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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브라더는 죽지 않았다, 조지 오웰의 '1984'가 던지는 섬뜩한 경고
- 1949년,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시대에 출간된 한 편의 소설이 미래 사회에 대한 가장 어둡고 통찰력 있는 예언서로 자리매김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단순한 디스토피아 소설을 넘어, 전체주의의 작동 원리와 인간 정신의 말살 과정을 집요하게 파고든 위대한 문학적 성취다. 그가 그려낸 1984년은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빅브라더', '사상경찰', '이중사고'와 같은 소설 속 개념들은 21세기 디지털 감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섬뜩한 현실성을 띤다. 1. 진실을 꿈꾼 한 남자의 처절한 몰락 '1984'의 무대는 전 세계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라는 3개의 초거대 국가로 재편된 1984년의 런던이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당(The Party)'의 하급 당원으로, 진리부(Ministry of Truth) 기록국에서 과거의 신문 기사나 문서를 현재 당의 방침에 맞게 수정·조작하는 일을 한다. 1) 통제된 세계와 내면의 반란 오세아니아는 당의 최고 지도자인 '빅브라더(Big Brother)'가 모든 것을 지켜보는 절대적인 감시 사회다. 거리와 가정에는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Telescreen)'이 설치되어 시민들의 모든 말과 행동을 24시간 감시하며, 사상범죄를 색출하는 '사상경찰(Thought Police)'이 암약한다. 당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슬로건 아래 역사를 끊임없이 날조한다. 언어 또한 '신어(Newspeak)'라는 새로운 언어로 대체하여, 반역적인 사상을 표현할 단어 자체를 소멸시키려 한다. 이 질식할 듯한 통제 속에서 윈스턴은 희미하게 남은 과거의 기억과 현실의 모순에 회의를 품는다. 그는 금지된 행위인 '일기 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의심을 기록하며 위태로운 내면의 반란을 시작한다. 그는 당의 고위 간부로 보이는 '오브라이언(O'Brien)'에게서 자신과 같은 의심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동질감을 느끼고, 당돌한 젊은 여성 '줄리아(Julia)'와 마주치면서 그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2) 금지된 사랑과 짧은 해방 어느 날, 줄리아는 윈스턴에게 몰래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적힌 쪽지를 건넨다. 당은 성욕을 오직 출산을 위한 의무로만 규정하고 개인적인 쾌락과 사랑을 철저히 통제하기에, 이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체제에 대한 반역 행위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사상경찰의 눈을 피해 런던 외곽의 숲이나 무산계급(Proles)이 사는 지역의 한 낡은 방에서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간다. 그들에게 사랑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을 넘어, 당이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인간성의 영역이자 정치적 저항 행위였다. 특히 줄리아는 당의 이념에는 무관심하지만, 규칙을 어기고 개인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을 즐기는 인물로, 이념적 반역을 꿈꾸는 윈스턴과는 다른 방식으로 체제에 저항한다. 이 짧고 위험한 밀애의 시간 동안 윈스턴은 잠시나마 해방감과 인간적인 유대를 맛본다. 3) 거짓 희망과 잔혹한 함정 저항에 대한 갈망이 커진 윈스턴은 마침내 오브라이언에게 접근한다. 오브라이언은 자신이 당에 저항하는 비밀 조직 '형제단(The Brotherhood)'의 일원이라며 그들을 안심시킨 뒤, 조직의 강령이 담긴 '그 책(The Book)'을 건네준다. 윈스턴은 책을 읽으며 당의 지배 구조와 이데올로기(영사주의, 영원한 전쟁의 본질, 이중사고 등)의 실체를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정교하게 설계된 함정이었다. 윈스턴과 줄리아가 유일한 안식처로 여겼던 낡은 방의 그림 뒤에는 텔레스크린이 숨겨져 있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체포되고, 윈스턴은 그토록 동경했던 오브라이언이 사실은 사상경찰의 핵심 간부이자 자신을 오랫동안 감시하고 유인해 온 장본인임을 깨닫게 된다. 4) 파괴되는 인간성, 그리고 '101호실' 체포된 윈스턴은 애정부(Ministry of Love)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고문의 총책임자는 다름 아닌 오브라이언이다. 고문의 목적은 자백이나 처벌이 아니다. 그것은 윈스턴의 저항 의지를 꺾고, 그의 생각을 완전히 개조하여 당이 원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2+2=5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며, 당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 곧 진리이며, 객관적인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요한다.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압박 속에서 윈스턴의 저항은 서서히 무너진다.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줄리아에 대한 사랑이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었다. 당은 그의 마지막 인간성마저 파괴하기 위해 그를 '101호실'로 보낸다. 101호실은 개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이용해 공포의 한계점을 시험하는 곳이다. 쥐를 병적으로 무서워하는 윈스턴의 얼굴에 굶주린 쥐들이 든 철창이 씌워지자, 그는 이성을 잃고 절규한다. "나한테 하지 마! 줄리아한테 해!" 이 한마디는 그의 내면에 남은 마지막 인간성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석방된 윈스턴은 과거의 모든 기억과 감정이 거세된 채, 오직 빅브라더에 대한 사랑과 순응만이 남은 텅 빈 껍데기가 된다. 어느 날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줄리아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잃고 서로를 배신했음을 무감각하게 확인한다. 소설은 텔레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전쟁 승리 소식을 들으며 윈스턴이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그의 투쟁은 완벽한 패배로 끝났고, 체제는 한 개인의 정신을 완전히 정복했다. 2. '1984'는 무엇을 말하는가? 1) 전체주의와 절대 권력의 속성 '1984'는 전체주의 체제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파괴하는지를 해부한다. 