습할 시간은 없다. 이제는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첫째, 공급망 다변화가 시급하다. 특정 국가에 90% 이상 의존하는 '절대 의존 품목'부터 위험도를 재평가하고,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통해 우방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며, 국내 생산 기반을 확충하는 '리쇼어링(reshoring)'을 과감히 유도해야 한다. 둘째, 기술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등 우리가 우위를 가진 '초격차 기술'은 더욱 발전시키고, 핵심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력을 확보하여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의 협상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경제 안보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민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주요국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해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업의 공급망 다변화 노력을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 등으로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과거에는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드는 기업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한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뒷받침하는 국가가 살아남는 시대다. '경제 안보'는 더 이상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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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경제 안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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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화되는 미중 경쟁, 한국 외교의 '전략적 자율성'을 묻는다
- [오늘일보=김준연 발행인]2025년 여름, 미중의 전략적 경쟁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국제 질서를 규정하는 '상수'가 되었다. 반도체와 AI를 둘러싼 기술 전쟁은 한층 더 노골화되었고,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감은 동북아 안보 전체를 흔드는 뇌관이 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파고 속에서, 한반도라는 배의 항해사인 대한민국 외교는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낯설지만 더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에 직면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한미 동맹의 복원과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를 외교의 핵심 기조로 삼아왔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인다는 명분은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그 결과, 한미 연합훈련은 정상화되었고 대미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가치에 기반한 선명한 노선은 필연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국가, 특히 우리의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에 경직성을 가져왔다. 사드(THAAD) 사태 이후 조심스럽게 관리되던 한중 관계는 다시금 얼어붙었고, 첨단 기술에서부터 핵심 원자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깊숙이 얽혀있는 우리 경제의 공급망 리스크는 오히려 커졌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공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새로운 생존 공식은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형국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전략적 자율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거나 양쪽을 오가는 '줄타기 외교'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외교의 기본 축으로 삼되, 사안별로 우리의 국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전략적 자율성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동참하더라도,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외 조치를 관철하기 위해 더 집요하게 미국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것이 자율성이다. 중국이 특정 현안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문제 삼을 때, '동맹의 결정'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반한 결정임을 명확한 논리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자율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합의를 가져야 한다. 단기적 경제 이익인가, 장기적인 안보 가치인가, 혹은 기술 주권의 확보인가. 이 기준이 명확히 서야만, 외교는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원칙을 가질 수 있다. 격랑의 시대에 남의 지도를 들고 항해할 수는 없다. '가치 외교'라는 이상을 추구하더라도, 그 발은 '국익'이라는 현실의 땅을 굳건히 딛고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외교가 우리만의 지도와 나침반을 재정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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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화되는 미중 경쟁, 한국 외교의 '전략적 자율성'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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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더 내고 늦게 받는' 고통 분담을 넘어선 세대 간의 약속
- [오늘일보=김준연 발행인]2025년 8월, 22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연금개혁안이 다시금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랐다.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되며 손에 잡힐 듯했던 개혁은, 또다시 정치적 셈법과 세대 간의 불신이라는 벽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에 처해있다. '더 내고 늦게 받는' 고통 분담. 연금개혁을 이야기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 말은 이제 모든 국민이 받아들여야 할 냉정한 현실이 되었다. 저출생·고령화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기금 고갈은 정해진 미래이며, 이대로라면 1990년생이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될 즈음엔 적립된 기금이 바닥을 드러낸다. 미래 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연금개혁을 단순히 가입자가 감내해야 할 '손해'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숫자를 조정하는 기술적 과제를 넘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세대 간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사회적 계약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국민연금을 '내봤자 돌려받지 못할 돈'이라며 깊은 불신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불안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개혁안도 성공할 수 없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국가의 지급 보장 명문화'이다. 국가가 어떤 상황에서도 연금 지급을 책임진다는 명확한 법적 약속이야말로, 청년들이 기꺼이 개혁의 고통을 분담하게 할 가장 확실한 담보다. 이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연금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부터 재건하는 첫걸음이다. 동시에, 우리는 걷어들인 돈을 어떻게 불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1,0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 수익률을 1%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점을 수년 늦출 수 있다. 글로벌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기금 운용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은 보험료율을 1% 올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개혁의 한 축이다. 21대 국회는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공은 22대 국회로 넘어왔다. 여야는 눈앞의 유불리를 떠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역사적 책임감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특정 세대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조금씩 양보하고 책임지며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이번만큼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주저하다 또다시 다음 세대에 폭탄을 떠넘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숫자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넘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재건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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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더 내고 늦게 받는' 고통 분담을 넘어선 세대 간의 약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