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혐오의 악순환, 정치·사회적 해법 모색 시급”

지난 23일 저녁, 서울 명동 일대는 때아닌 고성과 혐오의 구호로 얼룩졌다. 보수 성향 단체 회원 1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반중(反中)’을 외치는 집회가 열린 것이다. 이들은 “중국은 내정간섭을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이날 시위는 일부 중국인 관광객과의 마찰로 이어지며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양국 국민 사이의 감정의 골이 길거리의 물리적 충돌 우려로까지 번지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혐오의 불길, 서울 한복판에서 타오르다
23일 저녁 7시 30분, 서울중앙우체국 앞에 모인 시위대는 확성기를 통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이들의 주장은 최근의 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있었지만, 그 저변에는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반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행진 대열을 따라가자 일부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특히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자리를 피했다.
명동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안 그래도 경기가 어려운데, 이런 시위가 벌어지면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길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로 풀어야지, 이렇게 거리에서 혐오를 표출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번 시위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중 정서가 더 이상 온라인상의 가상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일회성 해프닝이 아닌, 수년간 축적된 양국 간의 갈등과 불신이 낳은 위험 신호라고 경고한다.
데이터로 본 한중 상호 인식, ‘위험 수위’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한중 양국민의 상호 인식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리서치가 올해 초 발표한 ‘2025 대중인식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 중 중국에 대해 ‘친구가 아닌 적에 가깝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상당하며,
특히 젊은 층일수록 반중 감정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 대한 감정 온도를 0도(매우 차갑고 부정적)에서 100도(매우 뜨겁고 긍정적)로 측정했을 때, 20대의 경우 평균 15.9도로 전 세대 중 가장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반중 정서의 원인으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 △코로나19 팬데믹 책임론 △역사·문화 왜곡 논란(김치, 한복 등) △미세먼지 문제 △중국의 권위주의적 외교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중국 내 ‘혐한(嫌韓)’ 정서 역시 인터넷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중국의 젊은 세대는 자국의 국력 상승에 대한 자부심(중화사상)을 바탕으로, 한국의 대중문화(한류)가 자국 문화를 침범한다고 인식하거나, 역사적 속국 관계로 한국을 폄하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스포츠 경기에서의 판정 시비나 온라인상의 작은 논쟁이 양국 네티즌 간의 집단적인 혐오 발언으로 번지는 일도 빈번하다.
전문가 진단 “정부와 언론의 책임 있는 역할 중요”
전문가들은 양국의 혐오 정서가 ‘거울 효과’처럼 서로를 비추며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가 자국 내 혐오 감정을 키우고, 이것이 다시 상대국에 전달되어 또 다른 혐오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