당은 물리적인 통제를 넘어 역사, 언어, 생각, 심지어 사랑이라는 가장 내밀한 감정까지 지배하려 한다. 오웰은 권력의 본질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가 목적임을 오브라이언의 입을 통해 명확히 밝힌다. 당은 인류를 고문하고 굴복시키면서 영원히 권력을 유지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이는 권력의 비인간적이고 자기 증식적인 속성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2) 감시 사회와 프라이버시의 종말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는 소설 속 문구는 현대 사회의 감시 문제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소설 속 텔레스크린은 오늘날의 CCTV, 인터넷 검열, 개인정보 수집, 안면 인식 기술 등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예견한다. 오웰은 외부의 감시가 내면화될 때, 즉 개인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하게 될 때 진정한 자유는 소멸한다고 경고한다. 프라이버시의 상실은 단순히 사생활이 노출되는 문제를 넘어,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의 형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3) 언어와 사고의 통제 신어(Newspeak)와 이중사고(Doublethink) 오웰이 창조한 가장 독창적인 개념 중 하나는 '신어'와 '이중사고'다. 신어는 어휘를 극단적으로 축소하여 사상의 폭을 좁히고, 최종적으로는 '사상범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언어다. '자유'라는 단어는 남아있지만, '정치적 자유'나 '개인의 자유'의 의미는 사라지고 '이 개는 벼룩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식의 한정된 의미로만 사용된다. 이중사고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신념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둘 다 사실이라고 믿는 정신 상태를 의미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당의 슬로건이 대표적이다. 이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허물고, 체제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능력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심리 통제 수단이다. 오늘날 '가짜뉴스'와 '탈진실' 현상이 만연한 시대에, 이중사고의 개념은 더욱 섬뜩한 현실성을 갖는다. 3. 왜 지금 다시 오웰인가? 조지 오웰의 '1984'가 출간된 지 70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 영향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인공지능, 빅데이터, 소셜미디어가 지배하는 21세기에 그의 경고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오늘날 각국 정부와 거대 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양의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이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빅브라더'의 출현을 예고한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보고 듣는 정보를 필터링하여 '확증 편향'을 강화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가짜뉴스'는 여론을 조작하고 객관적 진실의 가치를 위협하며, 사회적 불신을 팽배하게 만든다. '1984'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편리함과 안전을 위해 얼마만큼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내어줄 수 있는가? 진실이 권력에 의해 왜곡될 때,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는 무엇인가? 소설의 결말은 지독히도 비극적이지만, 오웰이 이 작품을 쓴 목적은 절망적인 예언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끔찍한 미래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1984'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명작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냉철하게 성찰하며, 자유와 진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책무를 확인하는 행위다. 빅브라더는 여전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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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브라더는 죽지 않았다, 조지 오웰의 '1984'가 던지는 섬뜩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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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미국을 배회하는 매카시즘의 유령, 1950년대 냉전의 광풍
- 1950년대 초, 미국 사회를 휩쓴 '붉은 공포(Red Scare)'의 광풍, 매카시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입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마녀사냥은 수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미국 민주주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왜 다시 매카시즘의 망령을 소환해야 하는가? 오늘날의 분열과 불신의 정치 지형 속에서 매카시즘의 개념과 역사, 그리고 그 비판적 교훈을 되짚어 보는 것은 단순한 과거사 회고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1. 매카시즘의 탄생: 냉전의 공포가 낳은 괴물 매카시즘(McCarthyism)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과의 냉전이 격화되던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극단적인 반공산주의 열풍을 일컫는다. 이 용어는 당시 위스콘신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950년 2월 9일,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의 한 여성 공화당원 클럽 연설에서 매카시는 "나는 오늘 국무장관에게 국무부에서 일하면서 정책을 만들고 있는 공산당원 205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 폭탄선언은 즉각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비록 그가 제시한 명단의 실체는 끝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지만, 그의 발언은 이미 팽배해 있던 대중의 불안감에 불을 지폈다. 당시 미국은 '중국의 공산화',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 성공' 등 연이은 국제 정세의 변화로 인해 공산주의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매카시는 '내부의 적'을 색출하겠다는 선동적인 구호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고, 순식간에 정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주장은 사실 확인보다는 의심과 공포를 기반으로 했으며, 언론은 그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중계하며 공포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2. 광기의 시대: 마녀사냥의 방식과 그 희생자들 매카시즘의 광풍은 '비미(非美)활동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HUAC)'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위원회는 정부, 학계, 예술계, 노동계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소환하여 그들의 사상과 충성심을 검증했다. 청문회는 피고발인의 인권을 철저히 무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명확한 증거 없이 '공산주의 동조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소환된 이들은 동료나 친구의 이름을 거론하도록 강요받았다. 증언을 거부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은 '비협조적인 증인'으로 분류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 예술가, 공무원들이 직장을 잃고 사회적 명예를 실추당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계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 중 하나였다.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 배우 게리 쿠퍼 등 많은 영화인이 청문회에 불려 나왔으며, '할리우드 텐(Hollywood Ten)'으로 불리는 10명의 영화인은 증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의회 모독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기도 했다. 세계적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역시 공산주의 동조자로 몰려 사실상 미국에서 추방당했다. 이러한 '블랙리스트(Blacklist)'는 영화계를 넘어 학계, 언론계, 노동계로 확산되며 미국 사회 전체의 지적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었고, 사회는 서로를 감시하고 불신하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3. 매카시즘의 몰락과 그 교훈 영원할 것 같던 매카시의 권력은 1954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의 무분별한 폭로전이 군부로까지 향하면서 대중의 여론이 돌아선 것이다. 특히 육군과의 공방을 다룬 청문회가 TV로 생중계되면서, 증인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윽박지르는 그의 모습이 전국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는 그의 권위와 신뢰에 치명타를 입혔다. 당시 육군 측 변호사였던 조지프 웰치가 매카시를 향해 던진 "상원의원, 당신에게는 일말의 품위도 없습니까?(Have you no sense of decency, sir, at long last?)"라는 일갈은 시대의 양심을 일깨우는 외침이 되었다. 결국 그해 12월, 미 상원은 매카시에 대한 견책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그는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매카시즘은 미국 사회에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국가 안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또한, 근거 없는 비방과 선동이 사회를 얼마나 극심한 분열과 불신으로 몰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거가 되었다. 비판적 사고와 건전한 토론이 실종된 사회,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규정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4. 21세기에 트럼프의 이름으로 부활한 유령 매카시즘은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있지 않다. 그 유령은 21세기 미국 정치,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과 그 이후의 정치 현상인 '트럼피즘(Trumpism)'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많은 역사학자와 정치 분석가들은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과 매카시의 수법 사이에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첫째, '내부의 적'을 설정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선동 방식이다. 매카시가 '정부 내 공산주의자'라는 보이지 않는 적을 설정했다면, 트럼프는 '가짜뉴스 언론', '딥 스테이트(Deep State, 숨은 권력 집단)', '불법 이민자' 등을 적으로 규정하고 지지층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했다. 근거가 부족한 주장을 반복적으로 외치며 의심을 사실처럼 둔갑시키는 모습은 매카시의 수법과 판박이다. 둘째, 충성심을 강요하고 반대자를 적으로 돌리는 행태다. 매카시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인물들을 '공산주의 동조자'로 몰아세웠다. 트럼프 역시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인을 '국민의 적'으로 칭하고, 당내 반대파를 '이름만 공화당원(RINO, Republican In Name Only)'이라 비난하며 개인에 대한 충성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건전한 정책 토론 대신, '우리 편'과 '적'을 가르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를 강화시켰다. 셋째, '마녀사냥(Witch Hunt)'이라는 용어의 역설적 사용이다. 본래 매카시즘의 부당한 탄압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던 '마녀사냥'이라는 용어를, 트럼프는 자신을 향한 모든 의혹과 수사(러시아 스캔들 특검, 탄핵 조사 등)를 방어하는 수사(修辭)로 전용했다. 이는 자신을 정치적 박해의 희생자로 포장하고, 사법 시스템과 언론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흥미로운 역사적 연결고리는 매카시의 악명 높은 수석 변호사였던 **로이 콘(Roy Cohn)**이 젊은 시절 트럼프의 멘토이자 변호사였다는 점이다.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마라, 비난받으면 두 배로 되갚아주라"는 식의 로이 콘의 공격적인 전술은 트럼프의 정치 여정 내내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론적으로, 현대 미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매카시즘의 단순한 반복을 넘어, 소셜미디어라는 강력한 확산 도구를 통해 더욱 교묘하고 파급력 있게 진화한 '신(新)매카시즘'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공포를 이용한 정치, 진실을 경시하는 태도, 그리고 반대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은 7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미국 민주주의를 다시금 위협하고 있다. 매카시즘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성찰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5. 21세기에 되살아난 매카시즘 매카시즘은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있지 않다. 오늘날에도 정치적 반대 세력을 악마화하고, 이념적 잣대로 상대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행태는 '현대판 매카시즘'이라는 이름으로 비판받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가짜뉴스를 순식간에 확산시키며 새로운 형태의 마녀사냥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반사회적' 혹은 '비애국적'으로 낙인찍고, 합리적인 토론 대신 감정적인 비난을 앞세우는 모습은 매카시즘의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결론적으로, 매카시즘의 역사는 우리에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공포'를 이용한 정치, 그리고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는 intolerance(불관용)이다. 건전한 비판과 상호 존중의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에 기반한 냉철한 판단력이야말로 매카시즘의 유령이 우리 사회를 배회하지 못하게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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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미국을 배회하는 매카시즘의 유령, 1950년대 냉전의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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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함께 일군 공동재산 장남에게 넘긴 90대 남편…대법 “이혼 사유”
- 60여 년의 혼인 기간 동안 부부가 함께 일군 재산을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남에게 전부 넘겨준 90대 남편의 행위는 이혼 사유가 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4일, 80대 아내 A씨가 90대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961년 혼인한 두 사람은 농사일과 식당일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재산 대부분은 남편 B씨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갈등은 2022년 부부의 주거지가 산업단지에 편입되면서 받은 보상금 3억 원과 15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남편 B씨가 아내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두 장남에게 증여하면서 시작됐다. 평생을 바쳐 이룬 공동의 재산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A씨는 "회복할 수 없는 파탄"이라며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B씨의 증여 행위가 부부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A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혼인 중 부부가 협력해 이룩한 재산은 명의와 상관없이 실질적인 공동재산"이라며 "배우자의 기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재산을 처분해 상대방의 남은 생애에 대한 경제적 기대를 무너뜨린 행위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부부 일방이 명의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재산을 독단적으로 처분하는 행위에 경종을 울리고, 황혼 이혼에서 재산 형성에 대한 배우자의 실질적 기여도를 폭넓게 인정한 중요한 판례로 남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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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함께 일군 공동재산 장남에게 넘긴 90대 남편…대법 “이혼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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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때린 애들, 똑같이 갚아줘"...또래 폭행 사주한 30대 母, 징역형 법정구속
- 자신의 자녀가 또래 학생들에게 폭행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다른 미성년자를 동원해 '보복 폭행'을 사주한 30대 친모가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수원지방법원 형사1단독 김유진 판사는 4일, 특수폭행교사 혐의로 기소된 A씨(38·여)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4월, 자신의 중학생 자녀가 동급생인 B군 등 2명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자, 이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10대 C군에게 "내 아이를 때린 애들을 똑같이 때려달라"며 현금 10만 원을 건네고 폭행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C군은 A씨의 지시를 받고 B군 등을 찾아가 실제로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자녀가 폭행당한 것에 대한 부모로서의 격분한 심정은 이해되나, 국가의 법질서를 무시하고 사적 구제 수단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으며,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아직 인격이 성숙하지 않은 미성년자를 자신의 복수를 위한 범죄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에 대해 부모가 법적 절차가 아닌 사적 보복으로 대응할 경우, 그 동기와 상관없이 엄중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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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때린 애들, 똑같이 갚아줘"...또래 폭행 사주한 30대 母, 징역형 법정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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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하늘 위 고속도로'…63빌딩 2.5배 높이 세계 최고 다리 위용
- 중국 남서부의 험준한 협곡을 가로지르는, 말 그대로 '하늘 위의 고속도로'가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 63빌딩(249m)의 약 2.5배, 남산서울타워(해발 479m)보다도 높은 곳에 건설된 이 다리는 중국의 초격차 인프라 건설 기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화제의 다리는 윈난성 쉬안웨이와 구이저우성 수이청을 잇는 베이판장(北盘江) 대교다. 항저우에서 윈난성 루이리까지 이어지는 G56 고속도로의 일부인 이 다리는 강 수면에서 상판까지의 높이가 무려 565m에 달해, 현존하는 다리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로 공식 기록되어 있다. 다리의 총 길이는 1,341m에 이른다. 베이판장 대교의 개통은 단순한 기록 경신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 깎아지를 듯한 협곡으로 인해 4시간 이상 걸렸던 두 지역 간의 이동 시간은 단 1시간으로 단축됐다. 이는 중국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서부 대개발' 전략의 핵심적인 성과로, 물류 혁신과 지역 경제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험준한 지형과 거센 바람 등 최악의 건설 환경을 극복하고 3년여 만에 완공된 이 프로젝트는 중국의 발전된 교량 건설 기술과 엔지니어링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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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하늘 위 고속도로'…63빌딩 2.5배 높이 세계 최고 다리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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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의 연인들, 꺼져가는 시선 속에서 영원을 꿈꾼 사랑
- 프랑스 영화사를 넘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문제작이자 걸작.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은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난과 영광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신화와도 같은 작품이다.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의 불꽃이 파리의 밤하늘을 수놓던 여름, 보수 공사로 폐쇄된 퐁네프 다리 위에서 모든 것을 잃은 두 남녀가 만난다. 시력을 잃어가는 화가 미셸(줄리엣 비노쉬)과 거리의 곡예사 알렉스(드니 라방). 세상의 가장 밑바닥, 버려진 공간에서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때로는 격렬한 춤처럼, 때로는 서로를 파괴하는 불꽃처럼 타오른다. 단순한 멜로드라마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어,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을 어디까지 이끌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지독하고도 황홀한 영상 시(詩)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 영화사를 뒤흔든 '문제작', 그 신화의 시작 '퐁네프의 연인들'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영화의 전설적인 제작 과정을 먼저 언급해야 한다. 당초 3주간의 실제 퐁네프 다리 촬영 허가를 받았던 제작팀은 배우 드니 라방의 부상으로 촬영이 중단되는 악재를 맞는다. 이후 파리 시의 허가가 더 이상 나지 않자,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파리 외곽에 센 강과 퐁네프 다리, 그리고 주변 건물까지 완벽하게 재현한 거대한 세트장을 짓는 무모한 결정을 내린다. 이로 인해 제작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수많은 제작자가 파산하고 교체되는 등 영화는 완성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다. 3년이 넘는 촬영 기간, 천문학적인 제작비. '퐁네프의 연인들'은 프랑스 영화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이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온갖 역경 끝에 완성된 영화는 그 광적인 제작 과정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투영된 듯, 전에 없던 폭발적인 에너지와 처절한 아름다움을 선보이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영화의 내용은 물론, 그 탄생 과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서사인 셈이다. 2. 가장 어두운 곳에서 만난 두 영혼, 알렉스와 미셸 영화의 주된 무대인 '퐁네프(Pont-Neuf)'는 '새로운 다리'라는 이름과 달리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영화 속 퐁네프는 보수 공사로 인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도시 속의 고립된 섬과 같은 공간이다. 이곳은 화려한 파리의 이면에 가려진, 사회로부터 밀려난 부랑자들의 안식처이자 그들만의 왕국이다. 이곳의 물리적 어둠과 고립은 주인공들이 처한 내면의 절망과 완벽한 공명을 이룬다.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채 거리를 떠도는 미셸은 유부남 화가와의 사랑에 실패하고, 원인 모를 병으로 점차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화가다. 그림을 그리는 이에게 시력의 상실은 곧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모든 희망을 잃은 그녀는 스스로 가장 낮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 퐁네프에 잠든다. 그곳에서 그녀는 다리의 '주인' 행세를 하는 알렉스를 만난다. 알렉스는 서커스단에서 불을 뿜는 재주를 부리다 사고로 연인을 잃고, 마취제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불안정한 영혼의 소유자다. 그는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잊은 채 오직 거리에서의 생존 기술만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가진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위태로운 동거를 시작한다. 그들의 관계는 달콤한 속삭임이 아닌, 투박한 몸짓과 거친 욕설,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동물적인 교감으로 이루어진다. 3. 감독 레오스 카락스, 광기를 스크린에 새기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감독 레오스 카락스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쁜 피', '소년, 소녀를 만나다'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초기작들에서부터 그는 언제나 소외된 청춘의 격정적인 사랑과 고독을 탐구해왔다. 특히 그의 영화적 분신(Alter ego)이라 할 수 있는 배우 드니 라방의 동물적인 몸짓과 에너지는 카락스 영화의 핵심적인 상징이다. 카락스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현실을 뛰어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그는 인물의 내면을 대사가 아닌 이미지와 음악, 그리고 몸짓으로 폭발시킨다.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이러한 그의 연출 스타일은 정점에 달한다. 사랑의 환희와 광기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실제 파리의 밤하늘을 불꽃으로 뒤덮고, 센 강 위에서 배우들이 수상스키를 타게 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인물의 감정이 현실의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순간을 포착하려는 감독의 집념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4. 사랑이라는 이름의 광기, 그 눈부신 이미지의 향연 이 영화를 불멸의 작품으로 만든 것은 단연코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이미지들이다. 알렉스의 사랑은 순수하지만 이기적이고, 열정적이지만 파괴적이다. 그는 미셸의 눈을 멀게 하는 병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에 한밤중 파리 시내를 불태우려 하고, 그녀를 찾는 가족의 포스터를 발견하자 미셸이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 포스터를 붙이는 인부를 살해하기까지 한다. 이 맹목적인 사랑의 광기는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센 강 불꽃놀이' 시퀀스에서 절정을 맞는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자, 훔친 경찰 보트를 탄 알렉스는 미셸을 이끌고 센 강 위에서 광란의 수상스키를 즐긴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이 장면은 절망적인 현실을 잠시 잊고 순간의 환희에 몸을 내던진 두 연인의 감정을 스크린 밖으로까지 터뜨려 놓는다. 불과 물, 빛과 어둠, 환희와 죽음의 이미지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이 황홀경은, 사랑이 주는 해방과 구원의 순간을 완벽하게 포착한 영화적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다리 위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는 장면은, 그 어떤 화려한 무대보다도 순수하고 절실한 생의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5. '본다'는 것의 실존적 의미와 예술가의 운명 영화는 '본다'는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미셸은 화가로서의 생명과도 같은 시력을 잃어가지만, 역설적으로 알렉스를 통해 세상의 이면과 사랑의 본질을 '보게' 된다. 문명화된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이 아닌, 거리의 소음, 추위, 배고픔,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것이다. 반면, 모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알렉스는 오직 미셸만을 바라보는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 세상을 외면한다. 그에게 미셸은 자신의 공허한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유일한 거울이자 세상 그 자체다. 그렇기에 그는 미셸이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을, 즉 자신을 떠나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처럼 두려워한다. '본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감각을 넘어, 관계의 지속과 소멸, 그리고 존재의 의미와 직결되는 실존적 행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계속된다 결국 수술로 시력을 되찾은 미셸은 알렉스를 떠나 화가로서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3년 뒤 크리스마스이브에 운명처럼 퐁네프에서 재회한다. 모든 오해와 상처를 뒤로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차가운 센 강으로 함께 몸을 던진다. 동반자살처럼 보였던 이 행위는 그러나, 과거의 자신들을 모두 강물에 장사 지내고 새롭게 태어나려는 정화의 의식에 가깝다. 마침내 모래를 싣고 바다로 향하는 작은 바지선에 의해 구조된 그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하늘이 하얗다'고 말해줘"라는 미셸의 말에 알렉스가 "하늘은 하얗다"고 답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현실의 하늘색이 무엇이든, '우리의 사랑'이라는 진실 앞에서는 세상의 모든 명제가 새롭게 정의될 수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결코 편안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거칠고 불편하며, 때로는 주인공들의 기행에 고개를 젓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상식과 이성의 틀을 벗어던진 사랑의 순수한 에너지가 얼마나 눈부시고 파괴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절실한 구원이 될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증명한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이 영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들처럼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삶에 이들처럼 찬란한 불꽃놀이의 순간이 있었는가. 그 묵직한 질문 앞에 우리는 잠시 말을 잃고, 파리의 낡은 다리 위에서 영원을 꿈꿨던 두 연인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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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의 연인들, 꺼져가는 시선 속에서 영원을 꿈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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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단체관광객, 내일(29일)부터 무비자 입국…관광업계 '국경절 특수' 기대감 고조
- 내일(29일)부터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대한민국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다. 침체된 내수 경기와 관광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로, 10월 1일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국경절 황금연휴를 앞두고 관광업계의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관광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9월 29일부터 2026년 6월 30일까지 약 9개월간 한시적으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대한 비자 면제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에 따라, 3인 이상의 중국인으로 구성된 단체 관광객은 비자 없이 한국에 입국해 최대 15일간 국내 전역을 여행할 수 있다. 이는 지난해 11월부터 중국이 한국 국민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것에 대한 상호주의적 조치이기도 하다. 당장 중국 최대의 황금연휴인 국경절(10월 1일~8일) 기간 동안 약 10만 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명동과 홍대 등 주요 관광지의 상점들은 중국어 안내문을 재정비하고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결제 시스템 점검을 마쳤으며, 면세점과 백화점 업계도 대규모 할인 행사를 기획하는 등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 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정부는 불법 체류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국 전 여행사가 제출한 명단을 통해 고위험군을 사전 선별하고, 무단이탈자가 다수 발생하는 여행사에 대해서는 단체관광객 유치 자격을 박탈하는 등 강력한 행정 제재를 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이번 무비자 입국 허용이 방한 관광 시장 회복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K-컬처와 연계한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해 관광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실질적인 내수 진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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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단체관광객, 내일(29일)부터 무비자 입국…관광업계 '국경절 특수' 기대감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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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디지털 대한민국' 심장이 멈췄다
- 26일 오후 8시 15분경, 대한민국 행정·공공 전산 시스템의 핵심부인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정부24', '모바일 신분증' 등 주요 대국민 서비스가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화재는 화재발생 후 약 22시간만인 27일 오후 6시께 완전 진화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은 전산실 내 무정전전원장치(UPS)의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현장에서는 배터리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작업자 1명이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번 화재로 정부 부처 홈페이지와 온라인 민원 서비스인 '정부24', '국민신문고', '모바일 신분증' 등이 접속 장애를 일으켰으며, 119 문자 및 영상 신고 시스템 등 국민 안전과 직결된 일부 시스템도 영향을 받았다. 행정안전부는 화재 발생 직후 재난 위기경보 '경계' 단계를 발령했으며, 27일 오전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해 범정부적 대응에 나섰다. 화재 진압은 데이터 손상을 우려해 초기에는 이산화탄소 가스 소화 설비를 사용하는 등 난항을 겪었으며, 27일 새벽이 되어서야 큰 불길이 잡혔다. 하지만 이미 핵심 서버와 장비들이 화재와 단전의 영향을 받아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긴급 관계 부처 장관 회의를 소집하고 시스템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가 핵심 데이터 시설의 재난 대비 시스템과 백업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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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디지털 대한민국' 심장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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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 수놓은 15만 발의 불꽃"… 100만 인파, 서울세계불꽃축제에 '환호'
- 2025년 9월 27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의 가을 밤하늘이 15만 발의 화려한 불꽃으로 뒤덮였다. 서울시와 ㈜한화가 주최하는 '한화와 함께하는 2025 서울세계불꽃축제'가 100만여 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운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올해 축제는 '함께하는 빛, 하나가 되다(Light Up Together)'를 주제로 대한민국, 이탈리아, 캐나다 3개국 대표팀이 참여해 각국의 특색을 담은 환상적인 불꽃 쇼를 선보였다. 오후 7시 20분, 이탈리아의 '파렌테 파이어웍스 그룹'이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선율에 맞춰 '어둠 속 빛을 향해'라는 주제로 축제의 포문을 열었다. 이어 캐나다의 '로열 파이로테크닉'팀이 슈퍼히어로 영화 OST와 함께 '세상을 지키는 빛'을 표현하며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축제의 대미는 대한민국의 ㈜한화가 장식했다. '골든 아워-찬란한 순간 속으로'라는 주제 아래, K팝 OST 등을 배경으로 한층 더 웅장하고 섬세한 불꽃을 연출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원효대교를 중심으로 마포대교와 한강철교 방향 양쪽에서 동시에 불꽃을 터뜨리는 '데칼코마니' 형식의 연출을 선보여 입체감과 화려함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서울시와 경찰, 소방 당국은 100만 명 이상의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해 종합안전본부를 운영하고, 전년 대비 13% 증원된 약 2,500명의 안전요원을 현장에 배치했다. 또한, 오후 2시부터 여의동로 일대 교통을 전면 통제하고 지하철 운행을 증편하는 등 시민 안전과 편의를 위한 특별 대책을 시행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장을 찾아 "안전하고 질서 있는 관람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서울을 대표하는 글로벌 문화 축제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축제가 끝난 후에도 주최 측과 자원봉사자들은 '클린 캠페인'을 진행하며 시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성숙한 축제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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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 수놓은 15만 발의 불꽃"… 100만 인파, 서울세계불꽃축제에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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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혐중 시위, 한중 ‘감정의 골’ 이대로 괜찮은가
- 지난 23일 저녁, 서울 명동 일대는 때아닌 고성과 혐오의 구호로 얼룩졌다. 보수 성향 단체 회원 1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반중(反中)’을 외치는 집회가 열린 것이다. 이들은 “중국은 내정간섭을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이날 시위는 일부 중국인 관광객과의 마찰로 이어지며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양국 국민 사이의 감정의 골이 길거리의 물리적 충돌 우려로까지 번지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혐오의 불길, 서울 한복판에서 타오르다 23일 저녁 7시 30분, 서울중앙우체국 앞에 모인 시위대는 확성기를 통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이들의 주장은 최근의 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있었지만, 그 저변에는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반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행진 대열을 따라가자 일부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특히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자리를 피했다. 명동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안 그래도 경기가 어려운데, 이런 시위가 벌어지면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길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로 풀어야지, 이렇게 거리에서 혐오를 표출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번 시위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중 정서가 더 이상 온라인상의 가상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일회성 해프닝이 아닌, 수년간 축적된 양국 간의 갈등과 불신이 낳은 위험 신호라고 경고한다. 데이터로 본 한중 상호 인식, ‘위험 수위’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한중 양국민의 상호 인식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리서치가 올해 초 발표한 ‘2025 대중인식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 중 중국에 대해 ‘친구가 아닌 적에 가깝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상당하며, 특히 젊은 층일수록 반중 감정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 대한 감정 온도를 0도(매우 차갑고 부정적)에서 100도(매우 뜨겁고 긍정적)로 측정했을 때, 20대의 경우 평균 15.9도로 전 세대 중 가장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반중 정서의 원인으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 △코로나19 팬데믹 책임론 △역사·문화 왜곡 논란(김치, 한복 등) △미세먼지 문제 △중국의 권위주의적 외교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중국 내 ‘혐한(嫌韓)’ 정서 역시 인터넷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중국의 젊은 세대는 자국의 국력 상승에 대한 자부심(중화사상)을 바탕으로, 한국의 대중문화(한류)가 자국 문화를 침범한다고 인식하거나, 역사적 속국 관계로 한국을 폄하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스포츠 경기에서의 판정 시비나 온라인상의 작은 논쟁이 양국 네티즌 간의 집단적인 혐오 발언으로 번지는 일도 빈번하다. 전문가 진단 “정부와 언론의 책임 있는 역할 중요” 전문가들은 양국의 혐오 정서가 ‘거울 효과’처럼 서로를 비추며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가 자국 내 혐오 감정을 키우고, 이것이 다시 상대국에 전달되어 또 다른 혐오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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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혐중 시위, 한중 ‘감정의 골’ 이대로 괜찮은가


